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자병법·육도 등 병서를 통해
- 우리나라 역사 속 첩보전 연구
- 고구려·백제·신라, 전쟁의 시대
- 첩보전 귀재 김유신·을지문덕…
- 긴장감 가득 입체적 인물로 부활

사마천의 ‘사기’에 관해 손꼽히는 전문가인 김영수 역사학자(한국사마천학회 이사장, 중국 사마천학회 회원)의 첩자고(諜者考)-삼국시대의 첩보전은 첩자에 관한 책이다. 첩자…. 듣기만 해도 긴장감과 박진감이 엄습하는 낱말이다. 우리나라 삼국시대와 중국 고대사를 중심으로 첩자의 역사를 파고드는 이 책 또한 시종일관 긴장감과 생동감이 있다. 그런데 먼저 짚어둬야 할 점이 있다. 이 책은 ‘엄연한’ 학술서라는 점이다. ‘첩자고’는 저자가 1992년 첩자 연구의 첫 논문 ‘고대 첩자고’를 탈고한 뒤 지금까지 이어온 첩자 연구의 학술적 연구 성과를 한 권에 담았다.

왼쪽부터 김유신, 을지문덕, 손자

여기에서 자연스럽게 이 책이 갖는 독특한 가치와 덕목이 드러난다. 국내 학계에서 매우 드문 첩자의 역사 연구의 성과물이라는 점이다. 그런 사정은 머리말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그로부터 10여 년 후 저자는 혹 첩자와 관련한 후속 연구들이 있을까 하여 자료를 찾았다. 전쟁사 논문에 간혹 각주의 형태로 인용된 것을 제외하고 연구 논문은 발견하지 못했다.(역사 분야에서 그렇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질문 하나가 따라온다. ‘첩자의 역사를 읽으면 어떤 이득이 있는가’쯤이 되겠다. 역사 독서를 ‘3D 입체 극장’으로 만들어준다고 답할 수 있다. 역사를 더 입체적이고, 생기 있게 이해하고 공부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역사는 문(文)·사(史)·철(哲)이라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 인문학 공부의 첫걸음이자 중요한 영역이다. 책은 ‘손자병법’과 ‘육도’ 등 병서의 고전을 거쳐 고구려·백제·신라, 다시 말해 우리나라 역사 속 첩자와 첩보전을 연구하고 규명하는 영역으로 나아간다. 이는 좀 넓은 시야로 보면, 한국 역사 연구의 지평을 넓히는 작업이라고 판단한다.

책을 펼치면 삼국시대의 치열했던 첩보전이 다양한 각도에서 펼쳐진다. 저자가 서두에 “연구에 따르면, 삼국시대의 전쟁 횟수는 460회에 이르는데 그중 삼국 간의 전쟁이 275회로 약 60%를 차지한다. 삼국시대를 대략 700년으로 볼 때 1.5년에 한 번꼴인 셈이다.…삼국시대는 어떤 의미에서 우리 역사의 춘추전국시대라 할 수 있다”고 밝힌 점도 공감이 간다. 저자의 이런 해석에서 한발 더 나아가면 이렇게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전쟁은 철저하고 처절한 비극이지만, 그런 생존을 위한 총력전의 경험은 문명의 총체적 향방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전쟁을 외면하고 역사를 인식하기는 어렵고, 그 한가운데 첩보가 있다.

삼국시대 첩보전에서 존재감이 단연 강한 인물은 신라의 김유신이다. 김유신의 첩보전을 둘러싼 역사기록을 샅샅이 살핀 저자의 작업 덕에 김유신은 훨씬 입체적으로 살아난다. 첩보전·심리전의 귀재, 고구려의 을지문덕도 중요한 존재다. 우리나라와 중국 기록 등을 풍부하게 인용하고 해석했다. 책의 1부는 저자가 2006년 펴낸 단행본 ‘역사를 훔친 첩자’를 보완해 실은 것이고, 2부는 저자가 그간 쓴 관련 논문들이라 읽으면서 반복되는 느낌이 꽤 든다. 그러나 저자의 연구 과정으로 이해된다. ‘삼국시대 병법서의 수용과 그 활용’ 등 흥미로운 논문도 눈길을 끈다.

조봉권 기자 bgjo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