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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의 그곳에서 만난 책 <32> 김해자 시인과 시평에세이 ‘시의 눈, 벌레의 눈’

마을 어르신 삶 받아적는 귀농시인… 말로 내뱉는 글이 詩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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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4-09 18:51:09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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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년 전 천안 용경마을 정착한 그
- 평생을 택호나 누구엄마로 불린
- 마을 어르신들의 이름 부르며
- 그들 속의 씨앗을 꺼내 심는다

- 모든 식물의 뿌리 근처에서
- 근원을 바라보는 벌레처럼
- 사람과의 내면 깊은 소통으로
- 세월 흐르면 없어질지도 모를
- 그들의 인생을 시로 옮겨적는다

“우리 마을에 와서 밥이나 한 끼 같이 해유,” 김해자 시인은 취재에 응하며 이렇게 말했다. 충남 천안시 동면 광덕리 용경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시를 쓰고 있는 그는 필자를 만나자마자 마을회관으로 이끌었다. 마을 어르신들이 함께 식사를 준비하고, 모두 모여 밥을 먹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란다. 하루 중 가장 즐거운 시간이다. “글 쓰는 김 선생 만날라고 부산에서 오셨대유” 라며 반갑게 맞아주시는 마을 어른들 옆에 앉았다. 냉이된장무침, 멸치조림, 김치찌개에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어딘가를 떠돌다가 집으로 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그 마을에 김해자 시인이 4년째 살고 있다.
   
충남 천안시 동면 광덕리 용경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시를 쓰는 김해자 시인이 마늘밭에 털썩 앉았다.
■우리 마을에 사는 시인

김해자 시인은 1961년 전남 신안에서 태어나 목포에서 자랐다. 고려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다양한 직업을 거치며 많은 노동자들을 만났고, 경험을 쌓았다. 그 현장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시로 썼고, 1998년 ‘내일을 여는 작가’로 등단했다. 시집 ‘무화과는 없다’ ‘축제’ ‘집에 가자’를, 산문집 ‘민중열전’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이상했다’, 시평에세이 ‘시의 눈, 벌레의 눈’ 등을 펴냈다. 전태일문학상과 백석문학상을 수상했다.

김해자 시인이 마을 어르신들을 소개할 때, 연세며 이름이 술술 나와 적잖이 놀랐다. “이름 뒤에 ‘언니’를 붙여 불러드려요. 이름을 불러 드리고 싶었어요. 평생 택호로 불리거나, 아이들 이름으로 불려온 터라 어르신들끼리도 서로 이름을 몰랐대요.” 함께 밥해 먹고, 농사일 배우면서 살다 보니 이제는 가족이나 다름없다. “제가 글 쓴다는 말을 들으신 어르신들이 ‘언제 글씨 쓴 것 한번 보여 줘유’ 하시더라고요, 서예를 하는 줄 아셨던 거죠. 글 쓰는 데 방해된다면서 현관문 앞에 먹을 걸 슬며시 놓아두고 가시기도 하시고, 동생처럼 잘 챙겨주시고요. 이장님은 농사지을 밭도 빌려주셨어요.”

그는 마을 어르신들의 삶을 ‘받아 적고’ 있다. “이전에도 해 본 적이 있어요. ‘민중열전’이라는 책으로도 나왔죠. 어르신들이 제가 당신의 삶을 존중하고 있다는 걸 믿어주셔야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요. 10년, 20년 뒤에는 후세대가 영영 잃어버릴지도 모를 삶의 모습을 기록하고 싶어요. 그분들은 말로 글을 쓰고 있어요. 저는 다만 글자로 옮기고 있지요.” 그렇게 시인은 마을사람이 되었고, 마을에서는 시인에게 ‘우리 동네 행복 지킴이 복지반장’이라는 직책도 주었다.

그의 마늘밭 가는 길에는 오래된 호두나무가 있다. “우리 마을에서 가장 연세 많으신 어른이죠.” 그는 한자리에서 마을 역사를 오래 지켜본 호두나무를 그렇게 불렀다. 연초록 잎이 뾰족뾰족 올라온 마늘밭 옆에 앉은 그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피어났다. “제가 농사짓는 밭이에요. 이쁘죠?” 마을길 걸을 때도 집 마당에서도 그는 냉이, 쑥, 꽃들에게 눈을 맞추었다. “지금 땅 밑에서는 온갖 생명이 꿈틀거리며 올라와요. 그래서 가만히 기다리고 중이에요. 욕심내서 뭔가를 심을 때가 아니라, 겨울을 이겨낸 생명의 기운이 땅 위로 솟구쳐 올라오는 걸 감사히 지켜보는 거지요.”

■시의 씨앗은 사람 속에 있다

   
시의 눈, 벌레의 눈- 김해자 지음 /삶창 /2017
그는 사람과 소통하는 것도, 자연과 교감하는 것도 내면 깊이 들어가야 가능하다고 말한다. “진정한 소통은 자기 뿌리를 알아야 할 수 있지요. 뿌리는 중심이에요. 식물의 뿌리 근처에 지렁이나 작은 벌레가 있잖아요. 벌레의 눈으로 본다는 것은 가장 근원이 되는 것을 인식한다는 거지요.”
그런 마음으로 쓴 시평에세이가 ‘시의 눈, 벌레의 눈’이다. 김해자 시인이 쓴 시집 발문을 모은 책이다. 백무산 송경동 권선희 정희성 이정록 이시영 등 15명 시인과 칠곡할매들의 시 그리고 김민기의 노래에 부친 글이다. 그들의 시가 무엇을 담고 있는지 김해자 시인의 눈을 통해 볼 수 있다. 봄의 대지에 씨앗이 뿌려지듯, 세상에 뿌려진 시의 씨앗들이 어떤 꽃을 피우는지 가늠할 수 있다. 그 꽃들이 독자들의 마음에 다시 씨앗으로 심어지길 바라는 김해자 시인의 손길이 책갈피마다 느껴진다. 뒤늦게 한글을 배워 시를 쓰고 시집을 냈던 칠곡할매들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용경마을 언니들을 보는 바로 그것이다. 그는 칠곡할매들의 시에 대해 이렇게 썼다.

“변두리 어법으로 내뱉는 ‘나는 아모것도 모리는데’ 속엔 엄청난 스승들과 역사와 노하우와 이야깃거리가 숨어 있으며, 그들이 품고 산 가치와 역정이야말로 인문이요, 그들이 살아 숨 쉬며 일구는 땅이 지리요, 그들이 먹고 나누고 꿈꾸고 만나며 생을 지속하는 이 모든 것이 문화일 테니까요.”

그는 진짜 시인은 숨어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이 말로 쓰는 글을 받아 적는 일이 큰 기쁨이며 깨우침이라고도 했다. 용경마을 언니들의 말은 지금도 그의 시가 되고 있다. 곧 나올 시집의 교정지를 펼쳐 그와 함께 읽었다. 자음과 모음 사이에도 해학이 스며들어있는 것 같은 충청도 사투리의 매력에 한참을 웃었다. 그렇게 웃고 난 다음에는 ‘이것이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뿌리를 잃고 떠돌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은 세상에서, 김해자 시인은 시의 씨앗을 모시고 심는다. 꽃으로 나무로 자랄 그 소중한 씨앗, 우리 마음에도 있다. ‘벌레의 눈’으로 보아야 하는 귀한 씨앗이다.

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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