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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의 그곳에서 만난 책 <64> 소설가 김동식의 소설집 ‘회색인간’

“댓글이 창작 원동력”… 2년간 소설 500편 집필 ‘문단 경계’를 넘다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8-04 19:14:05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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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남서 태어나 부산서 자라
- 공부가 싫어 주물공장 취직

- 온라인서 ‘글 쓰는 법’ 배워
- 2016년 웹작가로 데뷔
- 단서 떠오르면 바로 작품화
- 주인공 이름은 계속 사용

- 짧은 작품마다 여운 가득
- 전국에서 강연 요청 쇄도
- 책과 담 쌓았던 학생들
- 스스로 읽고 토론 벌여

책을 읽고 난 뒤에 마음에 남는 감동과 인상은 소설의 분량과 꼭 비례하지 않는다. 길지 않는 소설을 읽고 난 뒤에도 어떤 생각이 오래 마음에 남을 수 있다.
김동식 작가가 서울역 인파 속에 서 있다. 김 작가는 공장에서 일하다 온라인에 글쓰기 시작하면서 주목받는 작가가 됐다.
김동식 작가의 소설 ‘피노키오의 꿈’을 읽고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짧은 소설 한 편을 두고 긴 이야기가 이어졌다. 어릴 적 읽었던 동화 속 피노키오는 진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꾸었다. 피노키오가 사람이 되었을 때 어린 독자인 나도 기뻤다. 그런데 김 작가의 소설에서 피노키오는 말한다. “저는, 건강한 소나무가 되고 싶어요!” 나무가 되고 싶다는 피노키오의 꿈은 신선한 감동이었다. 자신이 세상 만물 중 가장 우월한 존재라고 여기는 인간 사회를 향해 던지는 피노키오의 통쾌한 반격이었다. 이 소설을 읽는 데 시간도 얼마 걸리지 않는다. 짧다. 이 문장은 어떤 복선일까, 무슨 의미일까 골치 아프게 헤아릴 필요도 없다. 어렵지 않다. 그런데 읽고 난 뒤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고, 할 말도 많았다.

새로운 형식의 소설, 새로운 작가라는 이야기를 듣는 김동식 소설가를 서울역에서 만났다.

■노동자 김동식, 소설가가 되다

회색인간- 김동식·요다·2017
서울역은 떠나는 사람, 도착한 사람으로 북적였다. 역내 커피숍이나 빵집은 이미 만원이었다. 역내를 한 바퀴 돌고서야 커피숍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다른 도시로 강연을 다니느라 서울역에 자주 옵니다. 방학 전에는 한 달에 18번이나 학교에 강연 간 적도 있어요. 여행 때문에 서울역에 온 적은 없고, 일 때문에 오는 거죠. 전, 불러주면 감사한 마음으로 다 갑니다. 열차 시간 기다리면서 라운지에 앉아 글을 쓸 때도 있어요.”

김 작가는 1985년 경기도 성남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자랐다. “영도 신선동에서 살았어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산복도로에서 자랐습니다. 어머니와 누나가 아직 영도에 살고 계시고, 저도 가끔 찾아갑니다. 많이 바뀌었던데요. 흰여울마을, 바다도 보고 왔죠.” 그는 중학교를 마치기 전에 일하기 위해 대구로 떠났다. “공부하기 싫었어요. 어머니도 저를 못 말렸어요. 고집이 셌거든요.” 그는 이 말끝에 웃었다. 2006년에 서울로 가서 성수동의 주물공장에서 10년 동안 일했다. “공장 사람들이 좋았습니다. 사람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없었죠. 아연, 주석, 납 등을 녹인 쇳물을 금형 틀에 부어 제품을 만드는 일을 했습니다.” 장갑을 두 겹 끼고 뜨거운 기계 앞에 앉아 일을 했던 그는 글을 쓰면서 소설가가 됐다. 문학이론을 공부하거나, 문학 책을 많이 읽지도 않았다. 온라인에서 ‘글 잘 쓰는 법’을 검색해 읽었다고 한다.

