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시립미술관장 때 해외교류
- 쿠사마 야요이 전 등 주목 받아
- “이우환공간 활성화 방안 모색
- 학예사와 갈등은 잘못된 소문
- 표절시비 작품 전시 책임 통감”

김선희(58) 신임 부산시립미술관장을 되도록 빨리 만나 보고자 했다. 취임 소감과 운영 방향도 궁금했고, 무엇보다 ‘떠도는 소문’이 아닌 당사자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부산시가 김 관장을 최종 선임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부산 미술계에서는 그의 국제적 감각과 기획력이 부산에서도 발휘되길 기대하는 긍정적인 반응도 있었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본지 지난달 27일 자 21면 보도) 대구시립미술관에서 있었던 여러 논란이 부산에서도 반복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었다.

9일 부산 해운대구 부산시립미술관의 이우환공간에서 김선희 신임 부산시립미술관장이 취임 소감과 운영 계획을 말하고 있다. 전민철 기자 jmc@kookje.co.kr

지난 9일 부산시립미술관에서 만난 김 관장은 “부산의 작가를 세계에 소개하고, 미술관을 친근하고 편안한 공간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대구시립미술관 시절 학예사들과의 갈등, 부산 모 작가와의 표절 시비 작품 전시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해명했다.

김 관장은 전남대 미술교육과와 같은 대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96년 광주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로 미술계 경력을 시작해 2000년 전국 시립미술관 사상 처음으로 여성 학예실장에 올랐다. 2012년부터 2016년까지는 대구시립미술관장을 지냈다. 지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지역 시립미술관에서 활약했지만, 그의 국제적 감각은 국내 미술계에서 손꼽힐 정도다. 일본 모리미술관 시니어 큐레이터 등으로 10년 넘게 국제무대에서 아시아 현대미술 전문가로 활동했다. 대구시립미술관장 때 쿠사마 야요이 전, 장샤오강 전, 아시아 5개 미술관과 함께 기획한 ‘애니마믹 비엔날레’ 등 국제전이 전국적으로 큰 이목을 끌었다.

김 관장은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하고 해외에서 체류한 시간이 길었지만, 나는 ‘지방 출신’이다. 부산의 재능 있는 미술가들이 국제무대에서 활약하도록 돕고 싶다”며 “대구시립미술관에서도 서울을 거치지 않고 지역 미술이 해외와 직접 교류하는 프로그램을 다수 추진해 성과를 냈다”고 설명했다.

내년 개관 20년을 맞는 부산시립미술관에 대해서는 어떤 인상을 갖고 있을까. 그는 “학예사들이 전시를 잘 해왔지만, 시민의 반응이 다소 ‘썰렁’하다”고 아쉬워했다. 김 관장은 “미술관 로비에 들어오면 관객이 사진을 ‘퍽퍽’ 찍고 싶어야 하는데 그런 분위기가 없다. 관객이 딱딱한 빈공간을 바라보고 있다”고 했다. 김 관장은 대안으로 “시민이 참여하는 다양한 이벤트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더는 미술관을 숭배하지 않고, 동네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러 편하게 오는 따뜻한 공간으로 변화시키겠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현대미술가 이우환 선생의 개인 미술관인 부산시립미술관 별관 ‘이우환공간’ 활성화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그는 “이우환공간은 부산의 큰 자산인데 관객이 적어 안타깝다. 선생의 작품이 어려운 건 맞지만, 오래 볼수록, 여러 번 볼수록 더욱 좋아진다. 나도 10년 전보다 지금 선생의 작품을 더 좋아한다. 선생의 작품 세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시민 참여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고 강조했다.

“강압적인 조직 운영과 그로 인한 학예사와의 갈등이 우려된다 ”고 그에게 물었다. 김 관장은 “대구시립미술관에서 학예사와 갈등으로 마지막 1년을 재계약 하지 못했다는 건 잘못된 소문”이라며 “학예사 1명과 갈등이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건강이 좋지 않아 더는 관장직을 수행할 수 없어 그만둔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 “남자들 틈에서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말이나 성격이 좀 ‘세다’고 느껴질 수 있다. 부산시립미술관에서는 학예사들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멘토’ 같은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대구시립미술관장 초반 임기제(계약직) 학예사 4명과 재계약 하지 않아 ‘해고 논란’이 일었던 일을 의식한 듯 “올해 예정된 부산시립미술관 임기제 학예사 2명의 재계약 여부는 시와 미술관 내 다른 책임자에 맡기겠다”고 말했다.

그는 대구시립미술관장 시절 부산 모 작가가 ‘표절’이라고 주장한 대구 신인 작가의 작품 전시를 강행해 부산 미술계의 반발을 산 바 있다. 결국 부산 작가가 법원에 제기한 ‘미술저작물 전시금지 가처분’ 신청이 인용돼 대구 작가의 작품이 철수됐지만, 두 작가는 아직도 법적 다툼을 벌이는 등 큰 상처를 입었다. 일각에서는 ‘당시 김 관장이 적극적으로 중재했다면 사태가 원만히 해결됐을 것’이라고 비판한다. 이에 대해 김 관장은 “두 작가의 작품은 같은 소재를 사용했지만, 핵심 특성은 크게 다르다. 아직도 표절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표절 여부는 내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며 “가처분 인용 당시 반발한 건 법원 결정 때 미술전문가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원 결정에 따라 곧 작품을 철수했다. 두 작가가 상처 입은 것에 대해서는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정민 기자 link@kookje.co.kr