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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의 그곳에서 만난 책 <56> 곽한영 교수의 ‘피터와 앨리스와 푸의 여행’

빛바랜 동화책의 첫장, 닫혔던 동심의 문 열었죠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3-31 18:47:02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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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나다 밴쿠버의 한 고서점서
- ‘키다리 아저씨’ 초판본 발견
- 어릴 적 읽었던 이야기 생각나
- 이후부터 명작동화 고서 수집
- 한국판엔 빠진 삽화 찾는 재미도

- 고서점서 만난 동화 10편 선정
- 작가의 삶 등 이야기 엮어 발간
- “책의 의미 더 깊게 생각하게 돼”

누구에게나 내 인생의 동화 한 편 정도는 있지 않을까. 세세한 장면이 기억나지 않더라도, 책을 읽고 난 다음 찾아왔던 감동은 남아 있을 것이다. 피터 팬,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곰돌이 푸, 톰 소여, 빨간 머리 앤…. 어린 시절 친구처럼 익숙하고 반가운 이름들이다.

1970, 80년대에 어린 시절과 청소년 시절을 보낸 세대는 요즘처럼 읽을 책이 풍부하지 않았다. 집에 세계명작동화전집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은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다. 그래서 책은 귀했고, 책 읽는 즐거움이 더 컸는지도 모른다. 어른이 되고 난 다음에도 어린 시절 읽었던 책을 생각하면 괜히 미소가 지어진다. 마음속에 남아 있는 동심을 단숨에 불러온다. ‘피터와 앨리스와 푸의 여행’이라는 책 제목을 보았을 때 그 기억의 문이 활짝 열리는 듯했다. 부산대학교 사범대학 일반사회교육학과에 재직하는 저자 곽한영 교수를 만났다.
   
부산대 곽한영 교수가 그동안 수집한 고서에 관한 일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박수현 선임기자 parksh@kookje.co.kr
■외국의 고서점에서 만난 ‘키다리 아저씨’ 초판본
곽 교수는 1973년 대전에서 나고 자랐다. 서울대 사회교육학과를 졸업했다. 2008년 부산대 교수로 오면서 부산사람으로 살고 있다. ‘혼돈과 질서’ ‘게임의 법칙’ 등의 책과, 고서점에서 만난 동화들 이야기를 담은 ‘피터와 앨리스와 푸의 여행’을 냈다. 그는 2015년 캐나다에 방문교수로 갔다. 밴쿠버의 고서점에서 ‘키다리 아저씨’의 초판본을 우연히 발견한 뒤, 명작동화의 초판본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피터와 앨리스와 푸의 여행’은 곽 교수가 수집한 책들 중에서 10편을 선정해 작가의 삶과 작품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준다.

   
곽한영 교수가 소장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초판본.
취재 약속을 했을 때부터 고서를 보여 달라고 부탁했고, “준비했다”는 답을 들은 터라 연구실에 들어설 때는 가슴이 설렜다. 책상 위에 그가 처음 구입한 ‘키다리 아저씨’를 비롯해 여러 권의 책들이 놓여 있었다. 빛은 바랬지만 금박으로 박은 제목, 아름다운 삽화…. 손을 대기도 조심스러웠는데, 편하게 보라며 앞으로 밀어주었다.

“어렸을 적에는 우리 집에 책이 많다고 생각했어요. 10칸 정도 되는 책장이 있었는데 그땐 키가 작아서 그렇게 보였나 봐요. 제일 밑에는 백과사전, 그 위로 명작동화전집, 위에는 위인전기가 있었지요. 외국동화를 볼 때면, 내 책장 안에 세계가 통째로 들어와 있는 것 같았지요.”

곽 교수가 어린 시절의 책을 다시 만난 건 캐나다에서였다. 학술회의에 참석하러 밴쿠버에 갔을 때 허름한 헌책방을 만났다. 헌책방에 들어갔던 장면을 책에서 읽어보자. “이 책 저 책 뒤적거리며 시간을 보내다가 이만 돌아갈까 하고 손을 털며 일어서는데 문득, 구석에 삐죽이 나온 파란색 표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색이 고와 보여서 뽑아 든 그 책의 표지엔 파란 바탕 위에 하얀 장미와 함께 ‘Daddy Long Legs’라는 제목이 압인 되어 있었습니다. ‘키다리 아저씨’였습니다. 세계 문학 전집 중에서도 유난히 좋아해서 삽화 하나하나를 외울 정도로 거듭 읽었던 책이죠. 표지를 넘겨보니 발행 연도가 1912년 초판본이었습니다.”

