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년 전 안창홍 작가 작품에 매료
- ‘감히’ 살 수 없다고 여긴 미술품
- 한두 점씩 모은 게 어느새 300점
- 그중 50여 점 6월까지 컬렉션 전
- “국내 작가 세계에 알리고 싶어”

우연히 미술과 사랑에 빠진 평범한 공무원이 7년간 봉급으로 미술품 300여 점을 구입한 어엿한 컬렉터이자 미술 애호가로 변신해 화제가 되고 있다.

공무원 월급을 모아 미술품 300여 점을 구입한 부산출입국관리사무소 허욱(오른쪽) 팀장이 아내 장수경 씨와 함께 ‘허욱 컬렉션 전’에 섰다. 허 팀장 뒤로 이왈종 작가가 특별히 제작해준 풍경과 성백주 작가의 ‘백장미’ 그림이 보인다.

부산 해운대신시가지 코오롱아파트 상가 3층 갤러리 ‘화; 고방’이 개관기념전으로 ‘숨은그림찾기-허욱 컬렉션 전’을 오는 6월 30일까지 연다. 직장인 허욱(48) 씨가 7년간 모은 작품 300여 점 중 50여 점을 선보이는 전시다. ‘컬렉터’ 허 씨는 매주 화요일 오후 7~11시 전시장에 상주하며 관람객을 맞이한다. 허 씨는 법무부 부산출입국관리사무소 감천출장소 선박심사총괄팀장이다. 평생 미술에 관심이 없던 그가 미술에 ‘미친’ 시기는 2011년. 우연히 간 아트페어에서 안창홍 작가의 ‘백년 전쟁, 부부란 역시 전사다’를 운명처럼 만났다. 남녀가 벌거벗고 처절하게 싸우는 장면을 담은 그림이다.

“아내를 사랑하지만 죽도록 미울 때가 있잖아요. 그림은 예쁜 꽃과 풍경만 그리는 줄 알았는데, 제 속의 감정을 끄집어내 그림으로 표현했다는 게 정말 신기했어요.” 그 뒤로 그 그림과 작가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인터넷에서 ‘안창홍’을 검색하고 퇴근하면 몇 시간씩 화가들의 도록을 보며, 인터넷 미술품 경매를 살폈다. 주말이면 갤러리, 아트페어, 골동품점을 찾아 다니며 그림을 구입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2013년 양성 종양으로 뇌 수술을 받은 뒤 술을 끊어 ‘취미생활’은 가속도가 붙었다.

그의 컬렉션은 치열하게 생을 예술에 바친 원로·중진의 작품이 많다.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단연 안창홍이고, 민중미술가 이윤엽의 판화도 다수 소장했다. 이우환의 판화와 ‘장미 화가’ 성백주, 김종학의 작품도 눈에 띈다. 방정아 이진이 오순환 등 지역 작가에게도 관심이 많다. 천경자의 수묵담채는 소장품 중 최고가다. 이왈종의 풍경(風磬) 오브제는 작품을 원하는 간절한 바람이 전달돼 작가가 특별히 제작해줬다. 안창홍의 ‘백년 전쟁’은 허 팀장이 7년간 수소문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안 작가가 올해 초 좀더 ‘처절한’ 버전으로 새로 그려줬다. 중국 미술가 웨민쥔의 판화 ‘노아의 방주’는 전두환 미납 추징금 환수를 위한 경매에서 샀다.

흔히 미술품 구매는 대단한 부자만 한다고 여긴다. 컬렉션이 ‘투기’ 수단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허 팀장은 “월급·상여금을 아껴 한 점, 두 점 샀다. 찾아보면 월급쟁이도 살 만한 작품이 많고, 판화는 유명 작가 작품이라도 생각보다 비싸지 않다”고 했다. 그는 투기 수단으로 미술품을 사지 않는다. 컬렉션 제1 원칙이 “값이 오를 작품이 아닌 좋아하는 작품을 산다”이다. 아내 장수경(46·부산 남도여중 수학교사) 씨는 처음엔 남편을 이해하지 못하다 지금은 응원한다. “당당하게 사라”고 거금 1000만 원을 내놓은 적도 있다.

그는 그림 보는 즐거움을 나누고 싶어 직장 사무실에 그림 20여 점을 갖다 놓았다. 일명 ‘갤러리 공람(供覽)’이다. “신기할 정도로 동료들 반응이 좋아요. 업무에 지칠 때 그림을 보면 힐링이 된다며 고마워하는 동료도 있죠.” 그는 “퇴직하면 수집품을 선보이는 작은 미술관을 감천문화마을에 열고, 세계에 우리 작가를 알릴 화상(畵商)이 되고 싶다”고 꿈을 말했다. 관람 문의 010-5790-0875

박정민 기자 lin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