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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봉권의 문화현장 <26> 성폭력을 저지른, 뛰어났던 예술가라고?

‘공감의 시대’에 걸맞은 예술인상 정립할 때다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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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3-06 19:05:24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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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짜 기인 떠받들던 과거와 달리
- 예술에도 공감능력 비중 높아져
- 타인의 아픔 예민하게 느끼고
- 시대의 변화 포착할 줄 알아야

나는 예술 자체가 변화했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변화하고 있다. 이를 주장하려면, 조금 빙빙 돌아서 가는 예시를 들어야 함을 양해해주시기 바란다.
   
지난달 25일 서울 대학로에서 예술계 미투 운동을 지지하는 관객들이 ‘위드유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큰 박물관의 청동기 전시관에 가면, 청동기가 많을까 석기·토기가 많을까. 내 경험으로는 석기·토기가 훨씬 많다. 부산박물관 청동기실에 내걸린 안내문 한 구절을 보자. “이곳(청동기시대 무덤)에서는 붉은간토기·민무늬토기·간돌칼·간돌화살촉·옥 장신구 등이 출토되어 청동기시대 부산의 매장문화를 알 수 있다.”(‘청동기시대 사람들의 삶과 죽음’ 중) 이 설명문이 예시로 든 무덤 껴묻거리는 옥 장신구를 빼면, 모두 석기·토기다.

청동기시대가 왔으므로 사람들이 그동안 쓰던 석기를 버리고 대거 청동기를 쓰지 않았을까 짐작하기 쉬운데, 청동기시대의 오랜 기간 청동기는 주로 제의도구나 무기로만 쓰였다. 그걸 뺀 나머지는 석기·토기였다. 그런데 왜 ‘청동기시대’라 하는가. 시대를 상징하며, 실질적으로 앞에서 이끈 새로운 존재가 (비록 그 양이 다수를 점하지 않는다 해도) 등장했기 때문이다. 청동기시대의 경우, 청동기라는 첨단이 바로 그런 존재다.
예술에서도 이런 변화가 있었다. 20세기 예술은 ‘천재의 시대’ ‘괴짜와 기인의 시대’였다. 정보는 차단되거나 제한돼 있었고 기술은 충분히 발달하지 않았다. 억압은 강했다. 그런 상황에서 놀라운 능력을 가진 천재가 극적으로 나타나 위대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면 사람들은 수용자가 되어 박수를 쳤다. 괴짜와 기인이 가세했다. 시대를 찢고 앞에서 이끄는 천재의 용기와 확신 그리고 억압을 비웃는 괴짜와 기인의 기행은 그 자체로 예술적이고 진보적인 의미가 있었다.

그랬던 예술의 중심축이 21세기 들어 변화했고, 변화하고 있다. 쉽게 말해, ‘공감의 시대’가 시작됐다. 예술에서 공감의 시대가 펼쳐지면서 예술을 통한 ‘힐링’, 향유자가 직접 뛰어드는 ‘참여’가 크게 늘었다. 이는 정보는 무제한으로 쏟아지고 기술은 불가능이 없다는 듯 발달하는 시대 환경과 관련이 깊다. 괴짜와 기인이 먼저 사라졌다. 웬만한 기행을 해봤자, 그 정도 파격은 누구나 접근하는 정보의 바다이자 기술의 총아인 유튜브에 얼마든지 있으니 심드렁한 반응을 얻는다.

작가 이외수는 애초 긴 머리에, 자기 집에 ‘글감옥’을 실제로 만들어 그 속에서 글을 쓰던 괴짜 문인으로 유명했지만, 21세기에는 SNS를 누비며 수많은 사람과 공감하는 ‘소통하는 작가 형님’으로 각광받았다.

예술에서 천재는 지금도 여전히 중요하지만, 비중은 예전 같지 않게 낮아졌고 그 자리에 공감이 들어섰다. 비유하자면, 이 공감이 바로 청동기시대의 ‘청동기’다.

그렇다면 공감의 시대에 중요한 요소는 뭘까. 여럿 있겠지만, 기초 요소는 당연히 공감하는 능력이다. 타인의 아픔을 예민하게 느끼고, 남과 기쁨을 함께할 줄 알며, 누군가에게 상처(트라우마)가 생길까 지레 걱정하는 마음이 기초다. 이를 창의적인 방식으로 풀어내야 한다. 예술의 한 시대가 바뀌는 이런 기미를 누가 먼저 알아채야 하는가. 바로 거장과 ‘새로운 시대에 맞는’ 천재들이다.

미국의 저술가 월터 아이작슨(Walter Isaacson)이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지난해 11월 27일·12월 4일 합본호에 소개한 독일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말을 재인용한다. “재능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은 못 맞히는 과녁을 맞힐 줄 아는 사람이다. 천재는 다른 사람은 못 보는 과녁을 맞힐 줄 아는 사람이다.” (Talent hits a target that no one else can hit, Genius hits a target no one else can see.)

이것이 거장과 새로운 시대에 맞는 천재가 해줘야 할 일이다. 시대의 미세한 기미를 먼저 포착하고, 그것을 알려주고, 세상에 녹여내는 일. 이를 비전이라고도 한다. 암기 잘하고 계산 잘하고 작품만 잘 만든다고 될 일이 아니다.

폐쇄된 구조의 권력 정점에서 성폭력을 저질러 타인에게 상처를 입힌 이른바 예술계 거장과 천재를 생각한다. 그리고 이를 폭로하고 연대하는 ‘미투 운동’을 생각한다. 한국에서 미투 운동이 터진 초기 일부 가해자들을 놓고 ‘예술에는 뛰어났던 거장·천재였으나 성폭력을 저지른 나쁜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이런 주장을 듣자마자 지겨워졌다. 동의할 수 없었다. 그들은 뛰어난 예술가인가.

   
한때 천재적이었거나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다 치자. ‘21세기 예술 관점’에서 보면 기초나 본질조차 몰랐던 이들이다. 시대에 둔감했으니 해야 할 공부조차 손을 놓은 것이고, 무엇보다 타인의 상처에 무감각했다. 권력을 이용해 타인에게 성폭력을 가하는 구조를 허물고, 그런 일에 둔감했던 한 시대를 떠나보내는 일이 지금 미투 운동 앞에 남아 있다. 말하자면, 새로운 시대를 여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미투 운동에 나선 미국 여성 예술가들이 올해 1월 1일 만든 단체 이름이 공감이 간다. 그 이름은 ‘타임즈 업(Time’s Up)’이다. “그런 시대는 끝났다”라는 뜻이라 한다. 그런 시대를 보내버려야 한다.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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