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활과 노래를 꿋꿋이 지킨 그들
- 연륜과 감성, 패기넘친 공연까지
- 달콤하고 황홀한 시간을 즐겼다
- 올겨울 나올 앨범 벌써 기대돼

- 이곳이 사내들만 득실댄다고?
- 이런 무대를 가진 곳이 부산이다

2013년 여름, 부산 여성 뮤지션들이 의기투합해 자체 기획한 공연 ‘반했나?’는 부산을 시작으로 대구, 진주, 서울로 공연을 이어가며 부산 여성 뮤지션들의 ‘걸크러쉬’를 방방곳곳에 각인시켰다.

	지난 8일 경성대 앞 오방가르드에서 부산의 여성 뮤지션들이 오랜만에 다시 모여 만든 ‘2018 반했나?’ 공연이 흥겹게 펼쳐지고 있다.

부산의 릴리스 페어(Lilith Fair·대표적인 여성 중심 음악 페스티벌)를 꿈꾸며 의욕적으로 활동을 이어가던 ‘반했나?’의 막내였던, 당시 ‘달콤씁쓸한’의 멤버였고 현재 B9의 멤버인 박주영은 문득, 앞으로 더 나이가 들고, 결혼, 출산, 육아 등등 상황이 변하더라도 지금처럼 계속 음악을 이어갈 수 있을까 새삼 고민이 들었다.

생활과 음악을 동시에 꿋꿋하게 지켜가며 함께 공연했던 언니들이 생각났고 결국 무대는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언니들 옆구리를 찔러 수차례 회의를 거쳐 ‘반했나?’ 공연을 부활시켰다.

지난 8일 토요일 저녁, 5년 만에 돌아온 ‘2018 반했나?’ 공연이 열린 경성대 앞 라이브 펍 오방가르드는 미취학 아동부터 백발 성성한 어르신까지 다양한 관객들로 가득 차 있었다. 첫 무대를 연, 2명의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계 아이유’ 싱어송라이터 윤진경은 첫 무대 마지막 곡으로 사랑하는 아이들과 남편에게 바치는 노래라며 청아하고 단아한 목소리로 ‘떠날래’를 불러 깊은 공감과 반성의 시간을 관객들에게 선사했다.

사이키델릭 밴드 헤디마마와 뭄바트랩을 거쳐 90년대부터 지금껏 짙고 선명한 색채의 음악을 고집하는, 마성의 보컬 조연희가 이끄는 연희밴드의 공연에서는 아이돌 공연에서나 볼 법한 떼창과 환호가 터졌고, 반짝이 옷을 입고 무대에 선 B9은 기타 없이 베이스, 드럼만으로도 뜨겁게 무대를 달구어 메이드 인 부산 걸크러쉬의 모범을 보였다. 새로운 피로 수혈된 2인조 듀오 초콜릿벤치는 이름만큼 달달한 어쿠스틱 팝으로 관객들의 당 수치를 올렸고, 역시 새로 합류한 보수동쿨러는 아직 정규 앨범도 나오지 않은 신예지만 관객들의 떼창이 터질 정도로 높은 인기를 누려 앞으로 행보가 더 기대되는 밴드였다.

다섯 팀의 공연이 끝나고도 참여 뮤지션이 총출동하는 합동무대까지 이어지는 긴 공연이었지만, 잔잔한 포크부터 강렬한 로큰롤까지, 깊은 연륜과 짙은 감성, 젊은 패기와 신선한 에너지가 뒤섞인 무대였고, 막간의 무대 세팅 시간마저도 윤진경의 가족이자, 말 잘하기로 소문난 록커 출신 작가이자 호밀밭 출판사 대표인 장현정 씨가 관객 이벤트를 진행하며 ‘반했나’ 뮤지션들이 즐겨 마신다는 달짝지근하고 도수 높은 전통주를 관객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드물게 관객 반응이 뜨거웠던 것도 어쩌면 관객들을 음악으로 또 술로, 이중으로 취하게 하려는 치밀한 계산이 아니었을까 의심이 들었다.

어쨌거나 잠시 지루할 틈도 주지 않은 섬세함이 돋보인 공연이었다. 심지어 벽면 가득 붙은 참여 뮤지션들의 사진도 팬들을 위한 선물로 제공했다. 나 역시 잽싸게 몇 장 챙겼다. 이런 가격에 이런 공연이라니 가성비 최고의 공연 아닌가. 드라마나 영화에서 내 고향 부산은 어쩐지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의 시커먼 사내들로 득실득실한 곳처럼 비춰지는 경향이 있다.(이게 다 조폭영화, 드라마 때문이다.) 그런 단단한 편견을 깨부수기 위해서라도 ‘반했나?’ 공연은 계속돼야 한다. 올겨울 부산음악창작소의 지원을 받아 ‘반했나?’ 컴필레이션 앨범과 쇼케이스가 진행될 예정이라고 한다. 가능하면 다소 저항이 있더라도 편견 가득한 외지인들을 꼬드겨 손을 잡고 가도록 하자. 그리고 말해주자. 마! 이기 부산이다.

작가·다큐멘터리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