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MZ 경험 영향 붉은색 그려
- 내달 2일까지 신세계갤러리

‘붉은 산수’로 잘 알려진 이세현(51) 작가가 고향 부산에서 처음 개인전을 연다. ‘세월호’ 사건 이후 변화된 화풍을 비롯해 그의 예술세계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작품 32점과 드로잉을 선보인다.

	이세현 작가가 첫 부산 개인전이 열리는 신세계갤러리에서 세월호 아이들을 생각하며 그린 작품 ‘Between Red-206’ 앞에 섰다. 신세계갤러리 제공

이세현 작가는 거제도에서 태어나 7살 때부터 부산 광안리에서 자랐다. 부산공예고를 졸업한 뒤 홍익대에 진학하면서 부산을 떠났다. 그가 고향 거제도와 부산의 풍경을 담기 시작한 건 마흔이 넘어서다. 늦은 나이에 영국 첼시아트컬리지(Chelsea Art College)에 유학하면서 ‘가장 나다운 것’을 찾다 한국의 풍경, 더 구체적으로 고향 풍경을 떠올렸다.

“한국에 있을 땐 외국 미술과 비슷하게 그리는 것이 자랑스러웠는데, 외국에 나가니 비슷한 것이 부끄러웠어요. 언어 음식 문화가 다른데 어떻게 똑같은 예술이 나올 수 있겠어요. 같아지려는 노력을 끝내고 그들과 무엇이 다른가 생각했죠.” 다름의 바탕은 ‘자연’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주어진 자연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이 각기 다른 문화를 만들었다”는 결론이었다. 차이의 근원인 자연에 대한 모색은 풍경화로 이어졌다.

	이세현의 ‘Between Red-015JUN01’.

그의 ‘붉은 산수’에는 거제도 큰아버지댁 마을 풍경, 부산 앞바다, 한국의 산이 담겼다. 이세현의 산수는 전통적인 한국의 산수화와 서양의 원근법이 결합된 조선 후기 실경산수화의 현대 버전이라고 평가받는다. 그의 산수는 온통 붉다. 군 복무를 한 비무장지대(DMZ)에서의 경험이 영향을 미쳤다. 야간 투시경으로 본 비무장지대는 신비하고 아름답지만, 슬프고 두려웠다. 한국의 풍경은 그렇게 사회적인 맥락이 더해져 이중적이고 복합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붉은색은 복합적인 풍경을 표현하기에 적절한 색이었다. 누군가에겐 정열적이고 아름답고 사람을 살리는 적십자 표식을 연상시키는 색이지만, 어떤 이에게 사상적 금지를 연상시키는 색이다. 지금은 붉은색에 대한 금기가 많이 완화됐지만, 10년 전 처음 ‘붉은 산수’를 선보였을 때만 해도 “적화통일을 바라냐”는 소리까지 들었다.

주로 자연 풍경을 담던 화폭에는 2014년 4월 16일 이후 본격적으로 사람이 들어왔다. “세월호 참사 때 큰 충격을 받았어요. 온 국민이 마찬가지겠지만. 아이들이 죽어가는 장면을 생중계로 봤잖아요. 이후 일어난 일도 악몽이었어요. 희생자 부모가 단식 투쟁을 하는 앞에서 ‘일베’가 폭식투쟁을 하고. 너무나 비상식적인 일을 목도하면서 풍경만으로는 그 이야기 다 할 수가 없었어요.” 그는 세월호 참사 이후 붉은 산수 곳곳에 해골, 벌거벗은 인체, 군 초소, 포탄의 흔적 등 ‘사회적 풍경’을 함께 그렸다.

신세계갤러리(해운대구 신세계백화점 6층)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에도 세월호 이후 변화된 화풍이 드러난 작품이 여러 점 있다. ‘Between Red-206’은 자연 풍경에 유명인들의 어린 시절 모습을 그렸다. “처음엔 세월호 희생자 아이들을 그리려 했어요. 조금 더 들어가니, 아이들이 크면 어떤 어른이 됐을까 싶었죠.”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아인슈타인 등의 어린 시절 모습은 아이들이 빼앗긴 미래를 상상하게 만든다. 다음 달 2일까지. 무료. (051)745-1505

박정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