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계 싱가포르인으로, 잘나가는 로펌 변호사였던 추와이홍. 넉넉한 은행 잔고와 멋진 집을 가졌지만, 삶의 의미를 못 찾다 2006년 사표를 던진다. 그 뒤 여행잡지에서 운명처럼 만난 중국 원난성 모쒀족 마을을 찾는다. 소수민족 모쒀족에겐 결혼제도가 없다. 모쒀족 여자는 평생 여러 애인을 갖는다. 자유롭게 성생활을 하다 출산하면 아이는 오로지 어머니의 자식으로 인정되며, 혈통은 모계로 이어진다. 가모장인 할머니, 할머니의 딸과 아들, 딸이 낳은 손주들로 이뤄진 모계 대가족이 모쒀족 가정의 기본 단위다.

어머니의 나라는 한 싱글 여성이 지구에 얼마 남지 않은 모계사회를 만나 삶과 문화를 경험한 이야기다. 이방인인 저자가 6년에 걸쳐 천천히 모쒀족과 가족이 되면서 경험한 성인식, 장례의식, 남자가 밤에 여자를 찾아가는 ‘주혼’ 등 모쒀족 문화를 잘 보여준다. 성인식을 치른 여성은 자기만의 방인 ‘꽃방’을 갖는데 모쒀족 남자는 이 방 창문을 두드려 구애한다. 여자는 남자가 마음에 들면 문을 열어주고 성관계를 유지하되, 두 사람이 평생 같이하는 것은 아니다.

모계를 중심으로 가족을 이루는 모쒀족의 삶은 오늘날 결혼과 가족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준다. 모쒀족은 주혼이 남녀관계를 순수하고 즐겁게 유지해주며, 결혼한 사람들과 달리 다투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들에게 이혼의 아픔은 없다. 남녀가 각자 자기 어머니 집에서 살면서 밤에만 만나는 ‘세이세이’(연인 관계를 일컫는 모쒀어) 관계에 있다가 헤어져도 별문제 생기지 않는다.

최근 경제 자유화나 현대화는 모쒀족의 전통적인 삶의 방식을 위협한다. 돈 문제로, 결혼 문제로 젊은이는 고민한다. 저자는 책의 마지막 장 ‘사라짐이라는 칼날 위에서’에서 “모쒀족과 함께 살았던 6년 새, 나는 자급자족인 생활을 영위하던 이들이 이제 막 성장하는 중국관광업이라는 기계에 맞아 들어가는 하나의 부품이 된 모습을 직접 목격했다”고 썼다. 현재 그들의 주 수입은 관광객에게서 나온다. 손 타지 않은 깨끗한 산속 풍경에 흥미로운 사회인류학적 이야기가 있는 사회가 처한 현실이 씁쓸하다.

정홍주 기자 hjeye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