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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휘의 시네필] 대만 거장감독이 풀어낸 혼돈의 시대

영화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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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7-12-07 19:09:31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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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가 소년 살인사건’(1991)은 대만 현대사를 뒤흔든 한 실화에 바탕을 둔다. 1961년 6월 15일 타이베이에서 벌어진 14세 남학생의 여학생 살해 사건은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가 수립된 이래 대만에서 일어난 최초의 미성년자 살인사건이었다. 공교롭게도 범인은 훗날 대만 뉴웨이브의 거장이 되는 에드워드 양(1947~2007)의 같은 학교 학우였다. 모범생이었던 친구가 치정살인의 범인이 되었다는 데 충격을 받았던 에드워드 양은 현대인의 도회적 일상을 예리한 시선으로 해부한 ‘타이페이 스토리’(1985)와 ‘공포분자’(1986)를 거쳐, 마침내 청소년기의 기억을 돌이키며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을 완성한다.
   
에드워드 양 감독의 영화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의 한 장면.
3시간 57분 동안 영화는 소년 샤오쓰(장첸)의 일상사를 고요히 흐르는 강물처럼 차분한 호흡으로 따라간다. 클로즈업을 극도로 자제한 가운데, 영화의 카메라는 넓은 화각의 롱 숏으로 인물을 둘러싼 배경, 풍경을 포착하며 사회의 분위기를 인지시키려 한다. 마치 사람들이 시대라는 연극무대의 한갓 소품으로 전락해버린 듯.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한 시대의 공기에 관한 영화이다. 에드워드 양은 60년대 대만 사회에 감돌았던 차갑고 건조한 냉기, 질식할 것만 같이 소시민의 삶을 짓눌렀던 공포와 불안을 영화 안에 재현해 담고자 한다.

좌익 공산주의자일지도 모른다는 혐의로 정보부의 취조를 받고 심문실에 남겨진 채 진술서를 쓰는 샤오쓰의 아버지, 교실 칠판 위에 장제스의 초상과 함께 달려있는 ‘정숙’(靜淑)이라는 붉은 글자, 전차로 무장한 기갑부대가 거리를 지나가는 등의 장면은 시대상의 어둠을 암묵적으로 웅변한다. 국민당 정권 치하의 대만은 반공을 기조로 일방적인 규율과 복종을 강요하는 전체주의 사회였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보수적인 가치관과 군사주의 교육에 한껏 짓눌린 소년들은 엘비스 프레슬리로 대변되는 서구 문화에 탐닉하며 해방을 갈구하고 있었다.
통제와 억압의 이면에선 자유에 대한 갈망이 끓어오르는 시대의 모순.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의 영상은 매 순간 학교의 복도와 계단, 문과 창 같은 기하학적 이미지의 틀에 인물을 가두어 폐소공포증의 인상을 자아낸다. 심문을 받고 나오던 아버지는 열린 문틈 너머로 벌어지는 고문을 목격한 뒤 신경쇠약에 걸리고, 샤오쓰는 학교 담장을 넘는 작은 일탈로 시작해 폭력사태에 가담하고 종국에는 살인을 저지른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안티 오이디푸스’에서 체제에 사로잡혀 무기력하게 투항하고 포섭되는 것을 신경증(neurosis), 순응을 거부하다 자폐와 절망에 빠져드는 걸 정신병(psychosis)이라 한 바 있다. 출구 없는 시대의 암우(暗雨)를 견디고 살아야 했던 사람들의 슬픈 자화상. 영화는 감정의 고이고 흘러넘침을 억제한 채 지난 역사의 뒤안길을 쓸쓸한 독백처럼 비춘다.

   
‘써니’(2011)와 ‘응답하라’ 시리즈가 보여주듯 과거는 쉽게 낭만화된다. 누구도 회상하고 싶지 않은 고통스러운 집단적 기억은 흔히 ‘추억’이라는 알리바이로 지워지고 윤색되어 상품화되곤 한다. 반면 에드워드 양은 그러한 태도를 일체 배격하며 30년 전 날 것의 과거를 정면으로 마주하고자 했다. 역사를 다루는 영화의 태도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26년 만에 정식으로 들어온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이 지금의 한국영화에 던지는 준엄한 화두이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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