2016년 온라인 커뮤니티 공포 게시판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는데, 그의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댓글이 달리고 추천 수가 올라가는 걸 보면 기분이 좋았어요. 제 글에 대한 감상을 남기는 분이 많아질수록 글 쓰는 재미도 있었고요. 댓글 중독이었죠. 댓글 보려고 글을 썼습니다.” 김동식은 독자들이 만든 작가였다.

그는 2년 동안 500여 편의 소설을 썼다. 아무리 짧다지만, 어떻게 그렇게 쓸 수 있을까. “서울 생활 10년 동안 집과 공장만 오갔어요. 목적 없이 외출도 잘 안 해요. 만남도 외출도 없고, 글 쓰고, 생각하고, 인터넷 사이트 돌아다니고, 생활이 단조롭습니다. 뭔가 단서가 떠오르면 오늘은 이거 쓰자, 어떻게 전개할까 생각하고, 뼈대가 잡히면 시작하는 거죠. 첫 문장은 머릿속에서 완성시킵니다. 멋지게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첫 문장을 써야 시동이 걸리니까요.” 그렇게 시동 걸려 쓴 작품은 책으로 세상에 나왔다. 2017년 12월에 ‘회색인간’ ‘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 ‘13일의 김남우’를 동시에 출간했다. ‘양심 고백’ ‘정말 미안하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하나의 인류, 인류의 하나’ ‘살인자의 정석’ ‘성공한 인생’ 등을 이어서 냈다.

■책 안 읽는 아이들이 토론도 한다

김 작가의 글을 오프라인 세상으로 끌어낸 것은 ‘대리사회’의 저자 김민섭 씨였다. “책을 내자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신기했어요. ‘내가 무슨 책을 내지?’ 싶었죠. 솔직하게 말해서 내 인생에서 기념할 만한 이벤트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었어요. 물론 책이 성공하면 어떻게 될까 하는 망상은 있었어요. 그 망상보다 더 좋은 결과였죠. 제 소설에 깊이가 없다고 하는 분도 많습니다. 공감합니다.”

문학의 깊이란 무엇일까. 책을 읽어야 그 깊이에 대해 생각할 텐데, 현재의 독자는 책을 잘 읽지 않는다. 그래서 김 작가의 소설에 끌리는 독자가 많은지도 모른다. 어렵지 않고, 길지 않고, 재미있고, 읽고 나면 이런저런 생각거리가 생긴다.

“학교에 강연을 하러 가서 아이들을 만나는 게 좋습니다. 교사 한 분이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지독하게 공부도 안 하고 책도 안 읽는 학생이 김동식 소설 한 권을 다 읽고 또 다른 책을 찾더라. 책을 읽은 아이들이 토론도 하더라’. 나처럼 공부도 싫어하고 책도 안 읽는다는 아이들에게 조금이나 영향을 줄 수 있다니, 그 아이들 만나는 게 얼마나 설레고 즐거운지 몰라요.”

그의 소설에는 같은 캐릭터가 계속 등장한다. 그러나 연작소설이 아니다. “독자들이 각각의 인물을 좋아하더라구요. 등장인물에 팬이 생긴 거 같아요. 글 쓸 때마다 주인공 이름을 만드는 것도 힘들고 해서 계속 등장시킵니다. 배우가 여러 작품에 출연하는 것과 같지요.”

그는 ‘새로운 소설, 새로운 작가’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과장이라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10년 전만 해도 제 소설은 인정 못 받았을 겁니다. 콘텐츠의 소비 형태가 바뀌었고, 대중의 수용이 더 다양해진 덕분이죠. 지금의 제 감각은 인터넷에 있어요.”

정통소설에 가치를 두는 독자들은 그의 소설이 조금은 낯설지도 모른다. 그러나 김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 우리가 사는 사회가 어떤 모습인지 생각하게 된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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