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대한 富 쌓았던 야코프 푸거
- 가톨릭 대금업 금지 철폐하고
- 복식부기 정착시켜 경제 혁신
- 정치세력 등에 휘둘리지 않아
- 獨서 가장 위대한 자본가 꼽혀

‘월스트리트 저널’의 독일 지사와 런던 지사 책임자를 지낸 미국 언론인 그레그 스타인메츠는 저서 ‘자본가의 탄생’ 후기에 이렇게 썼다. “부자 야코프라는 이 남자는 누구이기에 독일인들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업가라고 칭송하는 것일까?…독일을 다녀온 뒤 자료 조사를 했으나 지역 도서관에서는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아마존을 검색했더니 영어책은 역사가 야코프 스트리더가 저술한 ‘부자 야코프 푸거’의 1931년 영어 번역본밖에 없었다.”(338쪽)

16세기 푸거 가문 연대기의 표지로 쓰인 야코프 푸거의 초상. 독일 아우크스부르크 푸거라이 박물관 소장. 부키 제공

그런데 ‘자본가의 탄생’을 펼쳐서 읽어가다 보면, 저자 스타인메츠가 위에서 설명한 상황이 정말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쉽게 말하면, 이런 의문이다. “아니, (경제·금융·자본가의) 역사에 이토록 큰 영향을 끼친, 거대하고 비중이 높은 인물이 영어권에 어쩌다 그렇게까지 소개가 안 됐던 것일까? 1931년 영어 번역본뿐이었다니….”

‘자본가의 탄생’은 15~16세기 유럽에서 활동한 독일 아우크스부르크 출신 경제인·금융인 야코프 푸거(1459~1525년)의 활동과 삶을 경제·금융·자본주의 역사의 관점에서 담은 책이다. 저널리스트가 쓴 책답게 근거는 보다 구체적이고, 문체는 활달하며, 서술은 간명하고, 내용은 어렵지 않다. 그래서 이 책은 그 자체로 흥미진진한 유럽 경제사이다. 굳이 야코프 푸거에 집중하지 않더라도, 훌륭한 유럽 문명사를 담은 책으로 읽을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만 읽기에는 야코프 푸거라는 인물의 삶과 영향력이 너무 거대하다. 중세 체제에 심대한 변동이 오고, 르네상스가 시작되고, 종교개혁이 이뤄지던 시대에 이 어마어마한 부자는 살았다. “야코프 푸거가 자본주의 핵심 원리 몇 가지를 발명한 게 아닐까?” 이 책의 서술을 따라가다 보면, 이런 생각이 절로 든다.

금융업, 광업, 제조업, 유통업 등으로 거대한 부를 쌓은 야코프 푸거는 유럽의 군소한 가문에 머물러 있던 합스부르크 가문이 유럽의 지배자로 부상하는 데 결정적인 재정적 영향을 끼친다. 그는 가톨릭교회가 유지하던 대금업 금지 원칙을 철폐하도록 하는데, 이는 마르틴 루터 종교개혁의 불을 당긴다.

푸거는 경제 영역에서 복식 부기가 자리 잡게 한다. 이는 한자동맹이 붕괴하고 새로운 경제체제가 싹트게 하는 데로 이어진다.

15세기에 뉴스레터를 발행하고 유럽을 포괄하는 취재망을 형성한 것도 푸거였다. 그는 유럽의 사회 체제 변동에 근본적인 영향을 끼쳐 자본주의가 형성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자본가의 탄생’이며 부제가 ‘자본은 어떻게 종교와 정치를 압도했는가’이다. 한 인물의 삶을 통해 새로운 시대의 형성과 도래를 추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조봉권 문화전문기자 bgjo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