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 같은 업무 일과를 마친 샐러리맨, 술 냄새 풍기는 중년 아저씨, 지팡이를 든 시각 장애인, 가난한 예술가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 아이를 안은 엄마…. 전철 ‘막차’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소시민들의 고단한 삶이다. 피곤함에 찌들어 졸거나, 걱정에 휩싸이고, 낯선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곳. 도시에 사는 직장인이 아침저녁으로 이용하는 전철은 매일같이 희망과 좌절이 공존하는 일상적인 공간이다.

‘막차의 신’은 인명사고가 발생해 플랫폼이 아닌 곳에 갑자기 멈춘 막차에서 발이 묶인 현대인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담았다. 1999년 ‘천사의 표류’로 제16회 산토리 미스터리 대상 우수작품상을 받은 아가와 다이주가 쓴 이 소설은 예정된 시각에 플랫폼에 도착해야만 하는 승객들의 발길을 갑작스러운 사고로 묶어놓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흥미롭게 다룬다.

책에 수록된 일곱 개 이야기의 주인공은 낯설지 않다. 사람들로 꽉 찬 만석인 전철 안에서 변태를 만난 여성, 마감기한이 코앞에 닥쳤지만 오히려 사장이 직원에게 하루의 휴식을 줌으로써 삶의 여유를 얻게 된 IT 엔지니어, 운동선수와 장거리 연애로 힘들어하는 여자, 이발사인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황급히 병원으로 달려가는 아들, 선로에 떨어진 자신과 배 속의 아이를 구해준 생명의 은인을 만나기 위해 25년간 역사 안 매점을 운영하며 기다린 중년 여성까지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들에게 닥친 운행 정지는 뜻하지 않게 인생의 전환점이 된다.

막차에 오른 사람들의 사연을 들여다보면 어느 삶 하나하나가 소중하지 않은 게 없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오늘 내 곁을 스쳐 지나간 수많은 사람의 삶도 이와 같지 않을까. 전철을 이용하면서 한 번쯤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 상상해본 사람이라면 더욱 공감하며 읽을 수 있다.

정홍주 기자 hjeye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