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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봉권의 문화현장 <28> 치열한 작가 흰샘 이규정의 추억

부산 문단에 남긴 61분 육성, 치열한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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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4-16 18:5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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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3일 타계했다는 소식에
- 2015년 인터뷰 파일 꺼내 들어
- 보도연맹에 희생된 친척 영향
- 교사 발령 등 안돼 고생하다
- ‘불순한 작가’ 찍혀 필화 겪는 등
- 역경·탄압 속 치열한 삶 살며
- “나는 소설을 쓸 사람” 평생 실천

- 21년 만에 재출간된 ‘사할린’
- “내 대표작”이라 말하던 그 아른

대암 이태준의 삶을 그린 장편역사사소설 ‘번개와 천둥’을 막 펴낸 작가 이규정 선생의 초대로 2015년 2월 23일 작가의 자택 근처 오리고깃집에서 함께 점심을 먹으며 나눈 이야기를 녹음해 둔 1시간 1분 34초짜리 파일이 나의 휴대전화에 남아 있었다. 지난 13일 이규정 작가가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접하고 그 파일을 또 들어보았다.
   
2017년 5월 부산소설가협회가 마련한 ‘선배 작가와의 만남’ 행사에서 이규정 작가(왼쪽)가 후배 소설가 배길남 씨에게 갓 나온 자신의 작품 ‘사할린’을 증정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함안에서 태어나, 마산남중학교라고 있었는데 그 학교를 다녔어요. 집안 형편은 어려운 정도가 아니었지…. 아주 힘들었어요. 고학을 했어요. 이 이야기는 처음 하는데. 나는 그 중학교 야간부를 졸업했지만, 주간과 야간을 통틀어 수석으로 졸업했어요. 그때 선배들이 수석 졸업을 하면 거의 진주사범에 갔어요. 나도 인제 당연히 진주사범 간다고 하고 있는데 우리 담임 선생님이 우리 집까지 찾아오셔가지고 절대 사범학교 보내지 마라, 지금은 좋아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졸업 뒤 취업을 생각한다면 차라리 상고에 보내라.…그래 가 내가 ‘진사’ 못 가고 마산상고에 갔지.”

1937년생 이규정의 삶은 그 이전에도 치열했고 그 뒤로도 치열했다. 후배 문인들에게 또는 부산 문단에 작가 이규정이 남겨준 선물을 꼽으라면, 그것은 ‘치열한 작가정신’이다.

“고3 때 경북사대에 지원했어요. 대학 보낼 형편이 안 되니 집에는 알리지도 않았지. 세 가지를 생각했어요. 집에서 가깝고, 돈이 적게 들고, 국문학과라야 했지. 그땐 국문학과가 아니면 소설을 못 쓰는 줄 알았어요.” 그가 말했다. “나는 소설을 쓸 사람이었으니까요.”

‘당연히’ 학비·생활비가 없었으므로 당연히 고학을 했다. 우여곡절 끝에 “내 힘으로 대구 칠성극장 사장집에 입주 과외를 구해 어렵게” 대학을 다녔다. 졸업하고 부산에서 교편을 잡으려 했을 때 또 다른 무서운 장벽에 부딪혔다. “참 머리도 좋았던 오촌 아재가 6·25 한국전쟁 때 보도연맹 사건으로 희생됐습니다. 저에게도 ‘연좌제’가 적용됐어요. 부산에서 고교 교사로 발령받을 때부터 고생을 했어요. 그 뒤 전문대로 옮겼다가 4년 일하고 부산여대의 교수 공모에 합격하고도 합격자 11명 가운데 나 혼자 한 달 동안 발령을 못 받았어요. 곱다시 한 달 시간강사 급여만 받고 뒤에 알아보니 정보기관에서 내 인사기록을 몽땅 가져가 발령을 못 냈다더군요.”

필화도 일찍이 몇 번 겪었다. “1977년 작품 활동을 시작해 1979년 소설집 ‘부처님의 멀미’를 냈는데 4, 5쇄를 찍으며 관심을 받았지. 서울의 출판사에서 찾아와 거금을 내놓고 작품을 달라더군요. 1979년이었으니 나는 진짜로 ‘서울의 봄’이 온 줄 알고 보도연맹 이야기를 그린 ‘불바람’을 건넸지. 근데 출판사에서 이런 민감한 소설은 못 냅니다, 그래요. 다른 출판사에 서 냈는데 당시 문공부 검열을 받았어요. 작품의 3분의 2가 삭제당했죠. 그때부터 요주의 대상, 불순한 작가로 찍혔어요.”

이런 일도 털어놨다. “지역에서 활동한 데 따른 손해도 있지 않았느냐”는 질문이었다. “내 입으로 말하기 그렇지만 손해가 있었지요. 지금까지 내가 소설책을 내도 ‘중앙일간지’에서는 단 한 번도 다룬 적이 없어요.” 이런 역경 속에서도 그는 소설집 9권, 짧은 소설집 1권, 중편집 1권, 가톨릭 신앙소설선집 1권, 전작 장편소설 1편, 3권짜리 대하소설 1편, 동화 1권, 문학이론서 2권, 산문집 1권, 신앙칼럼집 2권, 문학 공저 2권을 써냈다. 책의 내용 또한 시대와 현실을 치열하게 대면한다. “그런 내가 어떻게 ‘보수꼴통’이 될 수 있었겠소.”

   
이런 고백을 들으며 그의 치열함을 거듭 느꼈다. 그는 일제강점기 사할린으로 끌려간 우리 동포의 삶과 투쟁을 그린 대하소설 ‘먼 땅 가까운 하늘’(전3권·1996년 펴냄)을 21년 만에 재출간한 ‘사할린’(산지니출판사)을 “내 대표작”이라 했다. 절판됐던 ‘먼 땅 가까운 하늘’을 재출간할 필요성을 제기하는 기사를 썼던 당사자로서 이 치열한 작가의 부재가 깊이 슬프고 허전하다.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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