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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의 그곳에서 만난 책 <34> 거제도 원종태 시인과 시집 ‘빗방울 화석’

고향에서 만지고 불렀던 자연의 이름…시인은 그들을 지키며 시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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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5-14 19:04:27
  •  |  본지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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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여름이 찾아오지 않은 바닷가 모래사장 위, 허리를 굽히고 눈을 크게 뜨고 살펴보니 쌀알만 한 크기의 작은 게가 보였다. 엽낭게이다. 뭐가 그리 바쁜 걸까. 어디론가 열심히 가고 있다. 엽낭게가 이미 뱉아놓은 모래 구슬이 끝도 없어 발을 내딛는 게 미안할 정도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눈에 띄지도 않는 이 작은 생명을 보면서 한 사내가 연신 감탄한다. 급기야 빈 조개껍데기 위로 게를 유혹해 무릎을 꿇고 사진을 찍었다. “이렇게 작고 아름다운 게들이 이 모래사장의 진짜 주인이에요.”

낮은 산에서 바다로 이어지는 개울에서는 기어이 아래로 내려가더니, 바위 사이에서 작은 고둥을 하나 조심스럽게 들어 보여준다. “멸종위기종인 기수갈고둥이 이 개울에 살아요.” 개울가를 따라 서 있는 식물에서 뭔가 따서 건넨다. “찔레순이에요. 어릴 적 먹어봤죠?” 경남 거제도 사곡마을에서 만난 원종태 시인은 고향 친구 같았다.
■詩를 다시 쓰게 하는 고향, 거제

   
원종태 시인이 경남 거제시 사곡마을 바닷가에서 엽낭게를 소중하게 들어 보이고 있다.
원종태 시인은 1968년 거제도 연초면 송정에서 태어났다. “바다가 보이지 않는 심심산골에서 나고 자랐지요. 중고교 시절에는 백일장에서 상도 더러 받았습니다. 여학생들 사이에 서서 청일점으로 상 받던 기억도 납니다. 아버지가 송아지를 팔아 대학에 보내줬지요.” 시가 쓰고 싶어 부산대 국문과에 진학했고, 문학 동아리 시월문학회에 가입했다. 1994년 ‘지평의 문학’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무엇보다 시를 사랑했지만, 시에만 집중하진 못했던 것 같아요. 1987년 6월이 제 삶에서 가장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인생의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할까요. 시를 쓰면서도 사회에 관심을 가졌고, 때로는 시보다 더 크게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지역신문과 내일신문 기자 등으로 일하다가, 2013년 말에 거제로 돌아왔다. 고향에서 할 일이 많았다. ‘거제통영오늘신문’을 경영하며 고향의 크고 작은 일을 담아내고, 자연환경을 보호하는 일도 시작했다. 현재는 거제시민에너지협동조합 이사장과 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을 맡아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위기에 처한 고향을 지키는 일을 주민과 함께 한다.

“거제로 돌아와서야 시를 다시 쓸 수 있었어요.” 세상 일을 들여다보는 그의 마음 한켠에 쌓여있던 시들이, 고향에 돌아오자 제 집을 찾아 나왔다. 이전에 써두었던 시 몇 편과 거제에서 쓴 시를 모아 2015년 첫 시집 ‘풀꽃경배’를 냈고, 2017년 ‘빗방울 화석’을 펴냈다.

그는 바닷가의 작은 게와 개울의 고둥을 눈 밝게 찾아내고, 눈에 보이는 꽃과 나무의 이름을 술술 들려주었다. “이 자연환경 자체가 제가 자라온 환경이라서 익숙해요. 전 5남 4녀 중 여덟 번째 아이, 다섯 번째 아들로 태어났어요. 일곱 살 때 처음 지게를 졌지요. 형들이 지던 지게가 제 차례에 온 거죠. 아버지 옆에서 농사일도 돕고, 산에서 나무도 했어요. 식물, 동물, 모든 자연이 제 옆에 있었습니다. 어렸을 땐 이름을 몰랐지만, 자라면서 그 이름을 하나 하나 불러줄 수 있게 됐어요. 제가 고향에서 환경운동을 하게 된 건, 고향의 아름다움을 지키고 싶은 마음 때문입니다. 전 개발로 이익을 얻으면 떠날 사람이 아니라, 고향 거제에서 오래 살아야 하니까요.” 그래서 그는 작고, 외롭고, 쓸쓸하고, 사라져가는 것들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 마음으로 산업단지 개발로 사라질 위기에 놓인 사곡마을의 바닷가를 지키려 하는 것이다.

■시인 시선과 발걸음 담긴 詩

   
빗방울 화석- 원종태 지음/푸른사상/2017
고향을 온전히 지키고 싶어 하는 시인의 눈에는 무엇이 보이는 걸까. ‘빗방울 화석’에 실린 시 ‘받침 없는 것들’ 중 한 대목이다. “달랑게와 엽낭게와 밤게와 집게와 갯게와 아이와 말똥게와 붉은발말똥게와 꽃게와 게고동이와 뽈찌와 잘피와 거머리말이와 애기거머리말이와 도요새와 긴부리도요새와 할미새와” 시는 이어진다. 지치지도 않고 꼬물꼬물 기어 나오고, 하늘을 나는 새들이 시에 등장한다. 모두 사곡 바다에 살고 있는 생명이다. 시인은 이들을 모두 눈으로 보았고, 이름을 알았고, 생태를 공부했고, 시를 썼다. 단순히 알고 있는 이름의 나열이 아니라, 자신이 눈 맞추고 인사를 나눈 친구들을 인간에게 소개하고 있다.

또 다른 시 ‘모래실은’ 그 생명이 사는 바닷가의 고운 모래를 독자의 손에 쥐어준다. “열렬히 한 철 피었다가 금방 사라진 해당화처럼/ 재재거리다 재재 숨어버리는 콩게처럼/ 지나간 것은 돌아오지 않겠지만/ 엽낭게들이 쉼없이 토해내는 모래 구슬처럼/ 모든 것은 모래처럼 연결되어 있다/ 모래와 물새와 파도와 함께 말없는/ 모래의 설교를 듣는다” 바다와 모래를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 고향을 지키고 싶은 그 마음이 실감난다.

   
“저는 머리로 시를 쓰진 못해요, ‘그곳’에 가야 해요. 가서 보고, 만지고, 느껴요. 메모도 하구요. 그러는 동안 파편적인 이미지들이 마음에 쌓이는 거죠. 그렇게 가득 모이면 시를 씁니다.” 움직여야 시가 나온다. 그는 오늘도 거제의 어딘가를 걷다가, 무릎을 꿇고 작은 생명을 경배할 것이다. 그의 시선과 발걸음이 어디로 향했는지 말해줄 세 번째 시집이 기다려진다.

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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