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산 시대’를 여는 2018 부산비엔날레가 전시주제 ‘비록 떨어져있어도(Divided We Stand)’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올해 전시는 참여 작가를 지난 행사의 절반으로 줄여 주제와 개별 작가·작품에 대한 집중도를 높일 예정이다.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는 지난 11일 오전 부산 사하구 부산현대미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18 부산비엔날레’ 전시주제를 밝혔다. 부산비엔날레 역사상 처음으로 공모를 통해 전시감독으로 선정된 크리스티나 리쿠페로(Cristina ricupero)와 외르그 하이저(Jorg Heiser)는 기자회견에 직접 참석해 전시 계획을 상세히 설명했다. 동부산에서 서부산으로 거점을 옮기는 2018 부산비엔날레는 오는 9월 8일부터 11월 11일까지 65일 동안 부산현대미술관과 옛 한국은행 부산본부(부산 중구 대청동)에서 열린다.

전시주제 ‘비록 떨어져있어도’는 예술에 나타난 ‘분리된 영토’를 다룬다. 전쟁과 식민지, 적대적 관계로 인한 국가·민족·지역의 분리는 어떤 정서와 외상후스트레스장애(트라우마)를 유발하는지, 반대로 어떤 심리적 요인과 사고방식이 영토의 분리를 초래하는지를 예술의 영역에서 고찰한다. 전시감독 하이저 씨는 “분단된 한국 만이 아니라 영국의 식민통치 후 분리된 인도·파키스탄·방글라데시, 구소련 붕괴와 더불어 갈라진 동구권의 지역적 갈등 등 분리된 영토로 인해 민족과 가족이 분리된 이야기는 전세계에 수없이 많다”고 설명했다. 전시감독들은 한국의 상황을 우선순위로 전시를 구성하기 위해 한국인 자문위원단(박만우 백지숙 임민욱 이영욱)과 협력 큐레이터(박가희)를 선정했다. 이들이 한국과 아시아 젊은 작가를 발굴에 집중할 계획이다.

전시 참여작가는 60~65명으로 2016 부산비엔날레 121명(팀)에 비해 절반으로 줄였다. 하이저 씨는 “매우 특정한, 구체적인 주제 중심의 전시이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부산비엔날레조직위는 “최근 해외 비엔날레도 무조건적인 몸집 부풀리기를 지양하고 있다. 지난해 독일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의 참여작가는 35명, 이스탄불 비엔날레는 55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전시 기획의 응집도를 높여 명확한 주제를 제시하겠다는 것이 전시감독들의 의도”라고 했다.

이날 참여작가의 일부 명단도 공개했다. 임민욱(50) 작가는 2015년 비디오 설치 작 ‘만일의 약속’을 확장·재구성한다. 1983년 방영된 KBS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장면을 토대로 과거를 대하는 신체적·심리적 공간으로서의 가능성을 고민하는 작품이다. 한국계 미국인 천민정(45) 작가는 북한문제를 다루는 ‘폴리팝(polipop)’ 작품, 부산 출신 서민정(46) 작가는 거대한 설치작업 ‘순간의 총체’를 선보인다. 이스라엘 출신으로 영국에서 활동하는 스마다 드레이푸스(46)는 이스라엘에 점령당한 시리아 드루즈 아랍인의 이야기를 다룬 ‘Mother’s Day’, 독일인 헨리케 나우만(34)은 자신이 출생한 극우파의 그룹의 온상 ‘츠비카우’ 지역을 비디오와 사운드를 결합한 설치작품으로 선보인다. 브라질 마우리시오 지아스&발터 리드베그 듀오, 싱가포르와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밍웡(47)도 참여한다.

2018 부산비엔날레는 두 개의 전시장에서 과거, 현재, 미래로 구분된 3개의 시간대를 조명한다. ‘전형적 냉전기의 고찰’로 명명된 과거와 ‘유동적 격량의 시대와 냉전 풍조로의 회귀’를 대변하는 현재는 부산현대미술관에서 구현된다. 옛 한국은행 부산본부에서는 ‘공상과학이라는 수단을 통한 투사와 예견’을 콘셉트로 한 미래가 펼쳐진다. 전시감독들은 “한국은행 부산본부를 방문하고 깊은 영감을 받았다. 역사적인 건물임에도 공상과학 영화 배경이 될 만한 건물이라는 점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옛 한국은행 부산본부는 1963년 완공된 건물로 근대적 조형미와 기능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 2013년 부산시 문화재자료 제70호로 지정됐다. 한국 건축가 1세대인 이천승 선생이 설계했고, 한국전쟁 기간 동안 두 번의 화폐개혁이 이곳에서 실시되는 등 역사적·건축사적인 가치가 있는 공간이다. 건물 면적은 약 6100㎡이며 각 층마다 공간 구획이 다르게 조성돼 비엔날레 전시를 구현하기에 적합하다고 부산비엔날레는 전했다.

전시 기간 중 UN 관계자, 부산지역 대학 교수와 학자, 활동가, 하나원(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 협력기관 등이 참여해 통합과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주제로 심포지엄도 연다.

전시감독들은 “2018 광주비엔날레 전시주제 ‘상상된 경계들 (Imagined Borders)’과 주제가 겹치지 않겠는가”라는 질문에 “광주비엔날레 제안서와 작가 리스트를 확인했다. 접근방식과 구조에 있어서 차이가 크다. 광주는 큐레이터 11명이 140명의 작가를 초청해 소규모 전시를 다양하게 진행하며, 주제가 다양한 방향으로 전개 가능하다. 우리는 주제가 ‘분리된 영토’로 분명하고, 경계에서 다른 곳으로의 이행 뿐만 아니라 그 이면을 함께 다루고자 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광주와 부산 모두 관람하고 차이점과 공통점을 찾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크리스티나 리쿠페로는 2006년 광주비엔날레 유럽 섹션 커미셔너와 2012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심사위원, 미디어시티서울 2016의 큐레이토리얼 자문을 역임하는 등 한국 미술계와 깊은 인연을 맺은 독립 큐레이터다. 주요 전시로 외르그 하이저와 공동 기획한 ‘Nuit Blanche Monaco’(2016), ‘New Way of Doing Nothing’(2014) 등이 있다. 외르그 하이저는 런던 기반의 세계적 미술 전문 잡지 프리즈(frieze)의 에디터로 20년간 활동했으며 현재 독일 베를린 예술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리쿠페로 전시감독은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지금까지 기획했던 전시에 대해 “시각예술과 인류, 사회정치적인 이슈를 잇는 전시 많이 했다. 논란이 될 수 있는 이슈, 포퓰리즘, 펀더먼털리즘, 새로운 질서 등도 다뤘다”고 말했다. 박정민 기자 link@kookje.co.kr

	2018 부산비엔날레-임민욱 작가의 ‘만일의 약속’

	2018 부산비엔날레-서민정 작가의 ‘순간의 총체’

	2018 부산비엔날레-천민정 작가의 폴리팝 작품.

	2018 부산비엔날레-스마다 드레이푸스의 ‘Mother’s Day‘.

	11일 부산 사하구 부산현대미술관 2층 전시실에서 2018 부산비엔날레 전시주제 발표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서순용 선임기자 seo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