- 사회·정치·이념적인 이유로
- 혹은 단지 여성이었기 때문에
- 교과서 밖에만 존재해 온 32인
- 그 절절한 사연과 삶 재조명
- 서훈 지정의 모순도 지적

정진완 박재선 박상열 김용이 김시현 김순이 김명시…. 생소한 이름들이다. 모두 정상규의 신간 ‘독립운동 맞습니다’에 나오는 이름이다.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은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교과서나 국가보훈처에서 이들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가 서훈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한마디로 ‘교과서 밖의 독립운동가’인 셈이다.

	부산 남구 용호동 천주교 묘원에 있는 안중근 의사의 여동생 안성녀 여사의 묘. 국제신문DB

저자는 지난 6년간 514명의 독립운동가 후손을 만나 32명을 이 책에 담으면서 서훈을 받지 못한 이유를 설명한다. 그러면서 독립운동가 서훈 지정에 소극적인 정부의 정책과 태도를 지적한다. 이런 귀중한 작업을 한 저자는 역사학자가 아니다. 미국 대학에서 수학과 경제학을 전공하고 돌아와 독립운동가를 조명하는 일을 묵묵히 하고 있다.

책에는 32명의 사연이 등장한다. 하나같이 그동안 우리가 제대로 신경 쓰지 못한 것을 나무라듯 무척 아프다. 그중 영화 ‘밀정’에서 공유가 연기한 실존 인물 김시현의 파란만장한 삶이 눈에 들어온다. 그의 독립운동 활동을 보면 도대체 왜 독립운동가 서훈을 못 받았는지 의아하다. 그는 한국과 중국을 넘나들며 독립운동을 하다 다섯 차례나 검거돼 12년 이상 옥살이했다. 해방도 감옥에서 맞았다. 해방 후 정치인으로 변신했지만 이승만 전 대통령의 독재를 참지 못해 암살을 시도하다 사형선고를 받았다. 4·19 혁명으로 감옥에서 풀려난 뒤 1966년 불우한 생을 마감했다. 세상을 떠난 지 53년이 지났지만 그의 독립운동에 관한 정당한 평가는 이뤄지지 않았다. ‘3년 이상 징역이나 금고형을 받은 자는 포상 받을 수 없다’는 보훈법 규정 때문이다.

안중근 의사의 여동생 안성녀의 사연은 더욱더 안타깝다. 오빠뿐 아니라 남편, 아들, 며느리 모두 독립운동가였고 해방 전까지 중국에서 온갖 고초를 겪으며 활동했지만 공식적인 자료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독립운동가 서훈을 받지 못했다. 부산 영도에서 세상을 떠난 뒤 묘지 관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다가 최근에야 지방자치단체가 신경을 쓰고 있다. 저자는 안성녀의 사례를 들어 정부가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노력과 희생을 저평가했다고 강하게 질타한다. 독립군과 함께 생활하며 숙식을 제공하고, 그들의 옷을 바느질하고, 중요한 문서를 보관하거나 전달하는 일을 했는데 활동이 미온적이었다는 이유로 서훈을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에 등장하는 조봉암과 김원봉이다. 저자는 두 사람이 여전히 독립운동가 서훈을 받지 못한 상황에 대해 작심하고 목소리를 높인다. 두 사람 이야기는 워낙 많이 알려져 여기서 자세하게 언급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3대가 망한다는 독립운동에 목숨을 걸고 뛰어든 운동가들이 꿈꾸던 세상은 무엇이었을까.

“일본 제국주의를 반대하고 한국의 독립을 쟁취해야 할 것은 물론이지만 한국이 독립돼도 일부 사람이 권력을 쥐고 잘살고 호사하는 그런 독립이 아니고 모든 사람이 자유롭고 모든 사람이 잘 살고 호사할 수 있는 좋은 나라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282쪽. 망우리 공원 조봉암 묘소 앞 돌에 쓰인 글·‘조봉암 내가 걸어온 길’ 중)

김희국 기자 kuki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