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라 676년 의상대사 창건

-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산실

- 경남유형문화재 53호 ‘자방루’
- 임진왜란 당시 승군의 훈련장
- 만병통치 효험 옥천샘도 유명
- ‘청동 북’ 등 다양한 보물 보유

옛날 소가야의 중심지였던 경남 고성군 고성읍에서 자동차로 30여 분 거리에 있는 도립공원 연화산( 524m)은 산세가 빼어나기로 이름나 있다. ‘연화’라는 명칭은 올망졸망한 봉우리들이 연이어 뻗어 있는 아름다운 연꽃을 닮았다 해서 붙여진 것이다.

이 연화산이 품고 있는 사찰이 옥천사(玉泉寺)다. 신라 시대에 창건한 천년고찰이다. 연꽃같이 펼쳐진 연화산의 중심 계곡, 연꽃의 암술에 해당하는 위치에 가람(승려가 살면서 불도를 닦는 곳)이 터를 잡고 있다. 옥천사를 찾아가는 길은 연화산도립공원 주차장에서 1㎞가량 더 올라간다. 차량 진입도 가능하지만, 걸어서 올라가면 우거진 수림 감상으로 운치가 더 한다.

	옥천사 대웅전 전경. 박현철 기자

■ 호국불교 대표 사찰

사찰 입구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이 일주문이다. 마음을 하나로 모아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계곡을 낀 잡목 숲이 아기자기하면서도 호젓해 산책하기에 좋다. 이어 천왕문이 나온다. 사찰을 지키는 동서남북의 사천왕이 두 눈을 부릅뜨고 방문객을 맞는다. 사찰에 들어서면 하마비(下馬碑)가 먼저 눈에 띈다. 하마비는 ‘대소인원개하마(大小人員皆下馬)’를 새긴 비석을 줄인 말이다. 이 비석은 종묘(宗廟)와 문묘 또는 사찰 입구에 세워, 누구든 이 앞을 지날 때는 말에서 내려 존경과 예의를 갖추도록 했다. 주위 편백은 양팔로 기둥을 다 안을 수 없을 만큼 웅장하다. 이어 계곡을 가로지르는 돌다리가 나온다. 흐르는 계곡물을 건너면서 속세에서 찌든 마음을 한 번 더 씻어내라는 의미다.

옥천사는 호국불교의 대표적 사찰이다. 다리를 건너 돌계단에 올라서면 넓은 마당이 나온다. 이 마당은 임진왜란 당시 승군의 훈련장이었다. 마당 앞에는 옥천사를 대표하는 누각인 자방루(滋芳樓·경남유형문화재 제53호))가 있다. 장수가 앉아 훈련을 지휘하던 장소였다. 하지만 보통의 누각과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보통 누각은 그 아래로 사람이 다닐 수 있지만, 자방루는 튼튼한 돌담 위에 성같이 굳게 닫혀있다. 자방루 양옆으로 문이 있는데 이 문을 닫히면 사찰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특이한 구조다. 왜군을 방어하기 위해 자방루 자체가 하나의 성벽으로, 요새 역할을 한 것이다. 자방루 옆문을 통해 대웅전 안마당으로 오른다.

■ 천하제일의 샘물, 옥천

	하늘에서 내려다 본 옥천사. 고성군 제공

대웅전 앞마당은 벌써 새해 소원 등이 내걸려 오색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다. 대웅전(경남유형문화재 132호) 안에는 불교 문화재 환수를 기원하는 1000일 기도가 한창이다. 대웅전에는 세 부처를 모시고 있다. 가운데 극락왕생을 인도하는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오른편으로 자비를 상징하는 관세음보살과 왼편으로 지혜를 상징하는 대세지보살이 넉넉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대웅전 옆으로는 석가모니의 출생부터 입적하기까지 전 일생을 8폭의 그림으로 다룬 법당인 팔상전이 자리 잡고 있다.

그 옆에 옥천사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건물이 있다. 옥천각이다. 옥천사라는 절 이름은 맑은 물이 샘솟는 경내의 옥천 샘에서 비롯됐다. 옥천각은 이 옥천 샘을 보호하기 위해 세워졌다. 지금도 쉬지 않고 맑은 물을 내보내는 옥천 샘은 1987년 자연보호중앙협회와 중앙의 한 언론사가 선정한 ‘전국에서 가장 맑고 맛있는 물 100선’에 뽑혔다. 구전에 따르면 옥천 샘은 신기하게도 매일 일정량의 샘물과 공양미를 흘려주었다. 어느 날 한 스님이 더 많은 공양미를 얻기 위해 바위를 깨뜨리고 샘을 헐었더니 물까지 끊겨 버렸다. 후에 또 다른 스님이 지성으로 기도드리자 다시 샘물이 솟고 덩달아 연꽃 한 송이가 피어나면서 만병에 신통한 약물이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옥천의 영험함을 믿고 이곳을 찾고 있다.

옥천각 뒤편으로는 부처님 제자 16나한을 모신 나한전과, 산신을 모신 산신각, 홀로 수행하는 부처님 제자를 모신 독성각, 사찰 창건자인 의상대사 등을 모신 조사전,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구원하는 지장보살을 모신 명부전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외형적인 규모로 본사인 하동 쌍계사에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 의상대사가 창건한 천년고찰

옥천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했다. 1300년을 넘어선 오랜 역사를 간직한 사찰이다. 지금은 쌍계사 말사지만 당시에는 화엄 10대 사찰 중 하나였다. 한때 스님이 300명을 넘고 부속 암자도 12개에 달했다. 호국불교의 대표적 사찰인 탓에 정유재란(1597년) 때 불태워진 이후 1657년 대웅전이 중건되면서 새로운 가람의 역사가 시작됐다.

일제강점기에는 식민지 정책에 저항하던 독립운동의 산실이었으며, 광복 이후 교단 정화와 불법(佛法) 중흥을 위해 헌신한 청담 큰스님이 승려 생활을 시작한 곳으로 유명하다. 사찰 앞마당에는 청담 큰 스님의 공덕비와 사리탑을 모셔 그 뜻을 이어오고 있다. 해방 직후인 1946년 부산대학 설립기금 1000만 원 모금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당시 500만 원 상당의 사찰 토지를 기부해 부산대 설립에 큰 기여를 했다.

옥천사는 세월의 흔적만큼 다양한 유물을 보유하고 있다. 불교의식 때 사용하는 징의 일종인 ‘청동 북’(보물 495호)과 18세기 불화의 전형을 보여주는 ‘지장보살도 및 시왕도’(보물 1693호) 등을 보유하고 있다.

사찰은 여성합창단과 템플스테이를 운영하면서 한발 더 시민에게 다가서는 포교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절의 부속 암자로는 연꽃을 상징하는 백련암, 청련암, 연대암 등을 두고 있다.

박현철 기자 phcnew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