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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직후 무시험 임관…법조계 뿌리의 불편한 진실

법률가들- 김두식 지음 /창비 /3만 원

  • 국제신문
  • 김희국 기자 kukie@kookje.co.kr
  •  |  입력 : 2018-11-30 19:24:11
  •  |  본지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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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5일. 일본 천황의 항복 방송이 나오던 시간 경성에서는 조선변호사시험의 필기시험이 진행 중이었다. 나흘 동안 이어지는 시험의 이틀째였다. 오전 상법 시험을 마친 수험생들은 오후에 예정된 경제학 시험을 치르지 못했다. 시험지를 나눠주고 시험을 감독해야 할 일본인들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억울한 응시자들은 이법회라는 조직을 만들어 대응했다. 이들은 응시자 전원에게 합격 증서를 교부하라고 요구했고 시험위원회는 106명에게 합격증을 주었다. 이법회는 초창기 우리나라 법조계의 가장 중요한 인력풀이 됐고 전두환 정권 시절에는 대법원장까지 배출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법회 구성원들이 경력을 감춰 존재는 있지만 실체는 파악되지 않는 조직으로 남아 있다.

신간 ‘법률가들’은 대한민국 법조계가 어떻게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됐는지 뿌리를 집요하게 탐구한다. 이 책은 무려 700쪽이 달하는 방대한 분량을 담고 있다. 저자는 ‘헌법의 풍경’ ‘불멸의 신성가족’ 등으로 적지 않은 독자를 보유한 김두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다.

김 교수는 초창기 법조계를 구성한 인물들을 출신 배경으로 나눠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제1 법률가군은 일본 고등시험 사법과에 합격하고 일제시대 판검사를 지낸 이들 ▷제2 법률가군은 조선변호사시험 출신들 ▷제3 법률가군은 일제시대 서기 겸 통역생으로 일본인 판검사들을 보조했던 사람들 ▷제4 법률가군은 해방 후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다. 이 중 제3 법률가군은 해방 직후 법률가가 부족해 이런 일이 발생했다. 김 교수는 제3 법률가군의 대표적인 인물로 ‘사상 검사’로 악명을 떨쳤던 오제도와 이홍규를 꼽았다. 이홍규는 대법관과 국무총리, 대통령 후보를 지낸 이회창의 아버지다.

네 가지 유형을 보면 해방 후 미군정과법조계의 고민은 친일 경력자 처단이나 배제가 아니라 모자라는 법률가를 메우는 것이었다. 애초부터 친일 청산은 물 건너간 셈이다.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극심했던 좌우 대립이 법조계에서도 발생했다. 특히 한국전쟁에서 적지 않은 법률가들이 납북되거나 학살됐다. 이런 과정을 거쳐 대한민국 법조계는 좌익과 중도라는 한쪽 날개를 상실한 ‘기울어진 운동장’이 돼 버렸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이 책의 부제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탄생’이다. 행정·입법부는 ‘선출된 권력’이지만 사법부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어서 언제나 정당성이 문제가 된다. 그나마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 바늘구멍 같은 시험이었는데 법조계 출발점에서 불거진 이법회의 존재는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뿌리째 흔들었다. 최근에는 ‘사법 농단’ 논란까지 더해져 국가 정의의 마지막 보루 사법부에 대한 국민들의 믿음이 약화되고 있다.
‘우리에겐 존경할 만한 판검사와 변호사가 있었나?’. 이젠 이 물음에 법률가들이 응답해야 한다.

김희국 기자 kuki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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