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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남영희가 만난 무대 위의 사람들 <5> 테너 김지호

수도승처럼 걸었던 음악의 길 … “실패 거듭해도 포기 않았어요”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3-10 18:54:38
  •  |  본지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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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장서 일하다 사고 후 노래 결심
- 힘들게 경성대 음악학과에 입학

- 독일 쾰른음대서 음악에만 매진
- 투란도트 등 오페라 제안 쇄도
- 고향 위해 부산성악가협회 결성

- “입시, 오디션 한번에 된 적 없어
- 모자람 채우려고 더욱 분발”

공고를 갓 졸업한 가난한 청년은 부산 사상구 엄궁동 동선공장에서 모터 코팅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라인더가 얼굴을 덮치는 끔찍한 사고가 났다. 대문니 하나를 잃었다. 세로 방향이 아니었다면 이 전체가 갈려나갔을 것이다. 위치가 조금만 옆으로 비켜났다면 눈이나 코를 잃었을지 모른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쾰른음대에서 리트&오라토리오, 오페라 전공으로 석사학위, 러시아 마그니타 국립음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부산뿐만 아니라 세계무대를 누비며 노래하는 테너 김지호(48)의 청춘 시절 이야기다.
   
경성대 예술관에서 만난 테너 김지호가 포즈를 취했다. 김지호는 모교인 경성대에서 후배들을 가르치고 있다. 김성효 전문기자
■ 노래하며 살겠다고 결심하다

“어릴 때부터 교회에 다닌 덕분에 서양음악과 자연스럽게 친해졌습니다. 노래를 부르면 마음이 편해지고 영혼이 맑아지는 것 같았지요. 음악이 알게 모르게 제 몸속에, 마음속에 쌓여갔던 것 같아요.”

   
해운대 호텔 공사현장에서 일하던 모습.
사고 이후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에게는 노래였다. 일은 야간에만 했다. 낮에 공부하고 오후 7시에 출근해 오전 8시에 퇴근하는 생활은 고달팠다. 오전에 서면 단과학원에서 공부하고 오후에 해운대구 재송동에서 레슨을 받았다. 매일 라면만 먹었다. 레슨을 마치고 공장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남몰래 눈물을 훔치는 날이 많았다. 그해 입시에는 실패했다.

“죽도록 힘들었지만 계속 도전했죠. 결국 경성대 음악학과에 합격했습니다. 첫 학기는 할머니가 등록금을 마련해 주셨지만 더는 학비를 낼 수 없어 1학기 마치고 입대했습니다.” 제대 후 해운대 호텔 공사 현장에서 일해 등록금을 벌었다. 방학 때는 공장에서 일했다. 아르바이트는 급여가 적어 학생이라는 사실을 속였다. 일을 그만둘 때 공장장이 “니 학생인 줄 벌써 알고 있었다. 하도 성실해서 안 짤랐대이. 일해 줘서 고마웠고 공부 열심히 하래이”라고 말했다. 속이고 취업한 사실이 너무나 부끄럽고 죄송했지만, 더 열심히 연습하고 노래할 또 다른 이유가 됐다.

■ 음악에 빠져들었던 유학 시절
   
2009년 부산시민회관에서 열린 오페라 ‘투란도트’ 공연 모습.
“걱정 없이 연습해 보는 게 소원이었어요. 목소리 좋다는 칭찬은 들었지만 공부가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연습했지요. 3학년이 되자 노래를 해서 후원을 받기 시작했고 4학년 때부터 콩쿠르에서 상도 받게 되었죠.” 1998년 전국음악콩쿠르, 1999년 제1회 고태국음악콩쿠르에 입상한 그는 학교를 수석 졸업하고, 치열한 경쟁을 뚫고 프로 합창단에 입단했다. 노래로 안정적인 직업까지 얻었으니 평탄한 삶만 남아있는 것 같았다.

합창단을 2년 만에 그만두고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결혼도 했지만, 노래와 공부에 대한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 곁을 지키는 아내를 비롯해 가족과 교회 지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공부를 마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쾰른음대 입학 후에는 수도승처럼 오로지 음악 공부에만 몰입했다. 5년이 걸렸다.

“독일 음악학교는 고도로 전문화되어 있습니다. 음악에 특화된 인재를 키우지요. 독일 가곡, 오라토리오, 오페라 전문 교수가 분야별로 계시고, 발음만 교정해 주거나 연기, 반주, 코치를 전담하는 선생님이 각각 계십니다. 춤, 펜싱, 승마, 왈츠도 배워서 곧바로 실제 무대에 설 능력을 갖추게 합니다.”

그는 지금 모교에서 학생을 가르친다. 성악 전공자만 80여 명이다. 유학 시절 배우고 익혔던 지식과 기술을 고스란히 제자들에게 전수하고 있다. 국제콩쿠르에 입상하거나, 유럽 전문극장에 직업 가수로 진출한 제자도 있다. ‘지방대 출신’이라는 선입견을 떨쳐내고 실력으로 이루어 낸 진검승부의 결과다.

■ 부산 성악계 위해 힘 보탤 것

그의 본업은 가수다. 2017년 이탈리아 3대 야외극장 중 하나인 ‘토레 델 라고’에서 ‘라 보엠’과 ‘나비부인’ 갈라 콘서트를 열었다. 푸치니 음악을 외우다시피 하는 콧대 높은 관객도 그의 노래에 환호했다. 오는 6월 이탈리아에서 초청 독주회를 연다. 오페라 제안도 끊이지 않는다. 특히 라다메스(아이다)나 칼라프(투란도트)를 비롯한 몇몇 배역은 첫손에 꼽힌다. 서울에서도 러브콜을 보내지만, 이제 지천명에 드는 그는 부산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고향 아닙니까. 세계 어딜 가도 고향만큼 반겨주는 곳이 있을까요. 성악가들만이라도 부산을 지킬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부산의 성악 생태계가 건강해지려면 연주자의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실력은 물론 관객과 함께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뜻을 함께하는 이들과 최근 부산성악가협회를 결성했다.

무대에서 그는 늘 기품이 넘친다. 고난이나 슬픔의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 없기에 그의 청춘과 지난 이야기가 유달리 더 아프게 와닿았다. “한 번에 된 것은 없었어요. 입시도, 콩쿠르도, 오디션도 두 번, 세 번 도전 끝에 성공할 수 있었죠. 실패를 거듭하면 더 단단해지고 실수가 줄어듭니다. 부족하다 여기니 모자람을 채우기 위해 더 분발했던 것 같아요.”

   
‘노오력’의 배신이 흔하고, 미래를 희망하기보다 절망과 포기가 빠른 이즈음이다. 그럼에도 묵묵히 오늘을 견디고 있다면, 절망과 좌절을 지나 끝내 환희를 일구어낸 테너 김지호의 이야기를, 그의 노래를 들어보자. 노래하며 감동과 행복을 나누는 그의 삶이 기적이듯 오늘 하루가 선물인지도 모른다.

공연기획자·인제대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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