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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의 그곳에서 만난 책 <57> 소설가 현기영의 산문집 ‘소설가는 늙지 않는다’

“제주4·3, 그 아픔을 보듬기엔 우리의 언어가 빈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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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4-14 19:10:53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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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가 아름답지만 슬픈 까닭은
- 집단 양민학살 상처가 있어서다
- 작가의 몸 속과 작품마다에는
- 여전히 아픔의 바다가 흐르고…

- ‘너희들은 몰라도 된다’라며
- 아무도 4·3을 말해주지 않고
- 소설 속에서 읽었다는 독자와
- 한 소설가의 삶과 제주 이야기
- 북콘서트는 그렇게 깊어갔다

“괜히 비행기를 탔다 싶었다. 기차를 타고 배를 타야 하는 건데 팔 년 만의 귀향을 직장 통근시간에 불과한 단 오십 분에 끝내다니.”
   
지난달 30일 제주 조천리 북카페 ‘시인의 집’에서 열린 북콘서트를 찾은 독자들과 만난 소설가 현기영.
현기영의 소설 ‘순이 삼촌’의 화자 ‘나’가 고향 제주도로 가는 마음을 표현한 소설의 한 문장이다.

비행기를 타고 눈 아래 펼쳐지는 봄 바다를 내려다보면서 감탄 몇 번 하다 보니 어느새 제주도란다. 육지에서 이토록 가까운 고향 제주도를 자주 찾지 못한 아쉬움에 가슴이 저미는 소설 속 ‘나’의 마음과 비교할 수도, 비교할 일도 아니지만 그 짧은 시간에 제주도에 도착했다.

   
강연 모습.
4월의 제주는 아름답지만, 또 슬프다. 4·3이라는 아픈 역사가 있어서다. ‘순이 삼촌’은 1978년 ‘창작과 비평’에 발표되면서 4·3을 시대의 한복판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4·3사건’으로 총칭되는 제주도 양민 집단학살로 인한 제주도민의 깊은 상처를 그린 최초의 소설이다.

소설가 현기영은 올해 제3회 제주4·3평화상을 수상했다. 수상식 참여를 위해 제주도에 오는 작가를 모시고 북콘서트를 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제주 조천리에서 북카페 ‘시인의 집’을 운영하는 손세실리아 시인이 전해준 소식이었다. 제주에서 ‘순이 삼촌’의 현기영 소설가를 만날 수 있다니, 어찌 가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2003년 3월, 국제신문 문학기행에서 현기영 소설가를 제주 북촌리에서 만난 적이 있다. 우연이었지만, 그날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4·3사건’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와 희생자의 명예회복을 지시했던 날이었다. 그때는 ‘순이 삼촌’의 배경이자 북촌리 사람들 희생의 현장이던 북촌초등학교에서 그를 만났다. 이번에는 조천리 ‘시인의 집’에서 산문집 ‘소설가는 늙지 않는다’를 놓고 열리는 북콘서트 현장이다.

■제주 바다를 사랑하는 소설가

   
소설가는 늙지 않는다- 현기영·2016·다산책방
북콘서트가 열린 지난달 30일 오후 7시를 앞두고 독자들이 하나둘 카페를 찾아왔다. 제주에 살고 있는 카페 단골 고객과 중학생 초등학생 자녀를 데리고 온 가족 중에 관광객도 있었다. 여행길에 카페에 들렀다가 북콘서트 소식을 듣고 여행일정을 바꾸어 참석한 것이다. 독자들은 ‘순이 삼촌’ ‘지상에 숟가락 하나’ ‘소설가는 늙지 않는다’를 펼쳐보았다. 그들에게 ‘제주4·3’을 오롯이 담아 만든 동백꽃 뱃지가 하나씩 주어졌다. 바다 쪽으로 낸 카페 테라스에 마련된 콘서트 자리는 금세 30여 명의 독자로 빼곡하게 들어찼고, 독자들의 가슴마다 동백꽃이 피었다.
사회를 볼 김수열 시인이 현기영 소설가와 함께 앞에 앉았다. 현기영 소설가는 바다 쪽을 잠시 바라보며 말했다. “바다가 천천히, 가득 차는 게 보이나요.” 독자들도 바다를 보았다. 배를 타고 있는 듯 바다가 바로 옆까지 다가와 있었다. 파도소리 같기도 하고, 바람소리 같기도 한 바다의 울음이 들려왔다.

