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나와는 다른 가치를 중시하는 다른 사람들과 관계 맺는 법을 가르쳐 주었고, 그럼으로써 내가 모순적인 존재가 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후 내가 정신 질환, 장애, 성격 형성에 대한 글을 쓴 것은 인간에게는 가장 바람직한 단 하나의 존재 양식만 가능하다는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사명의 연장이었다.”(56쪽)

여행은 단순히 즐거움 이상이다. ‘자신을 넓히는 연습인 동시에 자신의 한계를 알아보는 연습’이다. 여행을 다녀본 사람이라면 다른 문화권을 체험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얼마나 넓어지는지 안다.

‘경험 수집가의 여행’은 우울증에 관한 최고의 저술로 평가받는 ‘한낮의 우울’의 저자 앤드루 솔로몬이 펴낸 신작이다.

저자는 브라질, 중국, 리비아, 미얀마 등 1980년대 말부터 25년간 7대륙을 누볐다. 그의 전작과 뉴욕타임스, 뉴요커 등 여러 매체에 실었던 글 가운데 28편을 엄선해 책을 엮었다.

글 중 일부는 살짝 다듬었고, 여행지 추천이 담겼던 글에서 낡은 정보가 된 부분은 지웠다고 했다. 모든 기사에 새로 두어 문단의 짧은 글을 덧붙여서 당시 저자의 체험과 이후 그곳에서 벌어진 사건들의 맥락을 설명했다.

‘경험 수집가’를 자처하는 저자답게 그의 여행은 정치, 예술, 음식, 심리학, 인류학을 넘나들며 그 사회를 사는 사람들의 심리상태와 시대정신을 포착한다. 세네갈의 우울증 치료 의식을 알기 위해 직접 온몸에 피를 뒤집어쓰거나, 샤먼 부족을 만나기 위해 몽골 소년을 길잡이 삼아 가파른 산길을 오른다. 소련의 해체를 가져온 쿠데타 현장과 남극 모험, 캄보디아 내전 생존자와의 만남, 최고 지도자 카다피의 관저로 초대받은 일 등 세계를 누비며 저자가 수집한 경험들은 여행이 어떻게 한 인간의 운명과 세상을 바꾸는 원천이 되는지를 보여준다.

정홍주 기자 hjeye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