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책 읽어주는 여자] 뒤늦게 찾아온 사랑의 허망함…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 /강이라

남아 있는 나날-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송은경 옮김 /민음사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7-12-01 18:48:24
  •  |  본지 14면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주소복사
  • 스크랩
  • 인쇄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지난 10월, 스웨덴 한림원이 2017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발표했습니다. 수상의 영예는 일본계 영국인인 가즈오 이시구로에게 돌아갔습니다. 응구기와 티옹오,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유력한 수상 후보가 아니었기에 잠깐의 당혹감은 있었지만 이내 수긍의 고갯짓을 합니다. 안소니 홉킨스의 집사 연기가 인상적이었던 영화 ‘남아 있는 나날’, 복제 인간의 슬픈 운명을 다룬 ‘네버 렛 미 고’의 원작자인 그는 이미 현대 영미 문학의 거장으로 인정받고 있으니까요.

   
가즈오 이시구로 작가의 장편소설을 원작으로 한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의 영화 ‘남아있는 나날’ 한 장면.
가즈오 이시구로라는 이름 때문에 많은 이들이 그를 일본어로 소설을 쓰는 작가로 오해하지만, 여섯 살 이후부터 줄곧 영국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그의 모든 소설은 영어로 쓰여졌습니다. 대표작 ‘남아 있는 나날’에 드러난 50년대 영국 문화에 대한 완벽한 묘사를 기억하는 독자라면 그의 소설적 기반이 철저히 영국 문화에 있음을 알 것입니다.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가즈오 이시구로. 국제신문 DB
남아 있는 나날은 작가의 세 번째 소설로 그는 이 소설로 부커상을 받으며 국제적 명성을 얻습니다. 이 작품은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었기에 소설보단 영화로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있지요. 1956년 영국의 달링턴 홀의 집사로 평생을 보낸 스티븐스는 특별한 휴가를 떠납니다. 그의 양복 속에는 젊은 시절 함께 일했던 켄턴 양이 보낸 편지가 들어 있습니다. 그녀를 만나러 가는 6일간의 여정 속에서 그는 그녀와 함께했던 지난 시절을 회상합니다.

집사라는 직업에 대한 그의 맹목적 사명감, 나치 지지자란 오해를 받고 무너지는 달링턴 경을 바라보며 느끼는 회한, 뒤늦게 깨달은 사랑에 대한 허망함. 박음질처럼 꼼꼼하게 이어지던 이야기가 감정의 증폭을 서서히 키우며 켄턴 양의 고백에 이릅니다. ‘저는 스티븐스 씨 당신과 함께했을 수도 있는 삶을 상상하곤 한답니다. 하지만 사람은 과거의 가능성에만 매달려 살 수는 없는 겁니다.’ 스티븐스는 그제야 자신의 마음에 이는 슬픔의 근원이 그녀에 대한 사랑이었음을 깨닫습니다. 빨리 깨닫지 못한 스티븐스의 사랑에 애가 탔을 독자의 마음을 작가는 알고도 모른 척 둘의 헤어짐 또한 너무 덤덤하게 보여줍니다. 우는 여자를 웃으며 떠나보내다니요. 스티븐스답습니다.

   
해 지는 선창가에 홀로 앉은 스티븐스에게 옆의 노인이 말합니다. ‘저녁은 하루 중에 가장 좋은 때요. 당신은 하루의 일을 끝냈어요. 이제는 다리를 쭉 뻗고 즐길 수 있어요. 내 생각은 그래요. 하루 중 가장 좋은 때는 저녁이라고.’ 선창가에 하나둘 불이 켜집니다. 황혼처럼 인생이 저문다 해도 생의 동기가 작은 불빛이 되어 삶은 쉽게 어두워지지 않습니다. 스티븐스에게 놓친 사랑이 있듯 우리에게도 제때 알아차리지 못한 무엇이 지난 시간 속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먹먹한 여운이 쉽게 가라앉지 않습니다.

작가의 또 다른 소설 ‘나를 보내지 마’도 함께 읽어볼 것을 권합니다. 인간의 장기 이식을 목적으로 복제된 클론의 슬픈 운명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제기하는 좋은 소설입니다. 이 두 소설은 시대 배경과 소재가 완전히 다름에도 일맥상통하는 정서가 있습니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도 후련하지 않은 마음으로 눈을 감고 작가가 들려준 이야기를 다시 더듬습니다. 절제된 문장들 어디에 불쏘시개를 숨겨 뒀기에 이렇게 마음이 더운 걸까요. 이것이 작가가 지닌 고유의 소설적 정서일 것입니다.

