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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휘의 시네필] 가상현실의 문화인류학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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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4-19 18:39:32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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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 플레이어 원’(2018)은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이 상용화된 근미래의 풍경으로 막을 연다. ‘동굴에 갇힌 죄수는 바깥에서 기다리는 광명을 알지 못한 채 벽면의 그림자를 진실이라 믿는다’는 철학의 오래된 우화는 보잘것없는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디지털의 유토피아에서 피안을 찾는 사람들로 뒤집혀져 있다. 사이버 공간 ‘오아시스’의 화려함과 물리 현실의 황폐함이 이루는 극명한 대조를 통해 영화는 현실과 가상의 경계선을 명확히 긋는 이분법적 인식에 머문다. “비록 고통스럽더라도 참된 삶의 실제는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는 현실에 있다”는 할로웨이의 대사는 분명 스필버그가 현실과 가상의 구분이라는 플라톤 이래의 전통적인 관점에 근거해 영화를 만들었음을 증명한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만든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실효성을 가진 사이버 공간을 실감나게 그려낸다.
그러나 물리 현실만을 유일한 현실로 바라보는 발상은 가상현실에 대한 이해를 편협한 것으로 만들 공산이 다분하다. 가상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은 엄연히 접속자가 처한 물리 현실에도 실제 효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레디 플레이어 원’의 주인공 웨이드는 퍼시벌이라는 ID와 캐릭터를 사용하지만, 이를 통해 접촉하게 되는 동료들과의 관계는 매우 현실적인 친밀함과 연대감을 형성하고 있으며, 아르테미스와 연인으로까지 발전한다. 가상현실의 경험이 실제적 경험으로서 효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오아시스 밖의 현실에서 만났을 때 어색함 없이 서로의 실제 모습을 대하는 인물들의 양태는 사이버 공간의 인간관계가 단지 비대면적일 뿐이지 허상이 아니며, 디지털 캐릭터 또한 익명성의 가면이라기보다는 다면화(多面化)된 자기 정체성, 확장된 표현형에 가까움을 잘 보여준다.
인터넷이 보편화한 상황에서 온라인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은 오프라인보다 현실적인 힘을 가질 수 있다. 장윤헌 감독의 ‘접속’(1997)과 노라 에프론의 ‘유브 갓 메일’(1998)은 PC통신 초창기를 배경으로 삼지만, 두 영화의 서사는 가상공간상에서의 소통이 어떻게 물리 현실에서 진지한 대면 관계로까지 전화(轉化)되는지 점진적 과정을 다룬다. (영화 ‘더 포스트’(2017)의 말미에서 스필버그가 노라 에프론에 대한 헌사를 남기는 건 ‘레디 플레이어 원’이 ‘유브 갓 메일’의 모티브를 이어받았음을 시인하는 작은 인장일지도 모른다.) 메일이나 채팅을 통한 소통이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심리적 상처를 회복해 다시 집 밖으로 나서게 하는 피드백(feedback)의 양상은 가상현실에서 보이는 행동과 상황 또한 아날로그 시대의 진정성 못잖은 무게를 가질 수 있음을 시사하며 미시 사회학이나 문화인류학의 진지한 관심을 필요로 한다.

   
흔히 가상으로 번역되는 영어 단어 ‘virtual’은 라틴어 ‘virtus’에 어원을 둔다. 이는 ‘역량, 능력, 기술, 활력’을 뜻하는 말로, 이에 따르면 ‘virtual reality’는 ‘가상현실’이 아닌 ‘실효 현실’(김용석 ‘깊이와 넓이 4막 16장’)로 번역하는 편이 옳다. 인터넷 댓글이 어떠한 정치적 ‘실제 효과’를 창출해내는가를 우리는 현실에서 똑똑히 목격하고 있지 않은가. 이제까지 한갓 ‘가상’으로 치부된 사이버 공간이 인간의 삶과 일상에 어떠한 상호교환적 ‘실효성’을 발휘하는가를 짚어낸다는 점에서 ‘레디 플레이어 원’은 현실과 가상의 딱딱한 구분을 넘어 다양한 차원, 다양한 정체성과의 부드러운 섞임을 관객에게 요청한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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