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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의 그곳에서 만난 책 <24> 박진규의 시집 ‘문탠로드를 빠져나오며’

삶과 마주치는 무수한 인연, 눈을 맞추니 시가 되더라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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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7-12-04 18:50:11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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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와 거닐던 통도사 솔밭길
- 바람도 춤춘다는 시원한 이곳서
- 카메라에 시달린 자장매를 봤다

- 내가 싫은건 상대도 싫다는 교감
- 그게 공감과 소통의 시작 아닌지
- 나와 무한한 세계는 더불어 산다
- 그래서 나는 그들과 눈을 맞춘다

자신의 정체성에서 출발해 현재의 삶을 돌아보는 건 인식하든 아니든, 누구나 하고 있는 생각이다. 시인은 어쩌면 그 질문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시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이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과의 공감이 행복한 삶의 중요한 열쇠라고 믿는 박진규 시인을 양산 통도사에서 만났다. 그가 여러 편의 시를 길어 올린 곳이다.
   
박진규 시인을 양산 통도사에서 만났다. 시인은 이곳 통도사에서 ‘부처님의 편지’ 등 여러 편의 시를 떠올렸다고 한다.
박진규 시인은 일광면 화전리에서 태어났다. 부산수산대학교(현 부경대)를 졸업하고, 잡지 ‘동녘’ ‘부산2020’ 기자와 부산매일신문 기자로 활동했다. 1989년 부산문화방송 신인문예상(제13회)에 시로 당선했지만, 시인으로서의 활동은 2010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이후에 활발했다. 국제신문 신춘 당선작을 제목으로 붙인 시집 ‘문탠로드를 빠져나오며’를 냈다. 계간 ‘작가와 사회’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현재 부경대학교 홍보담당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 ‘타자’와의 눈 맞추기

   
문탠로드를 빠져나오며- 박진규 /신생 /2016
겨울 문턱에 들어선 통도사 대웅전 옆 감나무에 홍시가 아직 매달려 있었다. 푸른 겨울 하늘에 보석처럼 박힌 홍시를 배경으로 사람들이 사진을 찍느라 부산했다. “아버님이 병석에 누워 돌아가시기 전, 통도사에 자주 모시고 와서 산책도 하고 말씀도 듣곤 했죠. 산문을 지나 통도사로 걸어가는 길, 무풍한송로(舞風寒松路)라 부르는 솔밭길을 좋아합니다. 바람도 춤을 추는 시원한 솔밭길이라는 뜻인데, 가만히 보면 정작 춤을 추는 건 바람이 아니라 휘어진 소나무들인 것처럼 보여요.”

그의 눈에는 춤을 추는 나무도 보이고, 아픈 나무도 보인다. 어느 늦봄 통도사에서 수령 350년이 넘은 매화나무 자장매 앞에서 쓴 시가 있다. ‘부처님의 편지’는 이렇게 시작한다.

“통도사 영각(影閣) 앞 매화나무가 아픈가 보다/ 영양제를 몸에 꽂고 늦봄 햇살로 보양 중이다/ 겨울날 탐매객 사랑 독차지하는 노거수/ 오늘은 그 앞에 ‘카메라 플래시 사용금지’라고 적힌/ 커다란 팻말 하나가 떡하니 내걸렸다”

그 팻말을 보고 그는 이런 생각을 했다. “마치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것 같았어요. 지금 자장매가 많이 아프다, 그러니까 카메라 플래시 펑펑 터뜨려가며 사진 찍지 마라, 너도 아플 때 누가 그러면 힘들지 않겠느냐, 말은 못해도 매화나무도 마찬가지다 하고 말씀하신 게 아닐까요?” 그는 그것을 ‘공감’이라고 말했다. 매화나무의 마음이 되면, 내가 당하기 싫은 것은 상대방도 싫어하니까 매화나무가 싫어하는 일을 삼가게 되는 것이다.

그의 시집에는 시적 대상물이며 타자인 나무, 꽃, 벌레와의 교감을 담은 시들이 많다. 적지 않는 시간을 타자와의 눈 맞추기에 관심을 기울인 흔적이다. 그의 시는 타자와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자신을 깊이 고민하고 고치려고 애써온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그의 마음속에 자연스레 들어와 자리 잡은 하나의 세계가 있다.

■ 끊임없는 질문이 詩로 태어나다

현상은 무수한 원인과 조건이 서로 관계해서 성립하는 것으로, 인연이 없으면 결과도 없다는 ‘연기법(緣起法)’이다. “부처님의 말씀은 나와 세계가 따로 있지 않으니 모든 것을 ‘나’로 보고 살아가라는 의미 같아요. 모든 것이 하나라는 인식이지요. ‘타자’가 바로 나라는 인식은 미움, 질투, 분노 같은 감정을 다스리는 데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경험했어요.”

그의 내면에 자연스럽게 들어온 ‘연기의 세계’를 담고 있는 시 한 편을 더 읽어보자. 시집 ‘문탠로드를 빠져나오며’의 첫 장을 여는 ‘화엄사 중소(中沼)’의 처음과 마지막 부분이다. “갈겨니는 계곡 물빛이어서/ 계곡이 아무리 유리알처럼 투명하여도/ 자신은 감쪽같다고 생각하는 것이다/(중략) 상수리나무는 행여 배고픈 날짐승이 눈치챌까봐/ 아침부터 우수수 이파리들을 떨어뜨려/ 어린 갈겨니를 덮어주었던 것이다”
시인은 어느 가을 화엄사 계곡에서 이 어진 풍경을 보았고, 부산으로 돌아오는 버스 속에서 핸드폰 문자판에 시로 썼다. “갈겨니와 상수리나무도 나도 외부원인에 의존해있다는 걸 느꼈지요.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수많은 사물이 나를 둘러싸고 있고, 나 역시 수많은 사물들에 좋거나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고요. ‘나’는 혼자 존재하지 못할 겁니다. 다만 무한한 세계의 한 부분일 뿐이겠지요. 서로 겹쳐있고 영향을 주고받는 상태, 무엇이든 ‘자연의 법칙’에 따라 엄정하게 진행되는 세계가 바로 우리가 사는 세계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의 이런 인식대로라면 그는 거기서 커다란 자유를 느꼈음이 틀림없겠다.

박진규는 기자였던 시절부터 대학에서 홍보 일을 하는 지금까지 근 30여 년을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며 그들의 이야기를 정리해 전달하는 메신저로 살고 있다. “그분들의 삶을 들으면서 ‘결과는 원인과 연결 중에 있다’는 걸 늘 느낍니다. 개인의 삶은 물론이고, 지금 나라 안팎에서 일어나는 역사적인 장면들이 잘 말해주고 있잖아요. 좋은 원인이 좋은 결론으로 이어진다는 걸 늘 자각하며 살려고 노력 중입니다.”

   
그의 시도 그럴 것이다. 아주 먼 데서 천천히 걸어온 어떤 ‘원인’이 그의 마음에 머물며 질문을 던지고, ‘시’라는 ‘결과’로 태어났다. 그리고 독자들 역시 어떤 ‘인연’으로 그의 시를 만나고 있다.

책 칼럼니스트

※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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