   
노벨문학상은 올해로 117회째입니다. 때로 수상자에 대한 논란으로 말도 많지만 좋은 소설과 소설가를 만나는 즐거운 축제임은 분명하겠지요. 그래서 우리는 올해도 참 행복합니다.

소설가


[국제신문 공식 페이스북] [국제신문 인스타그램]
  • 기사주소복사
  • 스크랩
  • 인쇄

많이 본 뉴스 RSS
  • 종합

  • 정치

  • 경제

  • 사회

  • 스포츠

이상헌의 부산 춤 이야기
춤 만드는 사람들-음향감독 이창훈
남영희가 만난 무대 위의 사람들
부산농악 장구 보유자 박종환
국제시단 [전체보기]
제 몸을 태우는 그늘 /이기록
어둠이 내릴 때 /박홍재
글 한 줄 그림 한 장 [전체보기]
코 없는 사람
인공지능과 공존하는 미래를 위하여
동네책방 통신 [전체보기]
책 읽고 싶은 금요일, 다 같이 책방에서 볼까요
문학수업 듣고 창작하고…동네서점서 누리는 ‘소확행’
리뷰 [전체보기]
경계인 된 탈북여성의 삶, 식탁·담배·피 묻은 손 통해 들춰
방송가 [전체보기]
새 삶을 얻은 반려견의 ‘견생 2막’
어른 싸움으로 번진 거제 학교폭력의 진실
부산 웹툰 작가들의 방구석 STORY [전체보기]
아이디어
새 책 [전체보기]
인디고 서원, 내 청춘의 오아시스(아람샘과 인디고 아이들 지음) 外
지명직설(오동환 지음) 外
신간 돋보기 [전체보기]
일본인의 소울 푸드가 된 카레
애플, 스탠딩 데스크 왜 쓸까
아침의 갤러리 [전체보기]
‘꽤-액’-박영선 作
‘잃어버린 꽃-모닝 커피’- 전두인 作
어린이책동산 [전체보기]
정든 우리 동네 떠나기 싫어요 外
로봇은 어떻게 탄생하고 진화했나 外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미생 /이광
동백 /최은영
이기섭 8단의 토요바둑이야기 [전체보기]
제22회 LG배 기왕전 결승 3번기 2국
제2회 몽백합배 세계바둑오픈전 본선 8강전
이원 기자의 Ent 프리즘 [전체보기]
한국 첫 아카데미 예비 후보 ‘버닝’…상상이 현실 될까
남북영화인 만남, 제2 한류붐 …2019년 대중문화계 희망뉴스
조재휘의 시네필 [전체보기]
연애의 풍속도에 담긴 청춘 세대 현실
마약왕, 이미지 낭비만 많고 사유는 빈곤
책 읽어주는 남자 [전체보기]
이민족 귀화 많았던 고려사에 난민문제 혜안 있다 /정광모
사소한 일상 꿰뚫는 삶의 지혜, ‘밤의 전언’에 시대 통찰 있다 /박진명
책 읽어주는 여자 [전체보기]
긴 겨울밤도 체호프의 유쾌한 단편이면 짧아져요 /강이라
요술손 가졌나…뭐든 척척 초능력 할머니 /안덕자
현장 톡·톡 [전체보기]
“교육기회 빼앗긴 재일동포…우리가 돕겠습니다”
지역출판 살리려는 생산·기획·향유자의 진지한 고민 돋보여
BIFF 리뷰 [전체보기]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
퍼스트맨
BIFF 인터뷰 [전체보기]
‘렛미폴’ 조포니아손 감독, 마약중독에 대한 인간적 접근…“그들도 결국 평범한 사람이에요”
감독 박배일 '국도예술관·사드 들어선 성주…부산을, 지역을 담담히 담아내다'
BIFF 피플 [전체보기]
‘국화와 단두대’ 주연 배우 키류 마이·칸 하나에
제이슨 블룸
BIFF 현장 [전체보기]
10분짜리 가상현실…360도 시야가 트이면 영화가 현실이 된다
BIFF 화제작 [전체보기]
‘안녕, 티라노’ 고기 안 먹는 육식공룡과 날지 못하는 익룡의 여행
묘수풀이 - [전체보기]
묘수풀이 - 2019년 1월 22일
묘수풀이 - 2019년 1월 21일
오늘의 BIFF [전체보기]
오늘의 BIFF - 10월 9일
오늘의 BIFF - 10월 8일
이기섭 8단의 바둑칼럼 [전체보기]
2018 부산·서울 프로기사 초청교류전 1차전
2018 부산·서울 프로기사 초청교류전 1차전
정천구의 도덕경…민주주의의 길 [전체보기]
求宗不順化
與衆生同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