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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의 그곳에서 만난 책 <36> 박기영 시인과 시집 ‘맹산식당 옻순비빔밥’

아버지의 옻순비빔밥·꿩냉면 … 詩 짓는 아들의 피와 살이 되다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06-11 19:00:57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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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안남도 맹산 포수였던 아버지
- 아들에게 이북음식 만들어 먹여
- 실향민의 삶·추억 父子의 역사로

- 류시화·안도현과 어울린 시인
- 1982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등단
- 한때 ‘6시 내고향’ 방송작가 활동
- 현재 옻 음식 개발·詩作 동시에

우리가 먹었던 모든 음식이 우리를 만들었다. 음식에는 헤아릴 수 없이 오래된 자연과 문화, 풍속이 모두 녹아있다. 피가 되고 살이 되고 뼈가 되어준 음식을 그리워하는 것은 맛있는 음식을 탐하는 것과는 다르다. 자신의 태생과 삶을 잊지 않는 일이다. 오소리술, 곰순대, 꿩냉면, 콩비지밥…. 6.25 때 홀로 남쪽으로 내려온 아버지는 남쪽에서 태어난 아들을 키우며 고향의 음식을 만들어 주었다. 평안남도 맹산 포수였던 아버지가 만들어준 음식을 기억하는 아들이 쓴 시에는 그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시집 ‘맹산식당 옻순비빔밥’의 박기영 시인을 금강에서 만났다.
박기영 시인이 충북 옥천의 금강변에 서서, 평안남도 맹산 포수였던 아버지와 아버지의 음식을 떠올리고 있다.
■아버지와 아들의 밥

박기영 시인은 1959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를 따라 대구에서 정착해 살았다. 류시화 안도현 등 젊은 문학도들과 어울렸고, 17살 소년 장정일을 만나 문학으로 이끌었던 그는 1982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우리 시대의 문학’ 등에 시를 발표하며 시인으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1985년에 장정일과 2인 시집 ‘聖 · 아침’을, 1991년에 첫 시집 ‘숨은 사내’를, 2016년에 ‘맹산식당 옻순비빔밥’을 냈다. 1987년부터 KBS 방송작가로 ‘6시 내고향’ 등 여러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하고, 프리랜서 연출가로 활동했다.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가 2002년 귀국했다. 현재 충북 옥천에서 옻된장 등 옻과 관련된 음식과 상품을 개발하면서 시를 쓰고 있다.

옻순비빔밥이 궁금하다고 하자, 그는 “전세계에서 옻을 음식으로 먹는 건 우리 민족뿐이에요. 인류가 옻을 사용해온 역사를 보면 우리 역사의 한 갈래를 알 수 있어요”라며 옻에 대한 설명을 한참 들려주었다. 벌써 여름이 느껴지는 한낮, 금강에는 낚시를 하거나 산책을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강바람을 맞으며 금강을 내려다보는 시인에게서 얼핏 산을 보았다. 포수였던 아버지가 누비고 다녔던 산들이었을까. 깊은 골짜기, 높은 산봉우리, 맑은 계곡, 나무와 풀과 꽃…. 산은 많은 것을 품고 있다. 박기영 시인 안에도 그런 이야기가 있을 것 같았다. 무심한 듯 강을 바라보지만, 강 밑바닥까지 들여다보는 듯 했다. 그러니 아버지가 만들어 준 음식을 먹으며 아버지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그 음식을 먹고 살았던 사람들까지 헤아릴 수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포수였습니다. 조선시대의 포수는 외적의 침입에 맞서 싸우던 외인부대였어요. 집안대대로 내려오던 직업이었는데, 아버지는 14살 때 할아버지로부터 포수를 물려받았습니다. 투박한 손으로 밥을 지어먹이던 아버지의 음식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와 저의 역사이지요.”

■음식은 삶이고 역사이다

맹산식당 옻순비빔밥- 박기영 지음·2016·모악
아버지의 음식에는 어떤 사연이 담겨져 있는 것일까. 시 ‘꿩냉면’의 일부를 읽어보자. “메밀마저 고향 잃고/ 비틀거리는 냉면틀 빠져나와/ 설설 끓는 아버지의 땀방울 아래로/ 떨어져 내리고/ 끈기없는 메빌발 솥바닥 닿기 전/ 회초리보다 가는 국수칼로/ 아버지는 서러운 피난살이를 끊어냈다// 얼음살 하얗게 내린/ 붉은 갓물 든 동치미 냉면 사발에/ 손으로 빈대떡 뜯어 넣으며/ 아버지는 수십 년 전 두고 온 고향/ 들여다보고 계셨다.” 냉면이 어떤 음식인지, 어떻게 먹는 건지, 어떤 마음일지 느껴진다.
최근 들어 부쩍 사람들의 인기를 모으고 있는 ‘평양냉면’이라는 이름을 가진 냉면은 없었단다. 한겨울 추위 앞에 선 몸의 냉해를 빼내기 위해, 장정 서넛이 달려들어 국수틀에 매달렸던 ‘국수 먹는 날’ 냉면은 환경과 기후에 적응하며 살았던 사람들의 지혜로운 음식이었다. 환경이 다른 곳에서 사는 사람들이 아무리 흉내를 내도 맛볼 수 없는 음식이다. 메밀이 다른데다, 꿩고기나 동치미 육수 등 다른 재료도 문제이다. 어쩌면 북쪽에서도 그 예전의 꿩냉면 맛은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 맛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떠났거나, 떠나는 중이다.

시집에는 북쪽의 음식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북쪽의 음식을 다룬 시는 아버지와 함께 밥해먹으며 살던 시절 이야기구요, 다른 음식들은 KBS ‘6시 내고향’ 제작에 참여할 때 먹어본 음식들이에요. 전국 각지를 다니며 먹어본 그 지역의 음식들입니다.”

그는 왜 음식을 시에 담았을까. “사람은 먹어야 삽니다. 먹기 위해 삽니다. 음식은 삶이고, 역사입니다. 절박하고, 치열하고, 뜨거운 역사입니다. 향수나 탐식의 대상을 넘어서지요.” 그런 시선으로 음식을 보고 있자면 자연스레 숙연해질 때도 있다. “아무래도 이 시는 못 쓸 것 같다”로 시작하는 ‘두부에 대하여’를 읽고 있으면 그런 기분이 든다. “노란 열매에/ 숨겨져 있는 그 희고 흰 살결을/ 불러내기 위해/ 장작으로 불을 피워 올리고/ 소금의 피가/ 땅 위의 숨소리와 만나/ 뜨거운 물속에서 은밀히 결의한 이야기/ 함부로 입에 올릴 수가 있다는 말인가!// 세상사/ 씨줄과 날줄로 엮인 삼베에 싸여/ 두부가 자신을 만들 때/ 이따위/ 말도 되지 않는 문장으로/ 젓가락질 당하는 걸 원하지 않았을 터.” 라는 시 앞에서 두부가 얼마나 귀한 음식인지 알겠다.

사람을 먹여 살리는 음식, 음식을 구하는 사람들의 삶과 노동, 먹고 사는 동안 겪어온 일, 오래전에 시작돼 앞으로도 이어져야 할 역사가 담긴 시집. 박기영 시인의 시를 읽는 것은 그것을 다시 생각해보는 일이다.

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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