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자·백자와 다른 자유로운 매력
- 현대성 살리려 형태 변형 시도
- 독창성 인정받아 뉴욕서 초청도
- “시간 흘러도 같으면 문화 아냐”
- 신세계갤러리서 내달 3일까지
“전통에 대한 관심이 한쪽 날개라면, 외부에 대한 호기심은 다른 한쪽 날개죠. 전통과 현대성에 대한 관심이 똑같아야 새가 양쪽 날개로 원하는 방향으로 날아가듯 옳은 예술의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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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해운대구 신세계갤러리에서 ‘분청’ 전을 여는 분청의 대가 윤광조(가운데) 작가와 그의 제자 김상기, 이형석, 김문호, 변승훈 작가.
신세계갤러리 제공 |
급월당(汲月堂) 윤광조(72)는 수백 년간 잊힌 ‘분청’(粉靑)을 살려낸 ‘분청의 대가’임에도 ‘현대성’을 전통과 똑같이 강조했다. 조상의 분청을 그대로 살려내기만 해서는 ‘문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문화는 풍토를 어머니로, 시간을 아버지로 해서 태어납니다. 시간이 변했는데 똑같으면 문화가 아닙니다. 달라야죠.”
윤광조가 분청을 만난 건 운명 같았다. 홍익대 공예학부 재학 중 서울 종로구 청진동 외국 서적을 파는 서점에서 일본 잡지에 실린 분청을 처음 봤다. 일본어로 ‘미시마’(三道)라고 하는 도자기인데 청자, 백자와는 전혀 다른 아름다움이 있었다. 분청의 현대적인 감각에 매료됐지만, 일본어를 몰라 더는 알아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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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기 작가 ‘분청지두문장군병’ |
분청은 고려 말기인 14세기 후반부터 조선 전기 약 200년간 유행한 도자양식이다. 회색 계통의 바탕 흙으로 빚어 흰 흙으로 겉면을 입히고, 회청색의 유약을 발라 굽는다. 고려와 조선의 ‘틈새’ 시기에 나타난 만큼 화려한 고려청자, 격조 높은 조선백자와는 전혀 다른 미학을 보여준다. 당대의 정서가 반영돼 형태와 장식기법이 자유분방하고 대담하다. 분청은 16세기 백자의 등장과 함께 도자사의 주류에서 사라졌다. 반면 왜란 전후 일본에서 ‘이도’(井戶)나 ‘미시마’로 불리며 큰 보물 대접을 받았다. 우리나라 박물관학 개척자 고유섭이(1905~1944) 분청의 미학을 간파하고 조선조 전기 청자에 화장토를 바른 자기를 ‘분청회청사기’ 줄여서 ‘분청’이라 이름 지으면서 비로소 우리말 이름을 갖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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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석 작가의 작품 |
윤광조가 분청의 존재를 알게 된 건 고유섭의 제자 최순우(1916 ~ 1984)를 통해서였다. “육군사관학교 박물관에서 군복무를 했습니다. 일병 때 국립중앙박물관 미술과장 최순우 선생님에게 찾아가 분청이 실린 일본잡지를 보여주고 무슨 뜻인지 물었죠. 그제야 ‘분청’의 존재를 알게 됐습니다.”
그는 경기도 이천 도자기 모조품 만드는 공장에서 분청을 만드는 기본 기술을 배웠다. 1960년대 후반부터 어느 시기까지는 옛날 분청사기 형태와 문양을 그대로 따라했고, 1980년대 말까지는 모양과 형태에 변형을 주며 자신만의 미학을 형성해갔다. 더는 변화가 어려워졌을 때 ‘물레’를 버렸다. 물레를 돌려 분청을 만들어서는 변화에 한계가 있었다. 그는 현재 흙판을 붙여 모양을 잡는다. “잘하는 걸 내려놓아야, 기득권을 내놓아야 변화가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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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광조 작가 ‘산동’ |
그래서 윤광조의 분청은 더욱 자유롭고 현대적이다. 흔히 도자기하면 상상하는 둥근 형태가 아니라 삼각형, 사각형, 육각형 등 다양하다. 작품 표면에 화장토를 칠하는 기법으로 동양화를 연상시키는 둥글고 깊은 산맥도 그린다. 한쪽 귀퉁이가 깨진 사발도 있다. 전통적인 분청을 현대적으로 변형한 독창성을 인정받아 2011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도 초청돼 전시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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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문호 작가 ‘한옥’ |
윤광조가 부산에서 의미 깊은 전시를 열고 있다. ‘분청의 현대화’라는 윤광조의 뜻을 이은 제자 4명과 함께 작품을 선보이는 것이다. 급월당 일문(一門)이지만 제자들은 스승처럼 각자의 예술 세계를 꽃피웠다. 변승훈(63)은 회화와 조각의 접점을 찾아 벽에 거는 분청을 만들었고, 김상기(62)는 옹기와 분청의 접목과 우연한 자연스러움을 추구한다. 김문호(61)는 분청을 한옥·탑·동물 등 입체적인 형상으로 변형시켰고, 갈라지고 터진 특유의 표면 질감을 만드는 이형석(53)은 최근 덤벙 기법(백토를 탄 물에 도자기를 덤벙 담그는 기법)에 빠져있다. 분청의 거성 윤광조는 이번 전시를 맞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30년 전 내게 왔던 제자들이 나처럼 살고 있더군요. 그렇게 살라고 하지 않았는데. 정말 소중한 전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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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승훈 작가 ‘뚱딴지’ |
윤광조와 4명의 제자가 현대 분청 도예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분청’ 전이 신세계갤러리(부산 해운대구 신세계백화점 6층)에서 다음 달 3일까지 열린다. 무료. (051)745-1508
박정민 기자 link@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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