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관령에서 태어난 산골소년
- 도시 아이들과 한발짝 떨어져
- 혼자 할 수 있는 일에 몰두하다

- 그렇게 업이 되어버린 글쓰기
- 처음 본 강릉의 푸르른 바다
- 오지마을을 지키는 사람들
- 발품을 팔아 구석구석 누빈
- 고향 곳곳 풍경의 이야기
- 따뜻한 시선으로 책에 담다

만추. 버스가 부산을 벗어나자 울긋불긋 단풍을 입은 산들이 이어졌다. 강원도가 가까워지자 산은 하늘과 더 가까워졌고, 단풍도 더 짙어졌다. 빈틈없이 가득 채워진 가을이다. 강원도 이야기로 꽉 들어찬 김도연 작가의 산문집 ‘강릉 바다’를 읽고 나서인지 골짜기마다 어떤 사연을 품은 듯 보였다. “나는 오대산과 대관령 사이에 있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조금 다르게 표현하자면 스님들이 살고 있는 절과 도시로 갈 수 있는 고개 사이의 마을에서 태어났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연히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산간벽지였다.” 책 속 한 대목이다. 김도연 작가를 강원도 원주시 흥업면 매지리 토지문화관에서 만났다. 대하소설 ‘토지’를 남긴 박경리 선생의 문학정신이 깃든 이 곳에는 늘 작가들이 머물며 글을 쓴다.

강원도 원주시 흥업면 매지리 토지문화관에서 만난 김도연 소설가.

■바깥세상이 궁금했던 산골소년

원주에 사는 김도연 작가는 토지문화관의 작가 레지던시(참여 문인은 두 달간 머물며 글을 쓸 수 있다)에 여러 번 참여했다. 토지문화관은 작가들 숙소와 식당 등으로 이뤄졌다. 숙소에서 식당까지 완만한 오르막은 떨어진 벚나무 단풍 덕분에 꽃길 같았다. 밤마다 작가들을 잠 못 들게 하는 소쩍새 울음이 잦아들 무렵이면 활짝 피어 작가들을 아예 ‘절망’시켜버린다는 벚꽃으로, 그리고 가을이면 떨어진 단풍잎들로 작가들의 눈도장을 받는 길이다. 식당 앞에는 잎사귀가 큰 나무 한 그루가 있다. 단풍이 물든 나뭇잎이 컸다. “후박나무에요. 좋아하는 나무죠.” 김도연이 폰카메라로 후박나무 단풍을 찍었다.

김도연은 1966년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에서 태어났다. 일 년 중 다섯 달이 겨울이고, 전날 내린 눈을 쓸고 가버리는 매서운 바람이 불고, 문 열기 힘들 만큼 눈이 내리는 땅에서 자랐다. 아버지가 만들어준 나무 스키를 타고 겨우내 비탈밭을 누비고, 집에서 누에를 칠 때면 누에에게 방을 내주고, 오대산 관광객들이 돈 내고 산채백반을 사 먹는 걸 이해 못 할 만큼 나물을 지겹도록 먹었던 유년을 보냈다. 도시에 다녀온 친구들에게서 “기차 타봤다” “바다를 봤다”는 자랑을 들으며 대관령 바깥을 궁금해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버스를 타고 멀미에 시달리며 고개를 내려왔다. 강릉 바다는 태어나 처음 본 바다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가장 많이 기웃거린 바다이다.

춘천에서 고교를 다녔는데, 2학년 때 교내 백일장에서 차상을 받았다. “문학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는데, 당시 늘 혼자였던 환경이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산골 촌놈이라 도시 아이들과 어울리기 쉽지 않았어요. 괜스레 혼자 소외감 느끼고, 외롭고, 집에 가고 싶고, 큰길 두고 골목 찾아 걷고…. 자꾸 제 마음 안으로 들어갔지요. 그러다 백일장에서 ‘덜컥’ 상을 받았어요. 글 쓰는 일은 혼자 하는 작업이니까, 자연히 이끌리게 된 거죠.”

대학 시절 강원일보, 졸업 후 경인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대학 졸업 뒤 10여 년간 소설을 썼다. “소설가가 되는 거구나 했는데, 원고 청탁이 별로 없었어요. 계속 글을 쓰는 일을 했는데, 소설 쓰는 걸 그만둘 수는 없었어요. 소설가가 되겠다고 말해온 세월이 길어, 제가 했던 말이 무서워서요.” 2000년 중앙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콩 이야기’ ‘이별전후사의 재인식’ ‘십오야월’ ‘0시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장편소설 ‘누에의 난’ ‘마지막 정육점’ ‘산토끼 사냥’ ‘아흔아홉’ ‘삼십 년 뒤에 쓰는 반성문’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 산문집 ‘눈 이야기’ ‘영’ ‘강릉 바다’를 냈다.

■강원도 곳곳을 누빈 발걸음

강릉바다 - 김도연·2018·교유서가

‘강릉 바다’에는 김도연이 강원도 곳곳을 누비고 다닌 발걸음이 보인다. 강릉시청에서 내는 ‘솔향강릉’에 연재한 글, 신문에 쓴 글, 네이버에 연재한 평창올림픽 이야기 등 강원도에 관한 이야기로 채운 책이다. 강원도 곳곳 풍경과 명승, 전설, 오지마을 지키는 사람들 이야기를 읽다 보면 당장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는 아직 가보지 못한 강원도를 찾아내느라 고심도 했고, 취재과정에서 어려움도 겪었다고 했다. 오지마을을 힘들게 찾아갔지만, 어르신들이 모인 경로당에 성큼 들어설 넉살이 좀 모자랐다. 경로당 밖에 우두커니 앉아 안에서 들려오는 대화를 들었다는 말에, 작가에겐 미안했지만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오지마을을 다니는 동안 조금씩 나아지긴 했어요. 그래도 어르신들께 폐를 끼칠까 늘 조심스러웠지요. 연세 많은 어르신들이 밭에서 일하고 계신데 취재랍시고 말을 건네는 것도 그렇고요. 그분들에게서 제 부모님 모습을 보았습니다.”

강원도 마을 끝에는 고향집이 있었다. 그는 부모님과 어르신들을 보면서 부끄러웠던 마음을 이렇게 썼다. “고향으로 달려와 당신들이 살고 있는 집을 바라봅니다. 울타리 주변에서 자라는 과일나무들과 채소를 살핍니다. 밭으로 나가 당신들이 키우는 농작물들을 허리 숙여 쓰다듬어봅니다. 어두워지는 밭에서 허리를 구부린 채 걸어나오는 당신들의 흙 묻은 손과 얼굴에서 눈을 돌립니다. 저의 조급한 소설쓰기는 당신들의 백년 농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에 다다르면 온몸이 불덩이처럼 화끈거립니다.” 고향땅을 구석구석 다니며 느꼈을 작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책에는 고향을 구석구석 찾아다닌 발길과 고향 사람을 보는 작가의 따듯한 시선이 있다. 그 시선 끝에 조금씩 변해가는 강원도의 현재 모습에서 떠올리는 옛 모습이 있다. 강원도 사람이 쓴 강원도이다. 강원도를 한 바퀴 돌아본 기분이다.

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