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 ‘장미의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 움베르토 에코(1932~2016)의 일곱 번째이자 유작 장편 소설 ‘제0호’가 출간됐다. 에코가 암 투병 중이던 2015년 1월 펴낸 소설로 창간 준비를 하며 화제가 되는 스캔들을 찾는 신문사를 그렸다.

전작 ‘장미의 이름’‘푸코의 진자’ 등의 뼈대가 된 ‘음모론’에 오랜 시간 흥미를 느껴온 에코는 이 소설에서도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음모론적인 관념을 열심히 탐구하는 일군의 기자를 다룬다. 이탈리아의 전 총리이자 언론 재벌 베를루스코니를 연상케 하는 언론사 사주와 파시스트 무솔리니가 실제로는 죽지 않고 도주해 이탈리아를 배후에서 조종한다는 음모론이 주요 소재다.

배경은 1992년, 실제 이탈리아에서 전무후무한 정치 추문이 터지며 대대적인 부패 청산 물결이 일던 시기다. 이름 없는 작가로 전전하던 주인공 콜론나는 창간을 앞둔 신문사 ‘도마니(내일)’의 주필 시메이에게 창간 예비호 제작에 참여해 편집부에서 벌어지는 그간의 역사를 기록할 것을 주문받는다.

당대 세력가인 신문사 주주 콤멘다토르와 주필은 사실 신문을 창간할 의사가 없다. 오직 사회 거물들을 궁지로 몰 만한 ‘가짜 특종’을 창간 예비판에 실어 당사자를 협박하려는 음모를 품고 있다. 주필은 신문이 끝내 창간되지 않고 일자리를 잃게 되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폭로를 담은 책을 한 권 마련해두려 한다. 제안을 받아들인 콜론나는 기사에 쓰일 표현을 검토하는 일종의 데스크로 신분을 위장하고 창간 예비판인 ‘제0호’를 위해 일한다. 그 과정에서 무솔리니의 죽음을 둘러싼 황색 언론의 행태가 생생하게 그려진다.

책은 현대사회의 정보 전달 기능 최전선에 있는 저널리즘을 해부하고, 현대인에게 ‘올바른 저널리즘’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공정을 잃은 보도와 음모론적 역설의 난장, 뚜렷한 방향 없는 포르노적 정보 공세 등 언론이 어떻게 특종을 ‘창조’하는지 흥미진진하게 그렸다. 그의 전작들과 비교해 훨씬 쉬운 내용과 문체로 쓰여 술술 읽힌다.

정홍주 기자 hjeye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