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립출판 중심 개성넘치는 곳서
- 그가 기획한 ‘재미난 일’ 펼쳐져

호밀밭 출판사 장현정 대표를 처음 본 건 엑스세대들이 활개를 치고 다니던 1990년대 중반. 어느 공연장이었다. 나는 객석에서 관중들과 함께 헤드뱅잉 하던 휴가 나온 국군장병이었고, 장현정 대표는 밴드 앤의 보컬로 무대 위를 장악하던 록스타였으니 첫 만남을 기억하진 못할 것이다. 다시 만났을 땐 여전히 무대 위를 휘젓던 에너지로 치열하게 직업들을 수집하는 것처럼 보였다. 여러 권의 책을 집필한 작가였고, 지역 잡지의 편집장이었고, 문화기획자, 사회학자, 방송인, 교육자, 영화감독, 영화배우 그리고 호밀밭 출판사라는 지역 출판사의 대표를 맡고 있었다.

	복합 문화 공간 ‘생각하는 바다’에서 만난 호밀밭 출판사 장현정 대표.

지난 12일로 호밀밭 출판사는 10주년을 맞이했다. 경험도 없이 맨땅에 헤딩하듯 1인 출판사로 시작해 100종에 가까운 책들을 탄생시켰다. 10주년을 맞아, 광안리 민락동 방파제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방파제 횟집 지하로 사무실을 이전하며 북 카페, 독립서점, 전시장을 겸한 복합 문화 공간 ‘생각하는 바다’를 열었다. 스토리머지, 부산청년들 등 7개의 독립문화집단과 함께 운영하는 공간이다. 생각하는 바다에서 만난 장현정 대표에게 근황을 묻자, 가장 애착하는 읽고, 쓰기를 못할 정도로 무척 바빴다고 한다. 매주 방송되는 팟캐스트 ‘사이섬’ 녹음에 사무실 이전, 지난 11~17일 진행된 ‘라이프러리 페어’(liferary는 삶(life)과 도서관(library)을 조합한 단어)를 진행하느라 정신이 없었단다.

내년 1월부터는 KNN 라디오 방송과 KBS TV 시사프로그램에 참여한다고 한다. 별일 없이 잘 지냈다는 얘기처럼 들렸다. 내 기억으론 늘 무슨 일을 벌이거나 진행하느라 바빴다.

	‘생각하는 바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박스형 책장. 호밀밭 출판사 제공

생각하는 바다 한 편엔 대형서점에서도 쉽게 찾을 수 없는 다양한 지역독립출판 서적들과 책 관련 굿즈들이 전시 판매되고 있다. 추천작 코너는 마치 펄떡이는 활어들이 가득 찬 수족관 같다. 청어, 고등어, 광어, 민어, 숭어 등등 각종 생선 이름으로 책들이 분류되어있다. 청어-미래의 주인공들을 위한 책, 숭어-옛사람들의 지혜가 담긴 책. 이런 식이다.

내가 좋아할 만한 책들이라며 홍어 코너를 추천한다. ‘홍어- 빨간 책’. 사람을 어찌 보고, 근데 꽤 쓸 만한 제목들이 눈에 띈다. 조용할 때 다시 와서 찬찬히 살펴봐야겠다.

다른 쪽 벽면을 가득 채운 46개의 박스형 책장에는 책장 공유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10만 원에 책장 하나를 분양받아 추천하고픈 책들을 공유할 수 있다. 책을 기증하면서 돈까지 같이 기증할 수 있다니, 1+1과 같은 절호의 기회가 아닌가. 책장을 공유하면 책장 주인과 함께 북 토크가 진행되며 그때 나눈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매년 책을 만들어 낼 예정이라고 한다. 또 하나의 책을 탄생시키기 위한 오프라인 소셜펀딩이다.

그 외에도 저자와의 만남, 낭독회, 독서토론회, 어쿠스틱 공연, 책 또는 문학 관련 영화 상영회 등 다양한 방식으로 공간을 활용하기 위해 매주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내년에도 ‘아래로부터의 출판’을 꾸준히 진행할 계획이다. 책을 좋아하는 일반 독자들이 저자가 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젝트다. 숨은 저자들을 발견해내고, 초보 저자들이 호밀밭 출판사와 함께 무럭무럭 성장해나가길 기원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프로젝트다.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수 없으니 책이라도 한 권 남겨야겠다는 독자가 있다면, 생각하는 바다로 가보길 바란다. 또 다른 계획을 묻자, 올 한 해 너무 일이 많아 내년엔 좀 일 안 하고 놀 계획이라고 작년, 재작년에도 들었던 다짐을 했다. 습관처럼 사람들과 만나 작당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겠다고 다짐하더니 불쑥 만들어버린 걸 보면 아마 내년쯤엔 정말 놀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보나 마나 또 재미난 일을 벌이려 추진력을 가지기 위한 휴식이겠지만.

작가·다큐멘터리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