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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의 그곳에서 만난 책 <31> 이응인 시인과 시집 ‘솔직히 나는 흔들리고 있다’

세상은 시를 쏟아내고, 시인은 안테나를 세워 받아쓸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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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03-26 18:42:48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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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있는 그대로의 모든 순간이 詩
- 고치고 기교부리면 오히려 부담
- 한결같은 시선으로 사람들 대해
- 잠시 쉬어가라고 손 내밀듯
- 긴장·방어하던 삶 무장해제 시켜

“시는 세상이 나에게 주는 선물인데 낑낑대면서 시를 쓸 필요가 있나요. 세상은 시를 쏟아내고 시인은 안테나를 세우고 받아쓸 뿐이죠. 안테나를 통해 받은 감흥을 살리는 것이, 뒤지고 헤집으면 사라져요. 그런 시는 평론가는 뜯어먹을 게 있을지 몰라도 독자가 볼 것은 없어요.”
   
이응인 시인이 봄볕 짙은 밀양강가에 섰다. 그는 “세상이 제게 준 것을 주워 담은 몇 조각이 나의 시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응인 시인의 말이다. 그가 들려준 많은 이야기 중에서 한 단어도 빼지 않고 간직하고 싶은 말이었다. 세상을 향해 안테나를 세우고 시를 받아쓰는 이응인 시인을 만났다. 그의 안테나는 밀양에서 세상을 향하고 있다.

■ 세상이 들려주는 시(詩)

   
솔직히 나는 흔들리고 있다- 이응인 지음 /나라말 /2015
밀양역에서 10분 정도 걸어가면 이응인 시인이 일하는 세종중학교가 보인다. 그가 1988년부터 국어를 가르쳐 온 학교이다. 기차역에서 내릴 시간을 짐작하고 있었는지, 시인은 학교 건물 앞까지 마중을 나와 있었다. 학교 후문을 나서 도로로 올라서자 유유히 흘러가는 밀양강이 보였다. 쑥을 캐러 나온 사람들도 보였다. 강바람도 부드럽고, 햇빛도 포근했다. 어느새 봄이 훌쩍 와 있었다.

이응인 시인은 1962년 경남 거창군 주상면 내오리에서 태어났다. 조금만 더 가면 덕유산을 만나는 깊은 산골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학교 사택에 총각 선생님이 살고 계셨어요. 저녁이면 동네 아이들을 불러 모아 숙제도 봐주시고, 밤하늘을 함께 보면서 별자리 이야기도 들려주셨죠. 읍내에서 열리는 글쓰기, 그림 그리기 대회에도 데리고 가 주셨고요. 그 선생님처럼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었어요.”

중학교 때 가족은 부산으로 이사를 왔다. 부산대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한 그는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한지붕문학회’를 만들었다. 얼마 후 ‘시월문학회’로 이름을 바꾼 동아리 활동은 즐거웠고, 문학회 후배들에게는 그때가 전설로 남아있다. “회원들이 시와 소설을 손으로 쓰고, 마스터 인쇄하고, 제본도 했지요. 문집이 만들어져 들고 오는 날, 너무 무거워 지나가는 꼬마아이를 달래 세발자전거에 싣고 오던 기억도 나요.”

직접 손으로 문집을 만들던 열정은 그를 시인으로 만들었다. 1987년 무크지 ‘전망’에서 등단했다. 시집 ‘투명한 얼음장’ ‘따뜻한 곳’ ‘천천히 오는 기다림’ ‘어린 꽃다지를 위하여’ ‘그냥 휘파람새’를 냈다. 그리고 전작 시집에서 고른 시편과 밀양사람으로 살아가는 이야기, 송전탑을 반대한 할머니들의 목소리가 담긴 신작 시를 모아 2015년 ‘솔직히 나는 흔들리고 있다’를 더했다. 이 시집에는 시인이 찍은 사진과, 밀양 송전탑 사진을 찍은 이상범 씨의 사진도 실려 있다. 시를 읽다 보면 잠시 쉬어가라고 손을 내밀 듯, 사진이 한 장씩 나타난다. 긴장감 없이 시인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시집이다.

“대학시절 문학회 활동 할 때도 그랬지만, 기교가 성한 시가 좀 부담스러워요. 가만히 들어보면 세상이, 자연과 사람이, 일상생활이, 모든 것이 제게 시를 들려줘요. 저는 마음으로 그 시를 받아들여 쓰는 거죠. 더 잘 쓰겠다고 이리저리 만지다 보면 망가진다고 생각해요.”
■ 욕심 없이 완성되는 ‘시(詩)의 일’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마음을 열고 시를 받는 시인. 이응인은 그런 시인의 길을 걷고 있다. 그래서일까. 그의 시를 읽으면 편하다. 복잡하게 얽힌 세상사를 이해하려 노력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 본래의 의미가 절로 마음속에 들어온다. ‘콩을 가리다가’라는 시도 그렇다. ‘동글동글한 거, 길쭘한 거/ 노오란 거, 포르스름한 거/ 벌레 먹은 거, 갈라진 거/ 납작한 거, 구멍 난 거/ 쭈글쭈글한 거// 겉똑똑이/ 새침데기/ 고자질쟁이/ 땅꼬마// 밉상 아닌 게 하나도 없네.’ 시인이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을 보면서 쓴 이 짧은 시 한 편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느꼈는지 모른다. 밉상 아닌 게 없다지만 사실은 모두를 사랑하고 있다는 시인의 마음이 다가오는 건 기본적 감상이고, 마치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을 만난 기분이 들었다. 날 선 단어 하나 없이 갑질도, 차별도, 권력도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말해준다. 모든 아이와 모든 사람을 한결같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 앞에서, 긴장하고 방어하고 공격하며 살아왔던 시간이 무장해제 되는 기분이다.

시 ‘멍청하게’는 그의 시 세계를 짐작하게 한다. ‘내 게으른 걸음이 시가 된다고 생각한다/ 걷다가 잠시 멈추어 들판의 끝을 보거나/ 자운영 가득한 논들에 서거나/ 철없이 흐르는 물소리에 말대꾸하거나/ 그 순간 시가 된다고 생각한다./ 들판이, 자운영이, 물소리가 나를 가득 채워서/ 내가 최대한 멍청해질 때/ 시가 된다고 생각한다./ 멍청하게.’

   
자신에게로 오는 모든 순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시인의 ‘멍청한’ 모습을 떠올려본다, 더 잘 꾸미려는 욕심 없이 완성되는 ‘시의 일’을 짐작해본다. 그는 말했다. “저의 내면에는 별거 없어요. 있다면 이 세상이 제게 준 것을 주워 담은 몇 조각이 있겠지요. 문을 열고 세상을 만나면 거기에 있는 더 큰 것을 만날 수 있어요.” 그의 안테나는 그렇게 세상을 향해 있다. 그와 세상 사이를 가로막는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이응인에게는 세상 전체가 그대로 시가 된다.

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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