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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휘의 시네필] 전주국제영화제서 발견한 우리 시대 청춘의 초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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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5-17 19:01:58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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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국제영화제에서 선보인 일련의 한국영화들을 묶는 공통된 화두(話頭)가 있다면, 바로 ‘청년 세대의 삶’일 것이다. 이번에 한국경쟁부문 대상을 받은 정형석의 ‘성혜의 나라’(2018), 정대건의 ‘메이트’(2017), 고봉수의 ‘다영씨’(2018)는 각기 다른 연출방식과 관점을 가지고 현재의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청춘 세대의 군상(群像)을 다룬다. 이상의 영화들이 성취한 리얼리즘, 가난하고 부박한 청년 세대 현실에 대한 솔직담백한 시선은 전주국제영화제 선정작의 시대정신을 잘 대변한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의 주목할 만한 작품 중 하나인 ‘메이트’ 한 장면.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성혜의 나라’의 주인공 성혜(송지인)는 졸업 후 대기업 인턴사원으로 들어갔으나 성추행을 당해 회사를 그만두고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어렵게 생계를 이으며 살아간다.

번번이 재취업에 실패하고 학자금 대출을 갚으며 나날을 버텨나가는 성혜의 모습은 영화 속 한 개인의 모습을 넘어 불황과 취업난 속에서 허덕이는, 익명화된 현재 청춘 세대 공통의 우울한 초상화일 것이다.

영화는 일체의 과장이나 기교를 배제한 채, 성혜의 삶이 그리는 지난한 궤적과 감정선을 묵묵히 따라간다. 인위적인 음향을 배제한 극도의 단순성, 감정의 흘러넘침을 자제하는 침묵의 먹먹함, 색을 지워버린 흑백 영상의 메마른 질감은 오롯이 삶에 지친 성혜의 무표정한 얼굴과 그녀로 표상되는 청년 세대가 처한 현실의 피폐함에 집중하게 만든다.

‘메이트’는 ‘봄날은 간다’(2001)를 오늘날의 시점에서 다시 각색한 듯한 멜로드라마다. 지속가능한 사랑을 꿈꾸는 상우와 단기적인 관계를 즐기려는 은수의 관계는, 여기에선 데이트 앱을 통한 만남처럼 가볍고 소비적인 연애를 추구하는 준호(심희섭)와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관계로서 결혼을 바라는 은지(정혜성)로 남녀 구도가 뒤집혀있다.

‘봄날은 간다’의 연애가 당사자 간의 감정 변화에 기인한다면, ‘메이트’의 연애에는 다분히 현실적, 외부적 요인이 크게 작용한다. 준호와 은지의 상반된 연애관을 통해 영화는 전통적인 가족제도의 파괴를 경험하고, 장기적인 전망을 바랄 수 없는 직업 환경에 처해있는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재 청년세대의 내밀한 불안감과 양면적인 욕망을 고스란히 투영한다.

‘다영씨’는 무성영화의 형식을 취한다는 점에서 가장 이색적이다. ‘시티 라이트’(1931)에서 눈먼 소녀에게 연민을 품은 작은 방랑자는 이 영화에선 직장에서 박대당하는 한 여성을 사랑하는 퀵서비스 택배기사로 변주된다.

1920, 30년대 무성영화의 걸작들이 대공황기 소시민의 일상을 다루고 있음을 상기한다면, 고전적인 영화문법을 끌어들임으로써 도리어 당대성을 획득해낸다는 발상의 창의성에서 ‘다영씨’는 괄목할 만하다.
이상의 영화들이 반가운 건 2010년대 현재 한국의 청년 세대가 처한 현실을 올바르게 직시하는 당대성의 리얼리즘, 그리고 이를 정제된 영화언어로 표현해내는 한국영화의 차세대가 출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리틀 포레스트’(2018)가 위로부터 내려다보는 관점에서 청년들의 삶을 피상적으로 바라보고, ‘스물’(2015)이 희화화한 코미디 소재로 소모해버린 걸 생각하면 이건 괄목할 만한 현상이다. 직면한 당대의 현실을 자신들의 성숙한 영화언어로 증명해내는 새로운 인재들, 한국영화의 새로운 리얼리즘이 도래하고 있음을 예감한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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