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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톡·톡] ‘토지’가 움튼 평사리 들판, 고요히 내려앉은 박경리 정신

박경리 10주기 추모제

  • 국제신문
  • 신귀영 기자 kys@kookje.co.kr
  •  |  입력 : 2018-05-07 18:46:27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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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1부의 배경 경남 하동서
- 토지 문학세계 짚는 세미나 등
- 시인·제자 등 참석해 추모문학제
- 정호승 추모시 낭송·제자 회고담
- 어머니 같은 모습 된 딸의 소감
- 사위 김지하의 시 ‘지리산’ 노래…
- 가장 문학적 방식으로 선생 기려

대작가 박경리의 고향은 그가 사무치게 사랑한 경남 통영이고, 1980년부터 영면 전까지 텃밭을 일구며 대하소설 ‘토지’를 완성한 제2의 고향은 강원 원주다. 그러나 그 위대한 ‘토지’의 고향이 어디냐 물을 때 한국 사람 열이면 열, 경남 하동 평사리라 말하지 않을까.
   
지난 4일 경남 하동 박경리문학관에서 열린 박경리 10주기 추모문학제에서 정호승 시인이 추모시를 낭송하고 있다.
최치수의 죽음으로 만석지기 최참판댁의 비극이 시작된 땅. 농사꾼 용이, 영팔이가 영혼을 묻은 땅. 어린 최서희가 조준구를 위시한 가문의 적들을 “찢어 죽이고 말려 죽일 것”이라 저주하며 처절히 등진 땅. 땅을 일구던 사람은 죽어도, 스스로 잡풀을 피워내고 벌레를 먹이는 평사리의 농토는 ‘토지’가 품은 생명사상의 시작이자 끝이다.

   
박경리 선생이 떠난 지 지난 5일로 10년이 됐다. 매년 제 나름의 행사를 열며 박경리 선생을 기려온 세 고장은 지난 4(하동), 5(통영)일과 오는 12(원주)일 각각 10주기 행사를 마련했다. 그 가운데 지난 4일, 아마도 가장 문학적인 방식으로 선생의 10주기를 추모한 하동 박경리문학관(관장 최영욱)을 다녀왔다.
바람이 별스럽게도 분 이날 오후, 추모행사는 거창한 개막식이 아니라 문학세미나 ‘박경리와 하동, 그리고 평사리’로 시작됐다. 이덕화 문학평론가, 박충훈 소설가, 김일태 시인이 주제 발표자로 나섰다.

그야말로 ‘소설 토지를 연구하는 것이 직업’인 토지학회 연구위원장 이덕화 박사는 토지의 내러티브에 관한 분석을 넘어서 평사리라는 공간을 심층 분석해, 평사리가 ‘민족 구성원이 서로 돌보고 더불어 사는 능동적 공동체, 즉 유토피아’를 상징한다는 이론을 펴기도 했다. MBC경남 PD였던 김일태 시인은 방송 사상 처음으로 박경리 선생과 독자의 만남을 성사시킨 일화를 회고하며 선생이 생전 그에게 했던 말들을 어록 형식으로 정리해서 들려줬다.

2시간의 세미나가 끝난 뒤에야 본행사가 진행됐다. 하동 출신인 정호승 시인이 추모시 ‘지금은 천국의 토지를 집필하고 계시온지요’를 낭송했다. ‘…지금 저 최참판댁 사랑채에 고요히 홀로 앉아 자목련 나뭇가지 끝에 내려앉은 새소리를 꿈꾸듯 평화로이 듣고 계시온지요. 행여 당신이 캄캄한 생의 봄길을 걸어오실까 봐 마음의 등불을 들고 마중나간 십년 세월이 하루처럼 한순간처럼 흘렀습니다…’

선생과 여고 동문 등의 인연을 맺고 절절히 따른 김지연 오정희 이경자 소설가가 선생과의 추억을 유쾌하게 또 아프게 회고했다. 김지연 한국소설가협회 이사장은 “진주여고 16년 선배인 선생님을 1969년 처음 뵈었다”며 “막 ‘토지’ 연재를 시작하면서 ‘현대문학’ 편집장에게 소설의 장구한 계획을 밝히는 자리에 함께했는데, 위대한 대하소설의 탄생을 예감했다”고 감동적인 순간을 돌이켰다.

선생의 엄격함, 다정함, 소박함, 담대함을 고스란히 전해주는 세 소설가의 회고담에, 선생을 한 번도 뵙지 못한 대부분 참석자들이 그의 인물됨을 짐작하며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선생의 딸인 김영주 토지문화재단 이사장은 어느덧 우리가 기억하는 그의 어머니와 같은 모습과 나이가 돼 단상에 섰다. 짤막한 소감을 말했을 뿐이지만, 그의 모습만으로도 선생을 가슴 깊이 존경한 이들은 이미 뭉클했을 것이다.

보리 익어가는 평사리 들판 위에 황금햇살이 내려앉을 무렵, 경남 노래패 산들과 맥박의 장엄한 시노래 공연으로 10주기 행사는 마무리됐다. 선생의 사위 김지하의 시에 안치환이 곡을 붙인 ‘지리산’을 들었을 때, 빨치산보다 총탄에 맞고도 허허허 웃으며 꽃잎처럼 스러진 호쾌한 동학당 윤보가 떠올랐다.

※ 박경리의 ‘토지’와 평사리

‘토지’는 1969년부터 1994년까지 26년에 걸쳐 5부 16권(최근 판 20권)으로 완간한 대하소설이다. 대한제국 몰락부터 일제강점기, 해방까지 새로운 시대를 맞는 과정을 대지주 최씨 일가 가족사를 중심으로 그려냈다. 하동 평사리는 1897년 한가위에서 1908년 5월까지를 그린, 제1부의 공간적 배경이다. 최참판댁 인물들과 마을 소작인, 귀녀, 김평산 등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주요인물은 대개 평사리 출신이다.

신귀영 기자 kys@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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