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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의 그곳에서 만난 책 <42> 김륭 시인의 시집 ‘원숭이의 원숭이’

영혼이 부서진 사람들의 이야기… 나는 누구인가 되묻게 된다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09-03 18:50:45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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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시인의 사인을 받고난 뒤
- 직장도 가게도 다 팽개치고
- 지리산 자락에 빈집을 얻어
- 3년을 꼬박 시에 몰두했다

- 시와 동시가 함께 당선된 해
- 칙칙하다, 어렵다는 평가에도
- 내 안의 말을 왜곡할 수 없어
- 흔들리는 사람의 이야기를 쓴다

경남 함양과 마천 사이, 지리산으로 올라가는 산자락 한 마을 빈집에서 글공부하며 시를 쓴 사람이 있었다. 신춘문예 계절이 되면 응모하고, 산동네 마을에서 내려와 함양시외버스터미널까지 신문을 구하러 갔고, 자신의 이름을 확인했다. 그리고 신문에 자신의 시가 실린 날, 산을 내려왔다. 10여 년 전 일이지만, 어쨌거나 요즘 세상에도 이런 문학순정파가 있었나 싶다.

김륭 시인을 경남 김해시 장유3동에서 만났다. 그는 평소 집에서 가까운 율하천 산책로를 걸으며 생각을 정리하고, 인근 카페거리의 단골 카페에 들러 다리쉼을 한다. 그의 단골 카페에 들어섰다. 시인의 시집을 비롯해 문학서적과 인문학책 등이 카페 안에 비치돼 있다. 카페 한쪽에서는 책을 앞에 두고 토론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시인은 이곳이 자신의 공부방만큼 익숙하고 편한 공간이라고 말했다.
   
김륭 시인이 경남 김해시 장유동을 산책하는 길에 공원 의자에 앉아 그의 시와 동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지리산에서 보낸 시간

김륭 시인은 경남 진주에서 태어났다. 경찰인 아버지를 따라 경남 곳곳을 다니며 자랐다. “초등학교 때는 친구들과 익숙해질 만하면 헤어져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지요. 사천에서 중학교를 다녔고, 진주 대아고를 졸업했어요. 대학은 집에서 좀 멀리 가보자 싶어 조선대 중어중문학과로 진학했습니다. 군대 시절은 강원도 홍천에서 보냈어요. 어쩌다 보니 전국 여기저기를 다니며 살아온 셈이죠.”

어렸을 때는 밖에서 노는 게 더 좋았다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축구선수였어요. 운동이라면 뭐든지 다 좋아했습니다. 미대나 체대를 가고 싶었는데 못 갔어요. 미술학원 같은 곳을 따로 다니면서 실기를 배워야 하는 줄 몰랐죠. 그 당시에는 프로스포츠가 없었어요. 운동이 직업이 되기 힘들다고 생각한 시절이라 장남인 전 축구를 계속하지 못했고요.” 그를 다시 보니, 키도 크고 체격도 좋아 보인다. 운동선수가 아니라 시인이 된 그를 보며 의아해하는 친구가 있을 법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 시절 휴학 시기인 1988년 ‘불교문학’지에 시로 등단했다. “정다운 스님을 주축으로 한 불교계에서 만든 잡지였는데, 걸레 스님으로 널리 알려진 중광 스님도 그때 뵈었죠. 안타깝게도 이 잡지는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제 등단 이력에는 쓰지 않고 있는데, 첫 등단인 셈이죠.” 대학 졸업 뒤 신문기자로 9년간 일했다. “신문사를 그만두고 작은 카페를 했어요. 카페 여기저기에 좋아하는 시를 패널로 만들어 걸어두었죠, 어느 날 한 시인이 카페에 왔다가 시 패널들을 보더니, 자기 시집에 사인을 해서 주더군요. 그때 특별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나도 다시 시를 써야겠다는 마음으로 지리산에 갔습니다. 그때 생각이 납니다. ‘지금은 제대로 못 써서 미안하다, 제대로 쓰고 싶다’ 이런 생각으로 마음이 가득 차 있었지요.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잘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지리산 자락 마을에서 폐가가 돼가던 빈집을 빌려 살던 3년은 글공부하며 문학을 벼리던 시절이었지요.”
김륭은 2007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시,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동시가 당선돼 등단했다. 시집 ‘살구나무에 살구비누 열리고’ ‘원숭이의 원숭이’, 동시집 ‘프라이팬을 타고 가는 도둑고양이’ ‘삐뽀삐뽀 눈물이 달려온다’ ‘엄마의 법칙’ ‘별에 다녀오겠습니다’ ‘첫사랑은 선생님도 일 학년’, 이야기 동시집 ‘달에서 온 아이 엄동수’를 냈다. 그림책 ‘펭귄오케스트라’는 곧 나올 예정이다. 제2회 ‘문학동네 동시문학상 대상’, 제9회 ‘지리산문학상’ 등을 받았다.

■내 안에 들어있는 말이 시(詩)

   
원숭이의 원숭이 - 김륭·2018·문학수첩
“신춘문예에서 시와 동시가 함께 당선됐는데 동시집 ‘프라이팬을 타고 가는 도둑고양이’가 먼저 나왔어요. 시와 동시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대상이 어린이죠. 그런 마음으로 썼는데, 기존 동시와는 다르다고 받아들여졌는지 좋다는 반응과 비판적인 반응으로 나뉘더군요.” 그는 시를 쓸 때 ‘시’라는 장르를 특별히 의식하지 않는다. “내 안에 들어있는 말이 중요하지요. 제 시가 칙칙하다, 어렵다고 하는 독자들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내 안의 말을 왜곡할 수는 없어요. 바꿀 수 없는 ‘감정의 문제’이니까요. 있는 그대로 시에 담아낼 뿐이지요.”

그의 시집 ‘원숭이의 원숭이’를 읽으면 가슴 밑바닥까지 내려와 고이는 단어와 느낌이 있다. 사람, 사랑, 죽음, 잠, 이상, 신(神), 비, 음악, 인형, 유체이탈…. 몇 편을 거듭 읽으면 환상적인 느낌이 걷히면서, 끊임없이 자기 존재감을 확인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것이 시인의 의도가 아니라 해도 시를 읽고 있으면 그런 생각에 닿는다. 시 ‘머플러’의 한 대목을 읽어보자. “몸이 없는 사람임을 들키지 않으려고/ 샤워를 하고 바지에 두 발을 꿰고 컬러풀한 와이셔츠에/ 검은 외투를 걸치고 외출을 한다/ 살아 있다는 걸 보여 주기 위해 세상으로/ 나간다 언젠가 당신이 했던 말로 목을 감싸고/ 목이 없는 사람임을 들키지 않으려고// 잘살아요 우리, 죽은 듯 살아요”

   
어쩌면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다. 그런데 사실은 몸이 없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부서진 사람, 마음 붙일 곳 없어 흔들리며 살아가는 사람들 모습은 아닐까. 생체리듬이 아니라 알람시계에 맞춰 일어나고, 누군가 정해둔 일정에 따라 허겁지겁 쫓아가는 시간을 보내는 현대인의 초상을 보는 듯하다. 그래서 김륭의 시를 읽는 동안은 ‘나는 누구인가’ 자꾸만 생각하게 된다. 잃어버린 사람과 시간이 이 시집 속에 있는 것 같아, 다시 펼쳐보고 싶은 것이다. 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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