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년생 김지영’보다 먼저 구상
- 가상의 도시국가 속 소수자들
- 사회 내재된 문제점 끄집어내
- 부조리 굴복 않는 메시지 전달

소설가 조남주는 ‘82년생 김지영’으로 ‘페미니즘’의 아이콘이 됐다. 2016년 출간돼 2년 만에 100만 부가 팔린 소설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한국 사회 페미니즘 운동과 담론에 큰 영향을 미쳤을 만큼 묵직했다. 제도적 성차별이 줄어든 시대에 오히려 더 활발하게 작동하는 보이지 않는 성차별이 어떻게 여성들의 삶을 제약하고 억압하는지 생생하게 보여줬다.

3년 만에 장편소설 ‘사하맨션’을 낸 소설가 조남주. 민음사(ⓒ최승도) 제공

조 작가가 3년 만에 장편소설 ‘사하맨션’을 냈다. ‘작가의 말’을 보면 2012년 3월부터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82년생 김지영’ 보다 먼저 구상했지만 세상에 나오기까지 7년이 걸렸다. ‘왜 그렇게 오래 썼을까?’라는 궁금증은 책을 들여다보면 어느 정도 풀린다.

‘82년생 김지영’이 주인공 ‘김지영 씨’의 기억을 바탕으로 한 고백과 고백을 뒷받침하는 각종 통계 자료, 기사들을 씨줄과 날줄처럼 촘촘하게 엮었다면 ‘사하맨션’은 완전히 다르다. 작가가 가상의 세계를 만들었다. 기업 인수로 탄생한 도시국가인 ‘타운’이 배경이다. 이곳에는 주민권을 지닌 L과 체류권을 지닌 L2가 산다. L은 일정한 경제력과 전문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고 L2는 힘들고 더럽고 보수가 적은 일을 하며 2년마다 체류권을 연장해야 한다.

L과 L2에 진입하지 못한 사람들은 전기와 수도, 가스 등 문명의 혜택이 단절된 불법 건축물 ‘사하맨션’에 몰려 산다. ‘사하’라 불리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엄마의 추락사를 자살로 둔갑시킨 사장을 죽이고 도피한 도경과 그의 누나 진경, 낙태 시술을 하다가 사고가 발생해 도망친 꽃님이 할머니, 태어날 때부터 한쪽 눈이 없는 사라, 생체 실험의 대상으로 살아온 우미 등이다. 우리 사회의 약자이고 소수자들이다. 작가의 시선은 페미니즘을 토대로 더 넓게 확장되고 있다.

소설 속 타운과 사하는 가상의 세계지만 낯설거나 불편하지 않다. 그건 가상의 세계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 내재하고 있었지만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또 다른 모습을 작가가 끄집어냈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작가는 부조리한 사회에 더는 억압당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요즘 사라에게 너머의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 왔던 많은 일들에 화가 나고 억울했다.”(112쪽)

이어 자신이 지향하는 삶도 소리 높여 외친다. “난 이제 지렁이나 나방이나 선인장이나 그런 것처럼 그냥 살아만 있는 거 말고 제대로 살고 싶어.”(112쪽)

작가는 의지와 지향에서 그치지 않는다. 끝내 굴복하지 않고 행동한다. 소설의 마지막에 선명하게 보여준다. 책을 덮어도 작가의 목소리가 여운처럼 남는다.참고로 한 가지 덧붙이면 제목이 상당히 익숙한 데 ‘사하’는 러시아 극동연방 지구 북부에 있는 사하공화국에서 따왔다. 영화 70도와 영상 30도를 넘나드는 곳이지만 세계 다이아몬드 매장량의 절반 정도를 보유한 것으로 짐작되는 공간을 통해 혹독한 환경에도 보석 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희망을 은유한다.

김희국 기자 kuki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