1941년 제주에서 태어난 소설가는 서울대 영어교육과로 진학하며 고향을 떠날 때 제주 바다를 가슴에 품고 떠났다고 했다. 늘 그리운 바다였다. 그래서 제주에 와서 술을 마실 때는 바다의 수평선과 잔을 맞춘다. “수평선에 잔의 술금을 맞추는 거죠. 그러면 술이 푸른 바다가 됩니다.”

산문집 ‘소설가는 늙지 않는다’는 현기영의 회고록이며, 늙음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다. 한 인간으로서, 소설가로서 살아온 삶이 있다. 그를 이루고 있는, 만들어낸 세계를 엿볼 수 있다. 책 속 ‘바다 열병’에 이런 대목이 있다. “도시에 사는 나는 늘 잡다한 욕망과 불안에 시달린다. 욕망과 불안으로 나의 피, 내 안의 바다가 혼탁해졌다. 그래서 내 안의 바다를 정화키 위해 바다로 가는 것이다.” 그의 몸속에는 제주 바다가 흐르고 있을 것 같다.

‘순이 삼촌’을 쓴 소설가에게 ‘제주4·3’은 어떤 무게일까. 책 속 ‘압도적인 불행과 문학’에서 그 마음을 엿본다. “예컨대 4·3사건과 같은 큰 불행, 큰 재난은 너무도 압도적이어서 문학에 수용하기가 아무래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중략) 4·3의 3만 죽음은 우리의 인식 능력과 상상력을 훨씬 초월해버린다. 이 엄청난 슬픔을 어떤 말로 애도할 수 있을까?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3만의 죽음은 우리의 인식능력을 초월해버리기 때문에, 그것을 표현하기에는 말이 너무 모자라다. 그 사건 앞에서 인간의 언어는 너무도 빈약하다.” 현기영 소설가는 이렇게 말했다. “일상이 문학을 지배하고 있어요. 그것은 우리 사회의 이야기가 외면당하는 결과를 가져왔지요. 문학이 너무 유약해진 겁니다. 다시 큰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그렇다. 소설 ‘순이 삼촌’을 읽고 4·3의 비극을 알게 되었다며 눈물짓는 독자들이 많다. 인간의 언어는 빈약할지 몰라도, 우리는 그 언어로 기록하고 또 읽는다. 그리고 기억의 실마리와 언젠가는 모두 밝혀내야 할 역사의 단초를 남기는 것이다.

■침착하고 뜨거웠던 북콘서트

북콘서트에 참여한 독자들의 분위기는 침착했으나 뜨거웠다. 제주에 산다는 한 중년여성 독자는 이런 말을 했다. “4·3이 무어냐고 물었을 때 ‘너희들은 몰라도 된다’는 답을 들으면서 자랐어요.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고, 배우지도 못했지요.” 그는 밑줄 그으면서 읽었다는 ‘순이 삼촌’의 한 대목을 읽었다. 부모님과 함께 온 여중생은 4·3을 학교에서 배웠다고 했다. 여중생은 “육지의 학생이 4·3에 대해 잘못 알고 말하는 걸 접할 때마다 답답하고 속상해요. 우리가 더 정확하게, 많이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라고 말했다. 역사를 제대로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어린 학생의 말에 어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소설가의 삶과 문학, 제주를 이야기하는 동안 밤이 깊어갔다. 현기영 소설가는 4·3을 다루는 장편소설을 준비 중이다. ‘순이 삼촌’은 북촌리가 배경인데, 새로 준비하고 있는 소설은 조천리를 배경으로 한다.

   
북콘서트가 끝나고 독자들은 소설가의 사인을 받았다. 독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쓴 아래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새벽의 빛’. 깊은 밤이 기울고 찾아올 새벽의 빛이 제주를, 세상을 환히 밝힐 것이다.

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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