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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리의 TV…태래비 <13> 올리브 채널 ‘밥블레스유’

인내심 시험하는 소소한 고민들, 맞춤형 음식으로 훌훌 털어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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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7-03 19:01:10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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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은이 김숙 이영자 최화정 출연
- 사연 읽으면서 이해와 공감 표현
- 진상 고객에 시달리는 노동자
- 매콤한 무말랭이 얹은 무국 추천

내 인생에서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3일이 있었다. 대학 기말고사도, 수능도 이것보단 견딜 만 했다. 지면도 좁고 사연도 범상치 않아 자세히는커녕 언급도 할 수 없다. 여하튼 기가 막힌 3일이었다. 3일간 나는 구구절절한 이유로 먹지도, 자지도 못했다. 막바지, 이제 7시간만 견디면 집에 가서 내 안락한 침대에 누울 수 있다라는 생각만 하며 내 코어 근육에게 나무아미타불을 외고 있던 그때, 갑자기, 쨍, 머릿속에서 막사발 깨지는 둔한 소리가 났다. 아마 인내심이 박살나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인생의 고민과 음식이 절묘하게 만나는 프로그램 ‘밥블레스유’. 김숙 최화정 송은이 이영자(왼쪽부터)로 이뤄진 진행자 진용이 막강하다.
7시간만, 7시간만 더 참으면 되는데, 내 인내심은 거기가 끝이었다. 나는 그 장소를 뛰쳐나와 무작정 운전을 하기 시작했다. 상복을 입은 채였다. 만 오천 원짜리, 깨끼로 대충 만든 까만 상복을 입고, 나는 40분을 달려 가장 먼저 보이는 쌀국수 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고수 좀 많이 주세요. 우울한 얼굴의 나는 따로 접시에 내온 고수풀을 쇠고기 쌀국수에 모조리 다 밀어 넣고, 초록색 고수가 사푼 얹힌 쌀국수를 입안으로 밀어 넣기 시작했다. 가본 적도 없는 베트남의 밀림이 영혼 속에 펼쳐졌다. 낯선 새소리, 이름 모를 짐승이 우는 소리, 대나무 숲 사이로 비치는 동남아시아의 태양빛, 내가 앉아 있는 곳은 비록 체인점 쌀국수 집이었지만 국수 한 그릇을 천천히 다 먹어치우는 동안 우울함의 압박이 조금씩 사라져갔다.

그리고 나는 멀쩡한 얼굴로 남은 7시간을 채우기 위해 그 장소로 되돌아갔다. 대체 어디 갔다 왔냐며 지청구를 듣긴 했지만 아주 기분이 괜찮았다. 올리브 채널의 ‘밥블레스유’는 바로 나 같은 사람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정식 방영이 되기도 전에 sns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송은이, 김숙, 이영자, 최화정이라는 구성원만 해도 기대가 부풀었다. 거기다 고민이 있는 사람에게 딱 적격인 음식을 추천해주는 내용이라니. 넷이서 길만 걸어도 유쾌하고 소란스러운 네 명은 맛있는 음식을 식탁 끝에서부터 끝까지 직접 만들어 차려놓고 후루룩 냠냠 맛있고 유쾌한 파티를 벌인다.
송은이가 고민자의 사연을 읽으면 함께 분개하고, 슬퍼하고, 꼭 맞는 음식을 추천해준다. 진상 고객에게 시달리는 감정 노동자에겐 매콤한 무말랭이를 얹은 시원한 무국을 추천하고, 많이 먹는다고 타박하는 남자 친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여자 친구에겐 그까짓 치사한 남자를 만나기 전엔 삶은 고구마나 실컷 먹어두라고 충고한다. 자연스럽게 제 사연도 나온다. 미치도록 사랑해서 눈깔이 뒤집어 지는 남자가 적게 먹으란다면 적게 먹을 각오가 되어 있다는 이영자에게 최화정은 ‘그런 남자가 어딨어!’라고 타박하고, 약간의 긴장이 흐르고, 느닷없이 네 사람은 ‘Stand by Your Man’을 부르며 춤을 춘다. 미친 듯이 사랑할 거야, 마음껏 사랑할 거야. 맛있는 음식과 무엇이든 사랑할 의지, 이 행복한 네 여자가 앞으로 더 보여줄 유쾌함은 대체 어디까지 인가.

   
그날에 딱 맞는 메뉴가 있다. 비 오는 날엔 칼국수집이 터지고, 쨍쨍 더운 날엔 밀면 집이 터져나간다. 음식이 날씨만 따라가는 건 아니다. 2018 남북정상회담 날엔 평양냉면집이 문전성시였다. 긴 냉전과 침묵을 깨고 우리 민족끼리 만나는 순간, 평양냉면 한 그릇이라도 내 위장과 만나게 해줘야 내 일상이 의미 있지 않은가. 정치와 식욕도 함께하는데, 내 인생의 고민과 음식이 만나는 순간, 먹어치우는 게 아니라 나를 위로하는 순간, 의미과 재미가 만나는 순간, ‘밥블레스유’가 여기에 있다.

작가·글쓰기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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