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계 주52시간 도입 앞서
- 조감독·제작실장 등 ‘익명토크’
- 과중한 업무량 공감대 형성
- 영화프로듀서조합 등 역할 강조

‘주 52시간’이라는 별칭으로 통용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영화계에도 과제를 던진다. 그간 근로기준법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특례 업종에 포함돼 왔으나, 지난 2월 국회가 특례업종을 대폭 줄이는 과정에서 영화계도 제외됐기 때문이다. 근로시간을 명확히 구분 짓기 힘든 업무 특성에 초과 근무가 당연시됐던 영화 현장은 이르면 1년여 후(50~300인 사업장 2020년 1월 시행)부터 당장 완전히 달라진 근무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지난 7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 센텀시티 부산영상산업센터 컨퍼런스홀에서 ‘복면토크-2018 한국영화제작 현장은 지금!’이 열리고 있다. 서순용 선임 기자 seosy@kookje.co.kr

파격적으로 달라질 환경을 앞두고 영화계는 비상이 걸렸다. 제작 환경을 조성하고 이끌 영화 프로듀서(PD)들의 고민도 깊다.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PGK)은 현장 목소리를 듣고자 ‘익명 수다’를 마련했다. 지난 7일 오전 11시 부산 해운대구 센텀시티 부산영상산업센터 컨퍼런스홀에서 열린 ‘복면토크-2018 한국영화제작 현장은 지금!’에서는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최정화 PGK 대표의 진행으로 현장에서 9~10년 일한 제작실장, 조감독, 미술팀 스태프가 복면을 쓰고 자유롭게 발언했다.

■근무환경 대폭 개선해야

이들은 노동환경 개선 필요성에 공감하지만, 어디서부터 손을 댈지 막막한 듯했다. 미술팀 스태프 참가자는 “2년 전부터 추가 노동시간을 계산해 보니 월 100시간은 되더라. 외부 촬영이 많으면 140시간까지 늘어난다. 미술팀은 준비 시간도 길고 이른 새벽이나 늦은 밤까지 있어야 하는 상황이 많다. 늘 작업 여건이 개선돼야 한다 생각하지만 쉽지 않다”며 “인력 보충 등으로 보완하려 하지만, 작업 특성상 새 인력에게 온전히 맡기기 어렵고 매번 사람을 쓸 수도 없으니 현실적으로 힘들다”고 털어놨다.

근무환경 차이로 인한 스태프 간 갈등도 지적됐다. 조감독 참가자는 “촬영팀은 다른 부서가 자괴감 들 정도로 돈을 많이 받는다. 미술팀은 정말 고생하는데 박봉이다. 이런 차이가 사기를 꺾는다. 합당한 환경과 대우가 좋은 영화를 만든다. 부서 책임자들이 앞장서서 변화를 만들라”고 했다. 미술팀은 “우리 일은 눈에 보이는 작업이라 다른 팀이 너무도 쉽게 평가하는 말을 던진다. 부서 간 업무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기존 도제식 시스템에서 연차만 따지고 능력에 대한 판단이 사라졌다”며 “능력을 증명할 시스템도 갖춰지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PGK 등 역할 중요

선배들의 의식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강력했다. 조감독 참가자는 “PGK 등 분위기를 만들고 책임지는 선배 그룹이 앞장서 줬으면 좋겠는데, 아래서부터 변화를 요구하니 진행이 더디다. 나는 오후 6시에 퇴근하겠다고 말했다가 업무에서 잘린 적도 있다. 일이 안될 게 뻔한데 무작정 근무 시간을 지키라 말하는 선배도 있다. 지금처럼 스태프에게 전권을 주니 뒷말만 무성하고 내분만 일어난다”며 각성을 촉구했다.

현장에서 일한다는 한 방청객은 “영화진흥위원회가 눈에 보이는 진지한 노력을 하는지 묻고 싶다”며 “영진위의 강력한 의지와 실천을 요구한다”고 말해 호응을 얻었다. 제작실장 참가자는 “‘헤드’가 얼마나 계획을 잘 세우냐에 따라 효율도 달라진다는 것을 최근 현장에서 느꼈다. 책임자들의 역할이 크다”고 당부했다.

안세희 기자 ahnsh@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