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마천루, 서울의 고층빌딩, 파리 오르세미술관의 관람객, 호주 시드니의 인기 휴양지인 본다이비치 등을 다른 시간, 다양한 시점에서 수백장 찍고 나서, 마치 순간을 포착한 것처럼 포토샵으로 한 장의 이미지로 조합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만남’이 빚어낸 가상의 풍경은 실재와 허구 사이를 오간다. 낯설면서도 익숙하고,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임상빈 작가의 ‘Acropolis, Greece’. 소울아트스페이스 제공

임상빈 작가가 부산 해운대구 소울아트스페이스에서 개인전 ‘인공(Artificiality)’을 열고 있다. 마흔세 살 작가의 열여덟 번째 개인전이니 활동이 그만큼 왕성함을 알 수 있다. 임 작가의 작품은 친숙한 도시 풍경을 넓게 찍은 파노라마 사진 같은데, 들여다보면 실재와 가상이 절묘하게 결합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진 속에 들어 있는 이미지 하나하나는 모두 사실이고 존재하는 것들이지만, 그것들이 합쳐진 모습은 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사진보다 더욱더 깊게 느껴지는 분위기는 수많은 이미지를 중첩하고 조합한 데서 나온다.

전시회 제목 ‘인공’은 그가 사진 속에 담아낸 것을 그대로 요약한다. 디지털과 아날로그, 인간과 도시가 만난다. 최신작업 13점은 작가가 포토샵의 자동완성기능(photomerge)을 사용하면서 경험했던 오류와 기대 이상의 결과를 적용했다. 포토샵을 사용하더라도 색상보정, 이미지 합성, 디자인 등을 완성하는 데에는 사용자의 계획과 결정이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번 작업에서 작가는 다분히 의도적으로 그것을 기계에 맡기는 실험을 통해 예상하지 못한 좋은 결과를 얻기도 했다고 말한다.

전시장에서 만난 임 작가는 “자동완성기능으로 보통 40여 장, 많게는 100장 이상의 이미지를 합성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유기적인 형태를 물질적으로 노출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 전에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도구로만 사용했다면, 이번 작품은 기계와 사람이 수평적, 동등한 자격으로 협업한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그리스의 아크로폴리스, 인도네시아의 발리 등 세계적인 유적지와 도시 풍경을 과장, 왜곡, 재배치하는 과정을 통해 작가만의 시선과 예술적 통찰력을 느낄 수 있다. 임 작가는 이 사진들을 종이가 아니라 알루미늄판에 현상하는 기법을 사용했다. 이는 작품의 내구성을 높이는 한편 금속이 가지는 물성을 부각한다.

정홍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