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의 선’은 2004년 퀴어 소설로는 최초로 맨부커상을 받아 화제가 됐다. 우리나라보다 성 소수자를 보는 인식이 훨씬 개방적인 영미권에서도 남성 동성애자의 성애를 정면으로 다룬 소설이 맨부커상을 받는 것은 사건이었다. 신문은 일제히 대서특필했고, 심사위원장이던 전 문화부 장관 크리스 스미스의 커밍아웃과 관련한 의혹이 나와 해명하는 일도 벌어졌다.

‘게이 소설’로 관심을 모았지만, ‘아름다움의 선’은 극도의 아름다운 문장으로 평범한 남자의 인생을 뒤흔든 세 번의 여름을 아득하고 짜릿하게 풀어낸다.

커밍아웃한 작가 앨런 홀링허스트가 “대부분 소설이 당연한 듯 이성애자의 관점에서 쓰이는 것처럼, 이런저런 변명을 덧붙이지 않고 게이의 관점에서 게이의 삶을 쓰기 위해 노력했다”며 자신의 작품이 게이 소설로 한정되는 것을 경계한다 밝혔지만, 작품은 논란과는 무관한 어딘가에 위치하며 자신만의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낸다. 당대를 상징하는 상류층 가족 사이에 유지되는 내밀한 긴장과 그를 통해 보이는 위선과 모순, 주인공을 둘러싼 동성애자들의 현실적인 삶, 1980년대 부상한 에이즈 위기 등이 세밀하게 묘사된다.

영미권 작가 이언 매큐언, 줄리언 반스, 알리 스미스 등과 함께 평단과 대중의 지지를 동시에 받으며 현재 영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꼽히는 앨런 홀링허스트는 이번 책으로 국내에 처음 소개됐다. 주인공 닉은 중산층 출신의 성 소수자라는 이중의 계급적 한계를 거듭 자각하면서도, 상류층 생활양식에 존재하는 아름다움과 세련됨을 사랑하고 그 모순을 의식하면서도 애써 눈감으며 편안함과 아름다움에 도취되고 순응하다 밑바닥을 마주하고서야 비로소 눈을 뜬다.

한 청년의 성장 소설이자 대처 시대를 풍자하는 사회 소설의 면모를 동시에 갖고 있으며 퀴어 문학의 위상을 크게 바꿔놓은 문제작이다.

안세희 기자 ahnsh@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