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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휘의 시네필] 영화 ‘어벤저스 인피니티 워’…대중오락으로서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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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5-03 19:32:42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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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저스 인피니티 워’(2018)는 마치 체스 놀이와 같다. 체스 선수가 장기 말의 쓰임새와 규칙을 모두 숙지하고 있는 것처럼 관객은 등장인물이 누구이며 어떤 능력을 지니고 있는지를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막상 경기에 들어가면 체스판 위의 대국은 예상과는 다른 갖가지 경우의 수를 펼쳐 보이는 것처럼, 영화의 향방 또한 추측과 예상을 빗겨나가며 의외의 국면으로 치닫는다.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안소니 루소, 조 루소 감독).
물론 종국에 어벤저스는 힘겨운 승리를 얻게 될 것이고, 다음 편에서 타노스는 패배하리라는 서사의 큰 도식은 운명처럼 지어져 있다. 중요한 건 이미 정해진 결말로 향해가는 과정, 모험의 여정을 어떻게 흥미진진하게 풀어나가는가에 있다. 그러한 점에서 이 영화는 도서관에서 종종 만나는, 내용 절반이 찢어진 오래된 장르 소설 같다.

‘천의 얼굴을 한 영웅’에서 조셉 캠벨이 지적하듯, 모든 영웅 서사는 인물의 탄생과 여정, 성장과 깨달음, 귀환이라는 정형화된 플롯, 유사한 공식(formula)을 타고 흘러간다. ‘아이언맨’(2008)에서 ‘닥터 스트레인지’(2016) 등에 이르기까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는 출신, 성격, 능력 차이를 보이는 인물과 외견상 새로운 상황 속의 행위만이 있을 뿐, 정해진 도식에 따라 일련의 사건과 주제는 (순서만이 아니라 심리적 태도까지) 끊임없이 반복되고 변주된다. 이야기에 새로움은 없다. 그런 점에서 현대에 히어로 물을 소진하는 양상은 마치 19세기 유럽에서 성행한 신문 연재소설을 닮아 있다. 유년기 아이들이 같은 이야기를 다시 들으며 즐거움을 느끼듯, 대중은 고정된 이야기 틀을 다시 경험하고 싶어 한다.

역설적이게도 마블의 성공은 반복되는 도식에 대한 대중의 옹호를 정확히 간파하고 들어간 데 있다. 창의성을 추구하는 예술적 실험은 수용자에게 차이를 인지하기 위한 긴장, 관찰과 주의를 필요로 하며 정서적 피로를 수반한다. 반면 대중오락으로 굳어진 도식으로서 서사, “빈번하게 반복되는 전형적인 메시지”(움베르토 에코 ‘대중의 영웅’)는 이미 아는 내용을 다시 확인하는 데서 오는 심리적 긴장의 완화, 참신하진 않지만 심심풀이 재미를 안겨준다. ‘어벤저스 인피니티 워’에 이르면 마블이 빚어낸 각각의 이야기 요소들은 상호 인용되고 절충되면서 다시 스스로 반복 재생산할 수 있는 구조와 체계를 낳는다. 여러 이야기의 파편을 퍼즐처럼 짜 맞추면서 세계관으로서 전설(Saga)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관객은 이 현대의 사가(Saga)에 이끌려 인물의 개성을 탐구하고 복기하고픈 유혹을 느낀다.
   
그러나 ‘인피니티 워’는 이야기의 외양을 확장하고, 대중오락의 메커니즘에 충실한 나머지 ‘현실의 반영을 통한 정치적 재투여’라는 예술의 중요한 기능을 관심 밖으로 팽개치고 만다. ‘배트맨 비긴즈’(2005)와 ‘다크 나이트’(2008),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2014)와 같은 영화들이 장르영화 안에서 극장 밖 현실의 정치적 논점을 파고들며 관객의 지성을 존중한 반면, 세계관의 자기 완결성을 추구한 ‘인피니티 워’에는 그와 같은 현실적 컨텍스트가 깡그리 사라지고 없다. 영화에서 정치의식이 말끔히 세척된 뒤에 남는 건 잠시 화려하게 피었다 사라질 공허한 불꽃놀이, 한 점 하나비(花火)일 따름이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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