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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남영희가 만난 무대 위의 사람들 <14> 첼리스트 양욱진

테크닉 뺀 클래식 첼로 선율, 세월의 깊이만큼 심금 울리네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7-28 18:46:09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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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첼리스트 부모 덕 자연스레 접해
- 뉴욕 유학 후 여러 단체서 연주
- 뉴욕필하모닉 목표로 1년 전념
- 최종 오디션 남겨두고 귀국 결심
- 부산시향 수석 첼리스트 길 택해

- 유명 연주단체 악장 초청기획 등
- 지역 음악계에 활력 불어넣어
- “음악 통해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 그 속에 이야기 전달 방법 고민”

지난달 영화의전당에서 양욱진(46)의 독주회가 열렸다. 양욱진은 부산시향 수석을 거쳐 인제대 교수로 재직 중인 첼리스트다. 참으로 ‘클래식’한 공연이었다. 뉴욕이나 빈이 아니라 부산 시내 공연장에서 이 연주를 듣는다는 사실이 매우 자랑스러웠다. 어떤 장식이나 장치도 없었지만 음악만으로도 무대는 충만했다. 프로그램은 드물게도 모두 러시아 작곡가의 작품이었다.

양욱진 인제대 교수가 숙명 같은 존재인 첼로와 부산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성효 전문기자 kimsh@kookje.co.kr
“예전에는 제 테크닉을 보여줄 수 있는 화려한 곡을 좋아했었는데, 최근 들어 슈베르트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베토벤, 브람스의 소나타를 즐겨 연주해요. 과거에는 선호하지 않던 곡들이죠. 음악을 통해 저 자신을 드러내고 표현하기보다는 음악 그 자체가 담고 있는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할까 고민합니다. 자연스럽게 그런 곡들을 재발견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번 선곡도 같은 맥락입니다. 프로코피예프 첼로 소나타는 음대에 갓 입학한 첼로 전공자가 연주할 수 있을 만큼 어렵지 않습니다. 화려하거나 흥미진진한 부분도 없죠. 하지만 곡을 듣고 있노라면 할아버지가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잔잔하게 들려주는 듯하죠. 작곡가의 응어리진 감정의 굴곡도 느껴집니다.”

굳이 표현하려 애쓰지 않았어도 무르익은 테크닉은 소리 속에 정갈하게 드러났고 만석의 객석에서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보는’ 음악이 아니라 ‘듣는’ 음악으로 깊은 사색과 충만한 휴식이 내내 교차했다.

■숙명 같은 존재, 첼로와 부산

양 교수의 첼로 연주 모습.
첼로의 선구자 양재표 선생이 그의 선친이며, 모친 김영순 선생 역시 첼리스트다. 어린 시절부터 종일 첼로 소리를 들으며 자란 그에게 첼로는 숙명 같은 존재였다.

“어릴 때는 세상 사람 모두 첼로를 연주하는 줄 알았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전교생 가운데 첼로를 하는 사람이 저밖에 없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어요. 조용한 성격이었는데, 학예회에서 첼로를 연주했더니 친구들이 아주 좋아했습니다. 어린 마음에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려면 특별한 말이나 행동 없이도 첼로를 잘 연주해 들려주면 되는구나 여겼지요.”

그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이화·경향콩쿠르 1등을 차지하고, 바이올린을 하는 여동생 양정선 씨는 육영콩쿠르에서 전체 대상을 수상했다. 가족은 디즈니랜드 여행길에 올랐다. 수상 선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남매는 그길로 뉴욕에 남게 되었다. 자식의 남다른 재능을 꽃피우고 싶었던 부모의 깊은 뜻을 그때는 헤아리지 못했다. 줄리아드 예비학교를 거쳐 줄리아드음대, 매네스음대 대학원, 뉴욕주립대 스토니브룩 박사과정까지 마친 후 뉴저지 모리스주립대 교수로 활동하며 뉴욕의 여러 단체에서 연주 활동을 했다.

가정을 꾸리게 되자 보다 안정적인 직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뉴욕필하모닉 입단을 목표로 1년을 오로지 연습에만 몰두하는 동안 아내는 임신한 몸으로 레슨과 연주로 남편을 뒷바라지했다. 세계적인 교향악단인 만큼 까다롭기로 유명한 뉴욕필의 2차 오디션까지 통과하고 마지막 관문만을 남기고 있던 때 느닷없이 귀국을 결정하게 된다. 2007년 부산시향 수석 첼리스트로 초빙되었기 때문이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부산이라 하니 주변 사람들은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2006년 부산에 객원 수석으로 잠시 왔었어요. 유치원 때 아버지가 제1회 부산음악콩쿠르 심사위원으로 오셨을 때 따라온 적 있으니 두 번째 방문이었죠. 항구도시라 그런지 부산은 무작정 서울을 쫓아가려 하지 않고 오히려 국제적인 감각을 갖춘 도시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명망 있는 연주자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의 빼어난 연주자들의 무대가 많아서 좋았습니다.”
■젊었던 첼로 소리 점점 깊어간다

부산에 정착하자마자 지역 음악계에 적지 않은 활력을 불어넣었다. 부산시향 첼로 파트 단원들과 첼로앙상블 연주를 여러 차례 개최하여 첼로라는 악기의 매력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마치 베를린필 12 첼리스트(Berlin Phil 12 Cellists)처럼 말이다. 그가 주도한 IPB(International Players in Busan)는 부산을 대표하는 실내악단 가운데 하나다. 어떤 간섭이나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신들의 음악을 즐겁게 해보자는 생각으로 뭉쳤다. 특히 베를린필, 런던심포니, 이스라엘심포니처럼 유명한 연주단체의 악장을 초청한 기획은 많은 이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인제대 졸업생과 재학생들로 구성된 첼로앙상블 ‘원더 첼로(Wonder Cello)’ 역시 젊고 활기찬 색채로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대학에 몸담은 지도 어느덧 10년이다. 가르치는 일이 어떤지 궁금했다. “학생들이 욕심도 적고 착해요. 치열한 경쟁에 아랑곳하지 않고 함께하는 공연 자체를 즐기는 것 같아요.” 그는 매사추세츠공대(MIT) 컴퓨터공학과에 합격한 특이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음악에서 ‘느리게’ 또는 ‘슬프게’라 하면 얼마나 느리고 슬픈지 명확하게 잴 수 없지만, 컴퓨터는 입력한 그대로 출력되기 때문에 흥미로웠단다. 결국 운명처럼 첼리스트의 삶을 선택했듯이, 제자들이 자신의 길을 당당하게 걸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 선생의 역할이라며 환하게 웃는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들어간다. 나이 듦은 슬프기도 하지만 때론 축복이기도 하다. 예술가라면 더욱 그러하리라. 눈부신 테크닉과 독보적인 컬러로 관객을 사로잡던 그의 음악도 세월만큼이나 깊다. 온 마음을 울릴 첼로 소리가 오늘도 내일도 점점 더 깊어갈 것이다. 이즈음 서글서글한 눈가에 하나둘 자리 잡기 시작한 주름이 슬프지 않은 이유다.

공연기획자·부산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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