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 중구 갤러리 604 … 다음 달 22일까지

사물의 형태를 묘사하는 윤곽선은 없고 색채만으로 형태를 표현했다. 캔버스의 흰 속살이 그대로 드러나기도 할 만큼 사방에 여백을 남겼다. 각양각색 오브제로 화면을 가득 채운 회화보다 훨씬 단순하지만 시선은 더 오래, 깊게 머문다. 보면 볼수록 붓질 하나하나의 의미와 색의 조합, 작품 탄생 과정이 궁금해진다.

다미앙 카반의 ‘Colored objects, white background’. 갤러리 604 제공

부산 중구 갤러리 604에서 열리고 있는 프랑스 출신의 회화 작가 다미앙 카반의 개인전 ‘박스와 꽃(Boxes and Flowers)’은 동시대 회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프랑스 파리에 거주하는 다미앙 카반은 2011년 세계적인 미술상 중 하나인 마르셀 뒤샹 상 최종 후보에 올랐고, 2014년 부산비엔날레에 유럽 대표 작가로 참여한 세계 미술 시장에서 주목받는 작가다. 그는 작가 집안에서 태어나 유년기부터 그림을 그렸고 파리의 수많은 미술관과 갤러리의 전시를 보며 색의 세계에 빠져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어려서 체득한 색채에 대한 감각은 1979년 프랑스 국립예술학교인 에콜 드 보 자르에 입학 후 졸업할 때까지 조각과 페인팅 작업을 동시에 하며 발전시켜 나갔다.

작품 앞에 선 프랑스 출신 회화 작가 다미앙 카반.

특히 다미앙은 구상과 비구상, 회화와 조각, 설치와 영상까지 미술의 다양한 분야를 능수능란하게 넘나들며 자신의 개성이 강하게 드러난 작품을 선보였다. 색이 들어간 사각형을 재작업하는 추상 시리즈와 점토를 활용한 인체 조각, 구상 자화상 등이 대표작이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자신의 작업실에 쌓아놓은 박스와 꽃을 그린 신작 13점을 선보인다. 입체감이 거의 없는 색면으로 사물을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즉, 꽃과 박스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형태’에 의해 그려져 있기보다는 ‘색채’에 의해 그려져 있다. 과감하게 칠한 붓 자국은 역동적이면서도 자유로운 그의 작업 세계를 보여준다. 그는 “꽃은 다양한 색만큼 유연하게 표현할 수 있어서 작품 주제로 선택했다. 공간과 사물에 대한 느낌을 주변 환경과 연결시켜 색으로 표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캔버스가 나무 틀에 고정되어 있지 않은 점도 다미앙의 시그니처다. 그는 그림을 먼저 그린 후 작품에 맞게 캔버스 천을 자르는데, 틀에 박힌 크기 안에 무언가를 채워넣는 방식이 아니어서 시각적 개방감을 준다. 그의 작품 대부분은 사방에 여백이 있거나 물감이 흘러내린 자국이 그대로 남아 미완성 그림처럼 보인다.

그는 “동양화에서 보이는 여백의 느낌을 좋아한다. 보통 서양의 회화에서 흰 여백을 남겨두는 것은 미완성의 의미가 크지만, 나에게 있어 여백은 확장되는 공간, 무한한 공간이다. 그래서 그림을 그린 후 마음에 들면 배경은 여백으로 남겨둔다”고 설명했다.

그의 국내 전시는 2015년 갤러리 604에서 열린 ‘사람들과 사물들(People and Things)’에 이어 두 번째다. 갤러리 604 장지영 큐레이터는 “더는 새로운 것이 나올 수 없다는 현대 미술에서 다미앙 카반은 아직도 회화가 가능하다는 희망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전시는 다음 달 22일까지다.

정홍주 기자 hjeye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