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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휘의 시네필] 사진, 생동하는 삶의 기억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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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6-14 18:48:29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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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사진을 통해 밋밋한 죽음의 세계로 들어간다.’ 프랑스의 비평가 롤랑 바르트(1915~1980)가 사진에 관한 에세이집 ‘카메라 루시다’에서 남긴 말이다. 사진에 찍힌 피사체의 이미지를 두고 그는 ‘사진의 유령(幽靈·spectrum)’이라고 부른다. 촬영하는 순간 과녁이 된 사람, 거기 있었던 사물은 사라지고 오로지 대상으로부터 복사된 흔적만이 남는다. ‘모든 사진에 다 같이 존재하는 약간의 무시무시함.’ 그에게 있어 사진이란 이미 사라진 시간, 정지해버린 순간을 언제든지 현재로 환기하기에 ‘죽은 자의 귀환’에 다름 아니며, 사진 찍기는 대상을 죽음의 영역으로 보내는 일이 된다.
   
아녜스 바르다 감독과 그래피티 아티스트 JR이 만든 작품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여성 감독 아네스 바르다와 사진작가이자 그래피티 아티스트인 JR이 공동 연출한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2017)은 바르트의 반대 극점에 있는 듯한 작품이다. 바르트가 음험한 메타포를 본다면, 역으로 바르다와 JR은 사진에서 생동하는 삶의 활기와 이를 바라보는 일의 즐거움을 보고자 한다.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1962), ‘행복’(1965)과 같은 명작을 남기며‘누벨바그의 대모’로 불린 노장 영화감독과 젊은 사진작가는 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의 모습을 사진 찍고, 대형 프린트로 출력해 마을의 광장, 담벼락, 건물 벽, 컨테이너에 큼지막하게 붙여놓는다. 창작의 과정 자체가 창작이 되고, 우연이 겹쳐 정연한 구도를 갖추어가는 일종의 로드무비. 얼핏 가볍게 보일 수 있지만 이건 단순한 여행의 기록이 아니다.

낡고 버려진 탄광 마을의 마지막 주민, 화학 공장의 직원들, 뿔을 자르지 않은 채 염소를 키우는 재래식 농장을 거쳐 폐허가 된 2차 세계대전기의 벙커, 항만 노동자의 아내 등 영화의 카메라는 여행 중 바르다와 JR이 마주치는 익명의 얼굴들을 훑어간다. 장소에 속한 사람들의 얼굴을 그 장소에 붙이는 설치예술 작업은 마치 바렛 뉴먼의 거대 추상화를 보는 듯한 일말의 숭고미를 자아내며 장소에 얽힌 사람들과 관계된 모든 것을 상기할 것을 요청한다. 장소는 영화관의 스크린이 되며 사진 이미지를 통해서 노동, 자연, 전쟁, 산업, 여성 그리고 공간의 시간과 역사, 그 안에서 치러진 삶의 서사가 영화처럼 투영된다. 그리고 이 여정은 바르다 자신에게 이르면서 영화사의 한 장으로 남은 누벨바그의 추억까지 환기하기에 이른다.
   
영화 속 바르다의 시선은 점차 부서져 잔해가 되어가는 것들, 누군가 애써 기록하고 기억하지 않으면 잊혀버릴 세계를 향해있다. 그리스 신화의 오르페우스가 죽은 에우리디케를 다시 만나기 위해, 죽은 자를 산 자로 되돌리기 위해 음악을 도구로 삼았듯이 바르다와 JR은 영화와 사진을 통해 언젠가 사라질 풍경과 사람들을 이미지 속에서 살아 숨 쉬는 모습으로 남기고자 한다. 바르트는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며 현세를 경멸했던 중세 기독교의 관념처럼 사진에서 ‘현실의 죽음’을 보았지만, 반대로 바르다는 사진과 영화에서 ‘현실의 재생(再生)’을 본다. 사람들은 사진을 바라보면서 살아있는 사람들을 기억할 뿐만 아니라 사진 찍은 날 마을의 생기를 느끼기도 할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는 인식 가능한 순간에 인식되지 않으면 영영 다시 볼 수 없게 사라지는 섬광 같은 이미지로서만 붙잡을 수 있다.’(발터 벤야민의 ‘역사철학테제’).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은 이 명제에 가장 잘 부합하는 영화일 것이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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