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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준의 그 고장 소울푸드 <12> 섬진강 은어

맑은맛을 시로 쓴다면 아마도 은어가 아닐지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07-19 18:46:19
  •  |  본지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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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정수역에서 사는 은색 물고기
- 9월까지 강에서 서식 후 산란
- 비린내 없고 담백·은은한 수박향

- 뼈째 썬 은어회는 경쾌한 식감
- 약한 불에 서서히 굽는 은어구이
- 달달 짭쪼름한 감칠맛이 폭발
- 은어밥 한 술에 향기가 솟구치고
- 은어튀김은 궁극의 고소함 자랑

섬진강과 화개동천이 합류하는 여울목. 몇몇 낚시꾼이 은어를 잡고 있다. 7월을 시작으로 섬진강에는 은어 놀림낚시가 한창이다. 낚싯대에 걸린 은어가 연신 여울목에서 튀어 오른다. ‘후드득’ 물살을 박차고 허공을 가를 때마다, 은색비늘의 은어가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섬진강 은어로 만든 요리들로 차린 한 상. 은어 튀김(왼쪽 위), 은어 구이, 그리고 은어회(왼쪽 아래). 수박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은어는 예부터 고급스러운 어종이었다.
은어는 예부터 맑고 깨끗한 물속에서 사는 물고기이다. 크기는 15~25센티미터 정도. 물속 청정한 이끼류를 먹고 자라기에, 비린내가 없고 맛이 담백하면서도 은은한 수박향이 돈다. 하여 예부터 임금님께 올리는 주요 진상품 중에 하나였고 옛 선비들도 즐겨 먹었던 어족이기도 했다.

주로 은어 향 그윽한 회나 구이로 먹었을 뿐 아니라, 지역에 따라 여름이면 은어 육수에 시원하게 국수를 말거나 밥에 은어를 통째 넣어 은어밥을 해먹었다. 조선시대에는 중국사신에게 ‘은어젓갈’이나 ‘은어식해’를 선물하기도 했다.

봄이면 바다에서 강으로 거슬러 올라오는 은어는 가을에 산란을 한 후 하류로 내려와 생을 마감한다. 산란을 하고 하류로 내려오는 은어를 ‘내림은어’라 하는데, 이 내림은어는 먹이활동을 일체 삼가다가 굶어서 죽음에 이른다. 이러한 염결한 성정이 마치 선비를 닮았다 하여 ‘물 속 군자(水中君子)’로 불리며 널리 사랑받기도 했다. 배 부분이 은빛을 낸다고 은어(銀魚)라 부르는데, 입술 주변이 하얗다고 은구어(銀口魚), 배 쪽에 은빛이 반짝인다고 은광어(銀光魚)라 불리기도 한다. 한 해만 살기에 연어(年魚)라 칭하기도 한다.

■ 깨끗한 여울목에 사는 ‘수중군자’

은어
섬진강 은어는 봄버들이 필 무렵 섬진강을 타고 올라온다. 9월까지 강과 계곡의 모래밭 등에 서식하다가 가을에 산란을 한다. 부화한 치어는 바다로 내려가 월동을 한 후, 봄에 다시 모천(母川)으로 회귀한다.

섬진강변에서 은어밥상을 제대로 차려내기로 유명한 화개동천 입구 혜성식당을 찾았다. 35년 섬진강 은어전문가인 김판곤 대표가 반가이 맞는다. “섬진강 사람들은 은어를 주로 매운탕이나 조림으로 해먹었습니다. 냄비에 감자나 무 등을 넉넉하게 깔고 손질한 은어를 올린 후 고춧가루와 진피(제피) 등과 청량초 등을 썰어 넣고 얼큰하게 끓여 먹었지요.”

가마솥에 은어밥을 해먹기도 했다는데 은어 특유의 향이 밥에 스며들어 진하고 구수한 풍미를 자아낸다고 한다. 가을에 산란한 내림은어인 ‘곤쟁이’는 은근한 숯불에 구워서 먹었다고. 약한 불에 서서히 굽기에 섬진강 사람들은 곤쟁이를 ‘말려먹는다’는 표현을 썼다. “숯불에 은은하고 노릇하게 구워내는 은어구이는 가을진미로 첫손 꼽혔습니다. 이 은어구이는 한때 대도시 술집의 고급술안주로 불티나게 팔려나갔는데, 100마리 단위인 두릅으로 거래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었지요.” 김대표의 말이다. 1970, 80년대 이곳이 관광지화 되면서 은어를 식재료로 한 음식들이 상업화되기 시작한다. 김대표의 말에 의하면 “당시에는 관광객들이 섬진강 은어가 없으면 식당에 발길도 안했어요. 수족관에 은어가 몇 마리라도 있어야 장사가 될 정도였지요. 그래서 은어잡이들에게 술을 사주면서까지 은어를 수족관에 늘 살려놓아야 했지요.”

