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문 1120편과 문헌 등 분석
- 남성 몸 표준삼고 여성은 배제
- 부자나라서 팔리는 약만 개발
- 불평등과 비윤리적 지식 비판

1969년 담배회사 필립모리스는 오스트리아의 생리학자인 한스 셀리에게 3년간 15만 달러를 주는 프로젝트를 지원했다. 그는 처음으로 ‘스트레스’라는 개념을 만든 인물이다. 담배가 발암 물질을 담고 있다는 연구들이 나오는 상황에서 필립모리스의 의도는 명확했다. “질병의 원인이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말해줄 객관적인 목소리가 필요했던 것이다. 셀리는 그해 법정에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수단으로 담배의 장점을 증언했다. 필립 모리스는 2016년 서울대 보건대학원에 ‘덜 해로운 담배 선택권’ 즉 전자담배 연구를 제안하며 장학금 지원 뜻을 밝혔으나 거절당하기도 했다.

저자는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학문을 하는 과학자들이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상품을 파는 회사의 돈으로 연구하는 것을 윤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아픔이 길이 되려면’으로 화제를 모았던 김승섭 고려대 보건과학대학 교수가 새 책 ‘우리 몸이 세계라면’으로 독자들과 만난다. 책은 몸과 보건 의학에 관련된 지식이 생산·유통되는 과정을 다룬다. 어떤 지식이 생산되고 생산되지 않는지, 누가 왜 특정 지식을 생산하는지, 우리에게 필요한 지식을 만들기 위해 ‘상식’이라 불리는 것에 질문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말한다. 김 교수는 이를 위해 1120편의 논문을 검토하고, 300여 편의 문헌을 구체적 근거로 삼았다. 촘촘하게 쌓아 올린 자료를 토대로 조선시대의 전염병 대처, 일제강점기 조선인의 건강 수준, 고대 그리스의 인체 이해와 근대 의학 발달사, 담배회사의 마케팅 전략 등 몸과 질병의 사회사와 그 배후에 작동한 권력 문제를 하나하나 짚는다.

지식이 담고 있는 불평등도 지적한다. 병원 진단 과정이나 의학 지식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남성의 몸만을 표준으로 삼아 생긴 문제와 고소득국가에서 소비되는 신약만 개발되고 저소득국가에서 필요한 약이 개발되지 못하는 현실을 지적하기도 한다. 한국에 필요한 지식임에도 국외 저널, 즉 영어 논문으로 발표되는 현실도 꼬집는다.

정홍주 기자 hjeye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