   
곽한영 교수가 소장한 동화집 ‘DREAM DAYS’ 초판본. 삽화를 보호하기 위한 트레이싱 페이퍼가 눈에 띈다.
‘키다리 아저씨’의 초판본을 펼쳐 보았다. 필자가 어릴 적 ‘딱따구리 그레이트 북스’ 전집으로 보았던 ‘키다리 아저씨’의 삽화가 그대로 있었다. 신기했다. “우리나라에서 번역 출판될 때 빠진 삽화가 많아요”라는 말을 들으니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고서들 중에서 판형이 큰 책이 보였다. 셜록 홈스 시리즈를 연재했던 잡지 ‘스트랜드 매거진’ 영인본이다. 홈스 시리즈를 끝내고 싶어 했던 코난 도일을 끝까지 놓아주지 않고, 죽었던 홈스를 결국 다시 살려내게 했던 바로 그 잡지다. 두 페이지가 연결되어 있어 종이칼로 페이지를 잘라가며 책을 읽어야 하는 제본방식의 책도 있었다. 누군가 조심스레 종이칼로 잘라가며 읽었던 흔적이 고스란히 보인다. 삽화를 보호하기 위해 트레이싱 페이퍼를 일일이 넣고 제본한 책은 정성과 마음이 느껴졌다. 한 권 한 권 책을 설명하는 곽 교수의 이야기를 듣느라 취재는 뒷전으로 밀려나 버리고 말았다.

■ 책의 의미를 되살려주는 고서

   
피터와 앨리스와 푸의 여행 - 곽한영·2017·창비
법교육을 전공한 곽 교수는 왜 고서를 수집하는 걸까. “초중고 학생들에게 법을 교육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법에 관한 지식을 알려주기 위함이 아니라, 시민으로 기르는 거지요. 법과 제도를 신뢰하고, 이 사회의 주인으로서 살아가는 건강한 시민. 그러자면 마음이 먼저입니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과 행동의 원형은 이야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인류가 축적해 온 지식과 지혜는 이야기로 전해져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종이책, 전자책을 넘어 다양한 매체와 형식으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어요. 이야기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지요.”

고서 수집 비용에 대해 물어보자 그는 “인터뷰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질문이네요”라며 웃었다. 고가의 희귀본을 투자 목적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면 그렇게 큰 부담은 없다고 한다. 그는 오로지 좋아하는 책을 수집하고 있다. “외국의 고서 수집가들은 고서를 살 때 세 가지 원칙이 있어요. 그 모두가 책의 컨디션이죠.” 그는 ‘어린 왕자’의 초판본을 보여주었다. 표지에 물이 스며들었다가 마른 흔적이 보이는 것 말고는 멀쩡한 책이다. “이 흔적 때문에 잘 보존된 초판본 가격의 3분의 1 가격으로 경매에 나왔지요.” ‘어린 왕자’ 초판본을 펼쳐보았다. 생텍쥐페리의 그림이 아직도 생생하다. 우리나라 번역본은 물론이고, 초판본 이후에 출판된 원서에서도 더 이상 볼 수 없는 그림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곽 교수는 ‘피터와 앨리스와 푸의 여행’에 수록하지 못한 다른 책들을 모아 또 한 권의 책을 쓸 계획을 가지고 있다. “예전에 읽었던 이야기가 내 마음속에서 죽어 있구나 하는 걸 느낄 때가 있었어요. 그런데 고서를 수집하면서 어릴 적 읽었던 책의 의미를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됩니다.” 그는 또 말했다. “인간이 ‘이야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이야기는 계속되겠지요. 이제는 책이 상품으로서 어떻게 살아남을지 생각해야겠지요.” 고서를 보면서 어릴 적 책 속의 친구를 만나고 돌아서는 길, 정말 어떻게 하면 책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 생각해본다. 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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