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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남영희가 만난 무대 위의 사람들 <4> 배우 박찬영

시립극단 퇴직 후 더 바쁜 노장 … “제 전성기는 지금 아닐까요”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2-24 18:48:36
  •  |  본지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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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학생 때 첫 연기 경험 ‘전율’
- 극예술연구회·시립극단 등 거친
- 40년 경력의 부산 연극 베테랑
- 후배들과 소통·배려하는 자세에
- 여전히 여러 무대·영화서 러브콜

- “배우는 목숨 걸 만큼 간절해야
- 공연환경 개선에 힘 보태고파”

얼마 전 개봉한 영화 ‘증인’에서 자폐아인 증인의 마음을 얻지 못해 고심하던 변호사에게 검사가 조언한다. “자폐인들은 저마다의 세계가 있어요. 당신이 거기로 들어가면 되잖아요.” 진정한 소통의 출발점을 새삼 일깨운다.

40년 경력의 배우 박찬영(66)은 이 영화에서 재판장 역으로 출연했다. 여러 영화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한편 공연 무대에서도 러브콜이 끊이지 않는다. 부산시립극단에서 퇴직한 지 벌써 8년째. 전성기를 능가하는 왕성한 활동에는 틀림없이 어떤 비결이 숨어있을 터다. 수영구 남천동의 소극장 ‘아트레볼루션’에서 그를 만났다.
   
배우 박찬영이 아트레볼루션 소극장에서 그동안의 무대 위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김성효 전문기자 kimsh@kookje.co.kr
■떠날 수 없었던 연극 무대
“연극을 워낙 좋아하니까 퇴직하고도 계속 보러 다녔어요. 기분 좋으면 뒤풀이에서 함께 어울리고. 좋은 연출자와 극단을 만나면 소주 한잔하자며 따라다녔지요. 늙은이 역에 진짜 늙은이 써보라고, 실감 난다면서 말이죠(웃음).”

아무리 명배우라도 처음부터 젊은 연출자의 마음을 얻기는 쉽지 않았다. “자기 아버지보다 나이 많은 사람과 작업하고 싶겠어요? 젊은 친구의 생각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어요. 시간이 쌓이다 보니 진심이 전해졌지요.” 그가 또 다른 전성기를 누리는 비결은 선배라고 대접받으려 하지 않고 젊은 연극인을 동료로 인식하고 대하는 데 있다.

   
2013년 ‘입살이’ 공연 때 박찬영.
박찬영은 45세이던 1998년, 부산시립극단 창단 멤버로 들어가 10여 년을 활동했다. 100명이 넘는 지원자가 몰렸고, 10명이 선발됐다. 오디션 당시 그는 안산의 공사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돈을 벌기 위해서다. 연극판을 떠나있던 게 그때가 처음은 아니었다.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면서 직장에 다녔지만 이내 무대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그리움은 곧 육체의 병이 되었고, 아내에게 연극을 하게 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다시 연극판에 돌아갔지만, 고정 수입은 없었다. “아내가 가계를 책임졌어요. 어느 날, 부산연극제를 마치고 집에 갔는데 큰딸이 엄마 혼자 너무 고생한다는 거예요. 아빠가 무능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다른 일을 했지요.” 무대에 서면 아픈 것도 씻은 듯 낫는다는 그에게는 어쩌면 그때가 가장 힘든 나날이 아니었을까.

■배우의 꿈을 꾸다

   
영화 ‘증인’에 함께 출연한 배우 정우성(오른쪽)과 사진을 찍은 모습. 박찬영 제공
무대에 대한 첫 기억은 국극이다. 할머니는 3대 독자 며느리인 그의 어머니가 외출하는 것을 싫어했다. 어머니가 국극을 보려면 어린 아들을 데려가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임춘앵과 대도극장, 영남극장 같은 이름이 아련하다. 첫 무대는 중학교 2학년 무렵이었다. 수정성당에서 성탄극 ‘예수님의 생애’를 올리는데 유다 역 배우가 빠진 것이다. 모두 꺼렸지만 그는 아주 멋진 역할이라 생각했다. 공연은 대성공을 거뒀다. 관객이 환호하는 모습이 너무나 좋았다. 그때 배우가 되겠다는 결심을 했다. 당연히 연극영화과에 가고 싶었지만 반대가 심했다. 하는 수없이 동아대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전공 공부는 제쳐두고 극예술연구회 활동에 전념하다 9년 만에 졸업했다.

“신입생환영회 공연에 출연했어요. 연극 ‘연기된 재판’이었는데, 아직도 대사가 생생히 기억납니다.” 그는 ‘존경하는 재판장님’으로 시작하는 꽤 긴 대사를 막힘 없이 읊은 다음, 학교 대나무를 베어 세트를 만들다 혼이 난 일이며 강당에서 밤을 새우던 숱한 기억을 가만히 되짚었다. “동아대에는 연극영화과가 없었지만, 우리는 동아대 연영과 학생들로 불렸지요.”

■간절함…배려

후배들에게 조언을 부탁했다. 배우의 길이 목숨을 바꿀 만큼 간절해야 한단다. “취미? 다른 것보다는 나아서? TV나 영화에 출연하고 싶어서? 그렇다면 연기하지 마세요. 간절해야 합니다. 여전히 연극인은 가난하고 춥습니다. 예술인 복지가 잘 돼 있는 것도 아니고요. 생계, 결혼, 스타가 되고 싶은 갈망 이런 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 때 하세요. 그래야 최선을 다할 수 있습니다.” 단호히 충고하지만, 부산에서 활동하는 후배들에 대한 걱정 역시 깊다. 부산에서는 희망이 없다며 상경하는 배우가 적지 않다. 기회가 있다면 걱정 없이 오로지 작품에만 매달리며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멍석을 깔아주고 공연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일에 힘을 보태고 싶단다.

   
‘증인’의 주인공 지우는 묻는다.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그에게 좋은 배우가 무엇인지 물었다. “좋은 배우는 연기를 잘하는 배우지요. 그런데 훌륭한 배우는 상대방이 잘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배우입니다. 더스틴 호프만이 한 말인데, 평생 실천하려 했습니다.” 앙상블이 무너지면 끝이라는 연극 무대에서 상대에 대한 배려를 실천해 온 노장 배우 박찬영. 젊은 연극인의 세계로 들어가 동지로서 더 좋은 무대를 만드는 젊은 배우 박찬영. 배려와 소통은 비단 연극 무대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무대에서도 더없이 중요하다. 박찬영이 말하는 훌륭한 배우는 좋은 사람이 아닐 리 없다.

공연기획자·인제대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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