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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의 그곳에서 만난 책 <41> 남덕현 작가 산문집 ‘한 치 앞도 모르면서’

요절복통 ‘충청도의 말’… 한바탕 웃고나면 마음이 치유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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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8-20 20:10:08
  •  |  본지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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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마을서 들은 노인들의 대화
- 잘난척하는 어려운 ‘말’ 아닌
- 즐겁고 유쾌한 매력적인 ‘말’

- 말을 주고받으며 입은 상처들
- ‘살아있는 소리’ 통해 위로받길

“연일 폭염이다. 산 사람들은 더위에 놀라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말세가 아니고서야 이렇게 더울 수는 없는 일이라며 탄식할 만하고, 관 속에 누운 망자들 역시 더위에 놀라 벌떡 일어나다가 관 뚜껑에 이마를 세게 부딪치고 두 번 죽을 만하다.”

남덕현 작가의 산문집 ‘한 치 앞도 모르면서’에 실린 ‘기름이 똑 떨어지면’의 첫 대목이다. 온 나라가 폭염에 시달리던 날, 이 대목을 읽다가 웃음이 터졌다. 지하철 안이었는데, 책 읽으며 혼자 웃던 필자는 잠깐 주변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됐다. 그러거나 말거나 책장은 넘어간다. 책에서 말이 계속 들려오기 때문에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활자로 인쇄된 책이나, 문자가 아닌 ‘말’과 ‘소리’를 담은 책이다. 남덕현 작가를 서울 마포구 연남동 경의선숲길에서 만났다.
   
서울 마포구 연남동 경의선숲길에서 만난 남덕현 작가. 그의 산문집에는 웃음이 절로 터져나오게 하는 ‘말맛’이 가득하다.
■자세히 듣고 싶은 말의 세계

남덕현 작가는 1966년 전남 완도에서 태어났다. 7살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대전에서 살았기에 완도의 기억은 흐릿하다. 서강대 사회학과로 진학해 대학 시절 서울에서 지냈다. 졸업 뒤 경기도에 살면서 서울에 있는 회사를 다니다가, 40대 중반 충남 보령 한 시골마을로 내려가 집을 짓고 살았다. 2013년 충청도 노인들의 인생 이야기를 담은 ‘충청도의 힘’을 내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 책은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로 선정되면서 많은 관심을 받았다. 시집 ‘유랑’, 산문집 ‘슬픔을 권함’ ‘한 치 앞도 모르면서’를 발표했다.

남덕현 작가의 책에서 느낀 충청도 말의 재미가 컸기에 현장에서 그 말을 직접 듣고 싶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는 현재 일산에 산다. “직장 때문에 보령을 떠나 최근 2년 연남동에 살았어요. 골목 안에도 카페가 들어섰군요. 올 때마다 조금씩 더 변해가는 듯합니다.” 경의선숲길에 쏟아지는 한여름 햇볕이 따가웠다. 서둘러 그늘을 찾는 다른 사람들처럼, 한 카페를 찾아 들어갔다. 통유리창 밖으로 푸르고 눈부신 여름 풍경이 훤히 보였다.

그의 책을 읽으면 옆에서 충청도 사람이 이야기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작가가 그 말에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기록하려는 목표가 있는 것 아닌가 싶지만, 그렇지는 않단다. “보령 시골마을에 살면서 노인들 대화를 들었을 때 놀랐어요. 도시에 살 때, 어디 모임 같은 곳에서 우리가 하는 말과는 달랐거든요. 말의 기능이라는 게 의사를 드러내거나, 상대방 반응을 살피고, 설득하고 그런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시골 노인들 대화에서 언어도, 대화법도 다른 세계를 보았습니다. 감각 자체가 달랐다고나 할까요. 아주 독특한 세계였고, 흥미로웠고, 자세히 듣고 싶었습니다.”

그는 일기도 쓰지 않으면서 살았다고 했다. 글 쓴 것을 떠올리자면, 직장에서 마케팅 컨설팅 보고서를 엄청나게 써냈단다. “시골에서 들은 노인들의 이야기를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사람들이 재미있어했어요. 출판사 하는 후배에게서 책을 내자는 연락이 왔어요. 충청도 말로 쓴 첫 책 ‘충청도의 힘’입니다.” 두 번째가 ‘한 치 앞도 모르면서’다. “두 권에 실린 말이 노인들의 말을 그대로 옮긴 것이니 저작권은 그분들께 있는 것 아닐까요. 어쩌면 그분들이 살아온 동네, 들판, 하늘, 땅이 저작권 주인일 테지요.”

■요절복통, 생생한 말의 향연
   
한 치 앞도 모르면서- 남덕현·2017·빨간소금
노인들의 대화를 읽어보면 맥락 없는 이야기가 갑자기 시작됐다가, 스르르 사라지는 게 느껴진다. 한 노인이 장화홍련의 홍련이와 콩쥐팥쥐의 팥쥐가 ‘쥑일 년’이라고 주장하는 말은 이렇다. “들어보니께 콩쥐팥쥐네허구 집구석사정이 벨반 안 달븐 이웃사촌이드믄서나. 콩쥐허구 장화허구 딱헌 처지루다 동무구, 팥쥐허구 홍련이허구 못돼처먹은 처지루다 동무구, 즈긔 엄니덜은 계모 처지루다 동무구.” 이야기를 듣던 다른 노인이 능청스레 받아친다. “갸들이 한동니(동네)서 이웃사촌으루다 가차이(가까이) 살았대유?” 논리정연한 주장, 합리적인 설명은 없다. 그런데 재미있다. 눈으로 글자를 읽는 것이 아니라 소리를 듣는다. 딱히 결론 내자고 꺼낸 이야기도 아니다. 그냥, 생각하는 대로 막 튀어나오는 살아있는 말이다.

남덕현 작가는 ‘한동네에서 태어나 칠팝십 년을 함께 살고, 별일 없으면 한동네에서 생을 마치는 인연’인 이들의 대화를 이렇게 봤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대화의 목적이 아님은 자명하다. 서로의 소리를 듣는 것이 목적이라면 목적이지. 그들은 언어의 의미를 전달하는 매개체가 아니라, 고유한 소리를 내는 악기에 가깝다. (중략) 그들이야말로 언어의 의미체계로부터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을 극복한 존재들인지도 모른다.”

   
도시의 언어는 구체적인 지시와 결과를 요구하지만, 사실 언어는 모든 것을 담아낼 수도 설명할 수도 없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말에 조리가 있다 없다, 말을 잘한다 못 한다로 사람 신분을 가늠하고 무시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입니다. 늘 합리성을 요구받기에 피로하고, 주고받는 말 때문에 입은 상처를 충청도 말로 치유받는 느낌이었어요.” 충청도 말뿐이겠는가. 우리나라 곳곳의 말이 그런 치유 능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가 들려주는 ‘언어’에 대한 설명은 이 책을 읽는 데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충청도의 힘’도 ‘한 치 앞도 모르면서’도 재미있게 읽으면 그만이다. 그 안에서 요절복통의 말을 들으면 된다. 웃음이 터지면 맘껏 웃으면 된다. 생생한 말의 향연을 즐기다 보면, 사실은 우리가 그렇게 ‘말’을 하고 있음도 알게 된다. 잘난 척 어려운 말로 본질을 흐리는 세상을 향해 시골노인들이 능청스레 답한다.

“연설허구 자빠졌네!”

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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