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재·전개 흥미로운 미래물부터
- 날카로운 시선의 현대고발물 등
- 역동적이고 실험적인 6편 담아

“탈고한 직후엔 기분이 정말 좋았는데, 소설집을 내려고 다시 보면 볼수록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솔직히 많은 사람이 읽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크네요.”

	최근 첫 소설집 ‘길가메시 프로젝트’를 펴낸 강성민 소설가. 서정빈 기자 photobin@kookje.co.kr

출판사가 들으면 지금 무슨 소리 하냐며 달려올 얘기다. 머뭇거리는 말과 달리 소설집에 실린 여섯 편의 작품은 꽤 역동적이거나 실험적이다. 책장이 술술 잘 넘어간다.

2013년 국제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강성민 소설가가 5년 만에 첫 소설집 ‘길가메시 프로젝트’(전망·사진)를 냈다.

신화에서 차용한 표제작의 제목이 어쩐지 ‘SF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SF 느낌 물씬 나는 미래물이다. “선배 작가, 평론가들은 표제작으로 쓰지 말라고 말렸는데 제게는 제일 애착 가는 작품이라서요. 악평도 많았고 부족한 작품이라고는 생각하는데…. 그동안 사실 순(純)문학을 고집하는 것에 고민이 많았어요. 읽어주는 이 없는 글을 쓰는 건 힘 빠지니까. ‘길가메시 프로젝트’는 읽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바람이 담긴 작품이에요.”

‘길가메시 프로젝트’의 배경은 클론을 배양해 늙거나 병든 장기를 하나씩 갈아 끼우는 것이 이상할 것 없어진 미래사회다. 안 박사는 신화에 관한 연구로 독보적인 업적을 인정받는 대학자다. 그의 수명은 내년에 끝난다.

수명 예측 프로그램은 오차가 거의 없지만, 그는 악착같이 더 살고 싶어 한다. 그리고 한 회사가 거대 프로젝트를 발표한다. 성공적인 삶을 산 사람의 뇌를 로봇에 탑재해 화성으로 보낸다는 계획이다. 뇌를 통해 영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세 명의 한국인 후보가 거론됐다. 후보 중 한 명인 안 박사는 라이벌들을 제거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결말을 서두르는 바람에 주요 인물에 관한 설명이 부족하고 이야기가 모호해지긴 했지만, 소재와 전개가 흥미롭다. 본격 SF물을 쓸 생각이 있느냐고 묻자 “SF를 쓰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더라”고 운을 뗐다. “사실 이 작품은 기획 단계까지 ‘심한’ SF였는데 쓰면서 수위를 낮췄어요. 공상과학물을 제대로 쓰려면 공부를 정말 많이 해야 해요. 상상력에 의존해서 몰아치려니 안될 수밖에요. 좋아하는 것과 쓰는 것은 별개라는 걸 알았습니다.”

‘길가메시 프로젝트’를 읽고 작가로서 그의 정체성을 단정 짓는 건 섣부르다. 나머지 다섯 작품은 소재는 표제작과는 정반대라 할 만큼 현실적이다. 정제돼 있고 날카롭다. 읽을수록 ‘뭘 많이 알고 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했는데 역시 작가의 경험이 녹아있었다.

“20대 때 줄곧 아르바이트나 공장 일용직으로 일했어요. 그때는 몰랐는데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분노가 내 안에 자리 잡은 것 같아요. 글을 쓰면서 알았어요. 처음 소설을 쓸 때는 그런 분노를 표현하려고 덤볐는데, 글을 쓰면서 이상하게 분노가 깎이고 해소됐어요. 덕분에 전혀 다른 방향의 소설이 됐죠.”

해소됐다고 하지만, 그가 분노라 표현한 ‘부조리에 대한 고발’은 작품에 살아있다.

서울 오피스 타운 점심 배달원들의 고된 생활을 다룬 ‘역삼동의 전설’이나, 세탁기업 비정규직 직원이 직장을 떠나기까지 있었던 일을 그린 ‘정규’의 현실 묘사는 생생하다. 전혀 다른 방향의 소설들이 한 소설집에 묶여 있는 것이다.

“앞으로 어떤 소설을 쓸지는 모르겠어요. 어쩌면 SF를 쓸 수도 있겠죠. 등단은 2013년에 했지만 소설을 쓰고 싶다, 써야겠다고 생각한 건 2년밖에 안 됐어요. 이번 소설집은 ‘이제 시작합니다’라는 신고식 같은 겁니다. 그렇게 써 가면서 방향을 찾을 수 있겠죠.”

신귀영 기자 ky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