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춤추는 사람에 대한 애정이
- 그의 앵글에 가득 담겨있다
- 한 번 찍은 춤꾼은 다 기억한다
- ‘부산의 살아있는 춤 아카이브’
- 그의 사진에 예를 다해야 한다

한 공모사업에 지원했을 때 일이다. 다행히 선정은 되었는데 조건이 예산 항목 중에 촬영비를 빼라는 것이었다. 이유를 물었더니, 사진과 영상촬영을 ‘자산취득’으로 본다는 답이 돌아왔다. 예술 기록이 개인의 이득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공동체의 문화적 자산을 확보한다는 공공적 측면이 더욱 크다는 말은 씨도 먹히지 않았다. 촬영비는 다른 식으로 해결했지만, 그 관료적 해석이 기막힐 뿐이었다.

	춤 사진가 박병민이 야외에서 공연 중인 춤꾼들의 사진을 찍고 있다.

일회적인 춤을 기록하기 위해 예전부터 그림이나 문자와 기호를 이용했다. 우리나라에는 500여 년 전 자료인 ‘시용무보’와 고종 때 무보인 ‘정재무도홀기’가 남아 있다. 15세기께 무용 기록을 시작한 서양에는 80여 가지 기록법이 남아있다고 한다. 카메라 발명 이후 문자와 그림에 의지했던 기록이 빠르게 이미지로 대체되었고, 현대의 모든 공연은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한다.

	박병민 사진가가 촬영한 강경희·이연정 안무 작품 ‘덧, 넘다’의 이미지.

춤 공연을 찍을 때 사진과 영상 촬영자는 조명과 음악 그리고 춤꾼의 호흡을 포함한 작품의 흐름을 안무가만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영상 편집을 할 때 박자와 춤꾼의 호흡을 잘라 먹는 경우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사진은 흐름이 읽히지 않아 영상만큼 음악과 호흡이 중요하지 않지만, 알고 있으면 어느 지점에서 좋은 이미지가 나올지를 예상할 수 있다.

부산에는 공연을 촬영하는 사진가 몇 명이 활동하고 있는데, 그중에 딱 한 사람 오로지 춤 공연만 촬영하는 이가 있다. 박병민 사진가이다. 그는 대학 재학생에서 원로의 무대까지 부산의 거의 모든 춤 공연을 카메라에 담는다. 박병민의 춤 사진은 몇 가지 면에서 다른 작가의 그것과 차이가 있다. 우열의 의미는 아니다. 먼저, 박병민의 사진은 춤꾼 개인에 집중한다. 그는 춤꾼이 그 작품에서 어느 순간 가장 돋보일지를 찾아낸다. 그래서 박병민의 사진에 담긴 춤꾼 한 명 한 명은 모두 주연이다. 춤꾼이 박병민의 춤 사진을 유독 좋아하는 이유이다.

박병민 춤 사진의 또 하나 특징은 이미지만으로도 작품을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나는 그의 사진 몇 장으로 미처 보지 못한 작품을 느낀다. 좀 더 많은 사진을 보다 보면 새로운 춤 이야기가 그려지기까지 한다. 마지막으로 사람에 대한 애정을 들 수 있다. 그가 춤꾼을 찍은 사진은 마치 연인을 찍은 것 같다. 어떤 상황에서도 춤꾼을 향한 그의 앵글에는 춤추는 사람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겨있다. 자신이 한번 찍은 춤꾼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이름을 잊지 않고, SNS를 통해 수시로 그들을 기억에서 소환하는 작업을 한다. 얼핏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애정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춤꾼은 작품 속에서 개인의 존재가 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현존하는 몸으로 표현하는데도 춤꾼의 몸은 작품에서 그 존재를 감춘다. 규모가 큰 작품일 경우 그 정도가 더 하다. 힘든 공연을 끝내고 나면 말 못 할 공허감이 밀려온다. 이런 허탈감의 바탕에는 실존과 작품에서 사라진 개인적 존재 간의 괴리가 깔려있다. 공연 뒤풀이는 늘 떠들썩하지만, 기진맥진한 뒤풀이도 결코 그 공허함을 채우지 못한다. 이런 경우 박병민의 사진은 춤꾼에게 일종의 치유 작용을 한다. 무대에서 잃어버린 개인의 존재감을 사진으로 일깨워 주기 때문이다. 기록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의 사진이 기록을 넘어선 것이다.

지금도 각지에서 수많은 사진가가 춤 공연을 찍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춤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춤과 춤꾼을 사랑하고 자신의 삶 전부를 춤으로 기록하고, 기록을 넘어서는데 바치는 사진가는 부산의 박병민이 유일하다. 그래서 그는 부산 춤의 소중한 자산이며 살아있는 부산 춤 아카이브이다. 너무나 가까워서 당연하게 여긴 것인지 박병민의 촬영과 사진의 가치를 모르거나 무례를 범하는 경우를 볼 때면 가슴이 아프다. 사람을 빼면 춤은 아무것도 아니다.

춤 비평가·민주주의사회연구소 연구원

※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