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아성찰과 리얼리티 부각시켜
- 시조의 정형과 모더니티 결합
- 문단에서 독보적인 업적 남겨

- “현역인 내게 평론은 큰 도움돼”


쳐라, 가혹만 매여 무지개가 보일 때까지

나는 꼿꼿이 서서 너를 증언하리

무수한 고통을 건너/피어나는 접시꽃 하나(‘팽이’ 전문)

	‘모더니즘 시조의 개척자’로 평가받는 이우걸 시조시인. 국제신문 DB

시조 시인 이우걸(71)은 말한다.

“팽이가 대표작이 돼버렸지만 나는 ‘비’를 좋아해요. 나는 그대 이름을 새라고 적지 않는다, 나는 그대 이름을 별이라고 적지 않는다… 이렇게 시작되는 서정적인 작품이죠. 그런데 그 많은 사람이 내 대표작이 ‘팽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게 내 대표작인 거예요. 평론이란 그런 것으로 생각합니다. 연구자의 평가를 듣고 나를 돌아보는 것, 정진하게 되는 것. 그렇다고 그 평가에 나를 맞춰가진 않겠지만, 훌륭한 연구자는 늘 시인에게 방향을 제시하죠. ”

경남 창녕 출생 시조 시인 이우걸의 작품세계를 탐구한 책 ‘이우걸 시조세계’(태학사)가 나왔다. 정과리 공광규 장경렬 신상조 유성호 엄경희 우은진 이경철 등 국문학 분야 학자와 시인 19인이 글을 쓰고, 필진 중 한 명인 박정선 창원대 교수가 책을 엮었다.

이우걸의 시조 미학을 각자의 문체와 방법으로 탐구했으나, 이들의 연구는 결국 이우걸이 시조단에 남긴 가장 빛나는 업적으로 수렴된다. 유성호 한양대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형식 측면에서는 질서로서의 정형을 깊이 받아들이고, 내용 측면에서는 새로운 현대적 사유와 감각을 폭넓게 담아간 것”이다. 현대시조와 모더니티의 교섭을 적극적으로 모색한 것, 이것이 그의 독보적인 업적이라는 데 반대할 이는 없을 것이다.

실린 글 가운데서도 엄경희 숭실대 교수의 ‘근대성에 대한 이지적 통찰’은 이우걸의 시 세계와 그 문학적 의미를 구성하는 키워드와 개념을 명확하게 짚어내고 있다.

첫 번째는 자아를 거듭 성찰하고 회의함으로써 근대인의 자의식을 반복적으로 드러내는 점, 두 번째는 이전의 현대시조가 서정성에 집착한 것과 달리 근대의 일상성을 받아들여 리얼리티를 확보한 점, 그리고 마지막은 전통적인 인간관이 붕괴했음을 직시해 인간의 관계성을 현대적으로 형상화했다는 점이다. 엄경희는 이우걸이 이렇게 근대성에 대한 날카로운 인식을 전통 장르와 자연스럽게 결합시킨 것을 두고 ‘이지적 통찰력’이라고 표현했다. 이는 감정을 다스리는 절제의 힘이기도 하다. 이런 특징은 이우걸 이전과 이후의 현대시조를 구분하는 뚜렷한 특징이 되기도 한다.

이우걸은 올 하반기 새 시조집을 낸다. 사후 연구가 아닌, 현역 시인의 시 세계를 조명하는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우걸 자신은 이렇게 말한다. “혹시 내 사후에 나를 연구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이 쓸데없이 돌아가거나 고생하지 않도록 나에 관한 연구자료가 생전에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책 나오고 보니 심지어 당사자인 내가 일부 동의할 수 없는 평론이라도 현역 작가인 내게 큰 도움이 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책에는 19편의 평론 및 작품세계 해설과 함께 윤금초 박시교 유재영이 이우걸과 함께한 좌담 그리고 시인이 직접 쓴 ‘나의 삶, 나의 문학’이 실렸다. 이우걸은 계속 시를 쓸 것이고, 그의 작품세계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도 알 수 없지만, 현재로서는 시조시인 이우걸을 알기에 이만큼 적당한 책도 없는 셈이다.

신귀영 기자 ky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