■ ‘놀림낚시’ ‘걸갱이낚시’로 잡아
화개동천에서 걸갱이 낚시로 은어를 낚고 있는 모습.
당시 섬진강 은어를 잡는 방법으로 강의 본류에서는 ‘놀림낚시’가, 계류가 발달한 화개동천에서는 ‘걸갱이 낚시’가 유명했다. ‘놀림낚시’는 살아있는 씨은어의 몸에 낚싯줄을 매달아 영역을 지키고 있는 은어 무리 주위에서 놀리면, 이 씨은어를 쫓아내기 위해 몸싸움을 벌이던 은어들이 씨은어 꼬리에 매달려있는 낚싯바늘에 걸리도록 하여 잡는 낚시법이다. ‘걸갱이 낚시’는 짧은 낚싯대 끝에 낚싯바늘을 여러 개 묶어 만든 ‘훌치기 낚싯바늘’을 달아, 계곡의 큰 바위 밑이나 물살 도는 곳 등에 서식하는 은어를 낚아채 잡는 낚시법이다. 물고기를 긁듯이 잡아낸다고 ‘걸갱이’라 한단다.

‘은어밥상’의 명인인 안주인 이혜정씨의 도움으로 은어밥상을 받는다. 은어회와 은어밥, 은어구이와 은어튀김 등으로 상 위가 푸짐하다. ‘은어회’는 뼈째 넓적하게 썰어 놓았는데, 뼈가 아작아작 씹히면서도 억세지는 않다. 경쾌한 식감이라고나 할까? 잡내가 없어 담박하고 깔끔하다.

‘은어구이’는 먹는 내내 고소한 냄새가 사람을 괴롭힌다. 은어를 꼬치에 꿰어 그릴에 굽는데, 천일염을 솔솔 뿌려 구워서인지 짭조름한 살이 더욱 달고 깊다. 은어가 부드럽게 씹힐 때마다 감칠맛 또한 그윽하게 퍼진다. 일본의 귀한 별식 ‘아유시오야끼(은어소금구이)’와 비교해도 크게 뒤지지 않겠다. ‘아유시오야끼’는 긴 대나무 꼬치에 은어를 꿰어 소금을 뿌린 후, 화롯불 주위에 꽂아놓고 은근하게 익혀서 먹는 일본의 전통 향토음식이다.

‘은어밥’에는 은어가 통째 고스란하다. 마치 밥 위의 은어가 펄떡펄떡 뛰어오를 것만 같다. 은어의 육즙이 뚝배기 밥에 배여 향긋하다. 밥 속의 은행, 대추, 인삼, 완두콩 등속도 알알이 들어가 있어서 영양밥으로도 손색이 없다. 뼈를 추리고 살을 발라 향채양념간장에 쓱쓱 비벼서 한 숟갈 떠먹으니 그저 향기로움이 등천을 한다. 마지막으로 은어튀김은 궁극의 고소함을 자랑한다. 은어를 튀김옷에 입혀 기름에 튀겨내는데, 은어를 통째 튀기기에 은어살과 함께 은어내장의 풍미 또한 넉넉하게 즐길 수 있겠다.

■ 은어 낚고 녹차 한 잔 ‘신선놀음’

은어밥상으로 신선놀음을 하다가 칠불사나 들러볼 요량으로 화계동천 계곡을 오르다보니, 잠수복 차림의 한 사내가 짧은 낚싯대를 들고 물속을 살피고 있다. 이내 물속에서 큼지막한 은어를 한 마리 끌어올린다. 말로만 듣던 ‘걸갱이 낚시’로 은어를 잡고 있는 것. 화개제다 김준호(49) 공장장이다.

김씨는 “이 화개동천에서 40여 년간 ‘걸갱이 낚시’를 했습니다. 조과가 좋을 때는 하루 300~400마리를 잡기도 했었지요.” 요즘도 여유가 되면 걸갱이 낚시로 잡은 물고기로 지인들과 함께 어죽이나 매운탕을 만들어 술추렴을 한다고.

김씨가 걸갱이 낚시로 잡은 씨알 좋은 꺽지와 은어 몇 마리를 풀 가지에 꿰어 건넨다. 화개동천 초입 목압마을에 새 거처를 마련한 조해훈 시인의 집에서 직접 회를 뜬다. 계곡의 은어는 강의 여울목 은어보다 일찍 정착한 놈들이라 몸집이 크다. 살이 붉고 몸피가 노란색을 띤다. 한 점 먹어보니 은어 특유의 향긋함이 더 진하게 올라온다. 씹을수록 물이끼 향이 다채롭게 입안에서 돈다. 이를 옛 선비들은 수박이나 오이향으로 표현했으리라.

은어회를 먹고 조해훈 시인 서재에서 조시인이 직접 덖어 만든 녹차를 음미한다. 지리산 의신계곡의 물길이 화개동천을 이루는 곳에서, 화개의 물을 서로 사이좋게 나누던 은어와 녹차가 이곳서 또 다른 인연을 만들고 있음이다.

음식문화칼럼니스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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